뿡뿡이랑 짜잔형 "돈 생각하면 유아 프로 못해요"

[현장] 열살 된 EBS <방귀대장 뿡뿡이> 녹화하는 날

등록 2010.04.07 18:05수정 2010.04.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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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귀대장 뿡뿡이 녹화장면
방귀대장 뿡뿡이 녹화장면장윤선

"엄마, 쉬이~."

TV 촬영이 막 시작된 순간, 한 녀석이 사고를 쳤다. 사색이 된 엄마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고 쏜살같이 세트를 빠져나왔다. 카메라 뒤에서 부시럭 부시럭 뭔가를 찾는다. 초록뚜껑 플라스틱 음료수 통이다. 녀석은 촬영장을 45도 각도로 등지고 통 안에 시~원하게 쏟아냈다. 엄마는 후다닥 처치하고, 세트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곧이어 ON-AIR 빨간불이 켜졌다.

4월 27일분 <방귀대장 뿡뿡이> 녹화를 위해 모인 12쌍의 아이들과 엄마들은 지난 3월 31일 오전 서울 우면동 교육개발원 내 EBS 촬영장에 모였다. 올해로 열 살이 된 뿡뿡이와 함께 <방귀대장 뿡뿡이>(EBS 월-금 오전9시 25분) 방송 녹화분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방송 카메라 앞에 선 엄마들과 아이들이 어색해하니 짜잔형 최동균(30)씨가 '짜잔~' 나섰다. 

"자, 어머니들~ 집에 가서 흐뭇하게 시청하시려면 협조를 잘 해주셔야 합니다."

촬영 중 뿡순이가 부채바람을 쐬는 까닭

까르르. 엄마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짜잔형이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녹이자 엄마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일생 최대의 밝은 표정을 지으며 녹화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녀석들의 표정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긴장해 포도알처럼 둥글고 커다란 눈에 곧 눈물이 맺힐 것 같은 아이, 파스텔 톤으로 곱게 단장된 세트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이, 캐릭터 인형들을 꾹꾹 눌러보며 꿈인가 생시인가 타진하는 아이, 모두 표정은 자못 진지하고 흥미롭다.


2000년 EBS 특집 프로그램으로 시작돼 10년째 아이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방귀대장 뿡뿡이> 촬영장은 웃음과 긴장이 동시에 공존했다. <방귀대장 뿡뿡이>는 유아들의 전인적인 발달을 목표로 연구된 TV 유아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놀이를 통해 상상력과 표현력을 기르도록 도와주고 있다.

31일 촬영분은 '한글놀이'였다. 글자 '나비'를 찾는 것. 마분지에 나비 모양을 그리고 오린 뒤 한쪽 면에 물감을 바르고 붙인다. 모든 아이들과 엄마들은 제각각 색칠한 데칼코마니 작품을 하나씩 손에 쥐었다. 어깨에 나비 날개를 달고 머리에도 나비 더듬이 머리띠를 썼다. 엄마와 아이들이 완벽한 나비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엄마와 아이들이 신나게 촬영에 임하는 도중, 뿡뿡이와 뿡순이는 가끔 세트 밖으로 나온다. 뿡순이와 뿡뿡이가 세트 밖으로 나오면 곧장 부채가 대령된다. 뒤집어 쓰고 있는 캐릭터 모자를 살짝 든 다음에 그 안에 부채바람을 넣는다. "시원하냐"고 물으면 뿡순이 캐릭터가 고개를 끄덕인다.

짜잔형 최동균씨는 아무리 더워도 캐릭터 연기자들 앞에서는 덥다는 소리를 안 한다고 했다. 한여름 조명 아래에서 촬영을 하면 등줄기와 목줄기에 땀이 나지만, 캐릭터 인형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연기자들의 얼굴에 맺힌 구슬땀들을 보면 덥다는 말이 쏙 들어간다는 것. 그만큼 캐릭터 연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뿡뿡이와 짜잔형 뿡뿡이와 짜잔형이 <오마이뉴스> 취재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뿡뿡이와 짜잔형뿡뿡이와 짜잔형이 <오마이뉴스> 취재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장윤선

"뿡뿡이, 생각보다 나이 많던데 반말해도 될까요?"

이번 촬영에 임한 조진옥(39)씨는 출산휴가 중에 <방귀대장 뿡뿡이> 촬영에 나섰다. 임상혁(6)군의 어머니인 조씨는 "경쟁이 치열해서 좀체 촬영티켓을 당첨받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우연히 사연을 신청했다가 당첨됐다"며 "너무 영광"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다른 아이들은 너무 밝게 잘하는데 우리 애는 잘 못하는 것 같아 속상했"지만, "뿡뿡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이 오늘 하루 너무나 행복해해 기쁘다"고 말했다. 상혁이 아빠도 이날만큼은 월차휴가를 내고 상혁이와 조씨를 촬영하느라 바빴다.

임상혁군도 "뿡뿡이를 만나 너무나 좋다"며 "오늘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나비' 글자를 스스로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상혁이 엄마 조씨가 "뿡뿡이 만난 것 아니야?"라고 물으니 그때서야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상혁이 입장에서는 모든 게 좋았을 터다.

조씨는 "뿡뿡이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던데 반말해도 되나 싶다"면서 천진난만하게 웃기도 했다. 주부 권윤미씨도 "아이들에게 정말 색다른 체험이 됐을 것 같다"며 "아무래도 뿡뿡이를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방귀대장 뿡뿡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아이들과 엄마들은 촬영시간이 끝나자 기념촬영을 하고 헤어졌다. 촬영이 끝난 아이들과 엄마들은 모두 돌아갔지만, 하루에 모두 3회 분량을 촬영하는 스태프들은 제1라운드를 마무리하고 오후 촬영을 준비했다. 점심시간, EBS 구내식당에서 짬을 내어 뿡뿡이와 짜잔형을 만났다.

"캐릭터 연기 힘들지만 뿡뿡이로 있을 때 제일 행복해요"

 방귀대장 뿡뿡이가 머리에 나비 더듬이를 달고 있다.
방귀대장 뿡뿡이가 머리에 나비 더듬이를 달고 있다.장윤선
뿡뿡이 김영옥(45)씨. 키 130cm 자그마한 체구의 김씨는 뿡뿡이 연기만 10년째 해오는 베테랑 캐릭터 연기자다. 열 살배기 뿡뿡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지 물었다.
"머리가 더 커졌구요. 다리는 더 짧아졌지요. 그런데, 더 어려졌어요. 하하."

동안인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10년째 같은 연기를 해오고 있지만 단 한번도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김씨는 "뿡뿡이로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이제 나이가 들어 체력이 지친다"면서 "예전보다 힘은 들지만 신나게 아이들과 동화될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10년 전 '방귀대장 뿡뿡이' 역할을 처음 맡았을 때는 "꼭 10년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꿈이 현실이 됐다"며 "캐릭터 연기자는 캐릭터를 최대한 살려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어디를 가든 '뿡뿡이'로 인정받으면 스스로 자부심이 한껏 부양된다는 게다.

제2대 짜잔형인 최동균씨도 "여기까지 오는데 쉽지 않은 여정이 있었다"며 "1대 짜잔형이 '내일 만나요~'한 뒤 내가 나왔기 때문에 엄마와 아이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소회를 전했다.

2005년 8월 짜잔형 오디션에 합격해 햇수로 5년째 2대 짜잔형을 맡고 있는 최씨는 "처음 짜잔형을 맡았을 때는 엄마들의 분노에 속상해서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면서 "차츰 안정되니 이제는 제법 알아보시고 잘 대해주신다"고 말했다.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는 짜잔형을 알아본 주인 아저씨가 스파게티와 와인을 공짜로 대접해주신 일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방귀대장 뿡뿡이>는 방영 이듬해인 2001년 방송분 10편을 묶은 비디오가 출시되자마자 3만 5천개가 팔려나가고, 뿡뿡이 캐릭터 인형도 4만개가 넘게 팔렸다. 아마 유아가 있는 집이라면 뿡뿡이 인형 한 개쯤 모두 갖고 있을 정도로 인기는 대단하다.

이처럼 뿡뿡이와 짜잔형이 10년째 인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제작환경은 녹록지 않다. 일단 <방귀대장 뿡뿡이>가 EBS 방송으로는 경이적인 6%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인기를 끌기로 했지만, 최근엔 점점 하락세다.

뿡뿡이와 짜잔형 "이런 엄마, 볼썽사나워요"

 뿡뿡이와 짜잔형이 이달 27일분 촬영에 임하고 있다.
뿡뿡이와 짜잔형이 이달 27일분 촬영에 임하고 있다.장윤선
따라서 방송시간대도 뒤로 물러섰다.
짜잔형 최동균씨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기 전에 뿡뿡이를 만나고 가야 하는데 아이들이 다 유치원에 간 뒤에야 뿡뿡이가 나온다"며 "시간대를 앞으로 당겨주면 시청률이 좀더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아이를 키우는 집에선 아이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EBS를 찾고, 틀어놓게 된다. 그 사이 엄마들은 출근준비를 하고 아침식사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 EBS는 대개 애니메이션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교육효과가 있는 <방귀대장 뿡뿡이>와 만나지 못한다. 주말에 하는 <뿡뿡이랑 냠냠>을 시청하는 정도랄까.

이와 관련 뿡뿡이 김영옥씨는 "오전 9시 25분에 본방송을 하고 대부분 재방송을 하기 때문에 엄마들의 눈에는 그다지 새롭지 않을 수 있다"면서 "좀더 다채로운 내용으로 유아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외국에서는 유아프로그램과 아동극을 한다고 하면 존경과 존중하는 시선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정반대라는 게다. 출연료도 일반 드라마와 비교하면 턱없이 차이가 난다는 것. 또한 유아프로그램을 오래 한 배우는 이미지 때문에 일반 드라마를 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짜잔형이 불륜 드라마 주인공으로 나온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

짜잔형 최동균씨는 "사실 돈 생각하면 유아프로그램을 하기 어렵다"면서 "즐겁고 재미있으며 어린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유아프로그램 연기자'라는 것.

무엇보다 짜잔형과 뿡뿡이는 이 자리를 빌어 엄마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TV 프로그램 촬영은 물론 공개방송 녹화나 연극무대에서 만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다.

"뿡뿡이가 지나가면 애를 미는 엄마가 있어요. 일단 애를 밀고 사진을 찍는 거죠. 애는 울고 엄마는 울지마! 하면서 사진 찍는 것. 뿡뿡이는 정말 이런 것 싫어해요.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는 엄마가 정말 좋은 어머니예요."

 EBS <방귀대장 뿡뿡이> 녹화 장면
EBS <방귀대장 뿡뿡이> 녹화 장면장윤선

공영프로그램에 시장논리 안 될 말

방귀 날리기가 특기인 열 살배기 뿡뿡이. 엄마들의 입장에서는 놀면서 배우는 <방귀대장 뿡뿡이>처럼 공영성이 강화된 프로그램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간 공중파에서 오전에 주름 잡았던 MBC <뽀뽀뽀> 같은 유아프로그램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그 자리엔 불륜 드라마가 자리 잡고 있다. 

<방귀대장 뿡뿡이>를 맡고 있는 김형순 PD는 "공영성이 짙은 유아프로그램은 돈이 안 된다"면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것처럼 집집마다 집에서 TV 볼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나마 있는 아이들은 모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가기 때문에 유아프로그램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돈도 안 되니 유아프로그램이 설 땅은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김 PD는 "공영성이 높은 프로그램에는 시장논리가 적용되면 안 되는데 우리는 자꾸 그런 논리가 압도하는 형국이라 안타깝다"고 전했다.
#방귀대장 뿡뿡이 #짜잔형 #뿡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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