▲명자나무 새순(2010.3.29 경기도 고양시)
김현자
명자나무를 처음 만나던 그 무렵,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시시때때로 우울해지곤 했다. '인생 70의 그 절반을 이미 살았건만 이룬 것 하나 없다'는 자책감이 시시때때로 들곤 했다. 친구들 형편과 내 형편이 자꾸만 비교됐다. 그럴 때마다 나오는 것은 한숨과 자책뿐.
'인생은 마라톤과 같은 거야. 조금 뒤처져 가고 있을 뿐이야.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나만의 삶이 있잖아.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삶의 성공 여부는 아니잖아?…. 그래 힘내자.'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이런 위안도 잠시뿐, 다시 무겁고 우울한 자책만 거듭 될 뿐이었다. 무엇도 하지 못하고 이유없이 서성거리다가 맥없이 끝도 없는 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우울증의 시작이었단 생각에.
와중에 늘 이용하던 길 한 모퉁이에서 이른 봄날 꽃봉오리와 새순을 막 틔워 올리고 있는 명자나무를 만나게 된 것이다. 관심이 없어 보이지 않았을 뿐, 몇 년 동안 오고가던 그 길 모퉁이에 지난해, 지지난해, 그 훨씬 전부터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고 졌을 명자나무였다.
하루하루 명자나무를 만나는 일이 점차 기분 좋은 일상이 되었다. 점차 명자나무는 물론 그 주변까지 신비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 그 설렘이었다.
사실 책을 통해 명자나무의 존재를 처음 알았고 인터넷검색으로 꽃의 생김새를 봤던지라 거의 매일 가슴 설레며 만나는 꽃봉오리가 그토록 궁금해 하는 명자나무의 것이란 걸 전혀 몰랐다.
거의 한달 가까이 명자나무 무더기를 만나는 동안 몇 차례의 꽃샘추위가 지나갔고 봄눈과, 봄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차가운 비도 몇 차례 내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명자나무는 작고 야무진 꽃봉오리와 새순을 계속 밀어 올리고 있었다.
도무지 앙 다물고 벌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 명자나무 꽃봉오리를 매일 만났다. 어떤 날은 명자나무 곁에서 서성이며 버스를 그냥 보내기도 했다. 어쩌다 집에서 쉬던 날, 매일 만나던 명자나무의 안부가 궁금해 옷을 주워 입고 들여다 보고 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