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대장 뿡뿡이 녹화장면
장윤선
"엄마, 쉬이~."TV 촬영이 막 시작된 순간, 한 녀석이 사고를 쳤다. 사색이 된 엄마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고 쏜살같이 세트를 빠져나왔다. 카메라 뒤에서 부시럭 부시럭 뭔가를 찾는다. 초록뚜껑 플라스틱 음료수 통이다. 녀석은 촬영장을 45도 각도로 등지고 통 안에 시~원하게 쏟아냈다. 엄마는 후다닥 처치하고, 세트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곧이어 ON-AIR 빨간불이 켜졌다.
4월 27일분 <방귀대장 뿡뿡이> 녹화를 위해 모인 12쌍의 아이들과 엄마들은 지난 3월 31일 오전 서울 우면동 교육개발원 내 EBS 촬영장에 모였다. 올해로 열 살이 된 뿡뿡이와 함께 <방귀대장 뿡뿡이>(EBS 월-금 오전9시 25분) 방송 녹화분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방송 카메라 앞에 선 엄마들과 아이들이 어색해하니 짜잔형 최동균(30)씨가 '짜잔~' 나섰다.
"자, 어머니들~ 집에 가서 흐뭇하게 시청하시려면 협조를 잘 해주셔야 합니다."촬영 중 뿡순이가 부채바람을 쐬는 까닭까르르. 엄마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짜잔형이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녹이자 엄마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일생 최대의 밝은 표정을 지으며 녹화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녀석들의 표정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긴장해 포도알처럼 둥글고 커다란 눈에 곧 눈물이 맺힐 것 같은 아이, 파스텔 톤으로 곱게 단장된 세트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이, 캐릭터 인형들을 꾹꾹 눌러보며 꿈인가 생시인가 타진하는 아이, 모두 표정은 자못 진지하고 흥미롭다.
2000년 EBS 특집 프로그램으로 시작돼 10년째 아이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방귀대장 뿡뿡이> 촬영장은 웃음과 긴장이 동시에 공존했다. <방귀대장 뿡뿡이>는 유아들의 전인적인 발달을 목표로 연구된 TV 유아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놀이를 통해 상상력과 표현력을 기르도록 도와주고 있다.
31일 촬영분은 '한글놀이'였다. 글자 '나비'를 찾는 것. 마분지에 나비 모양을 그리고 오린 뒤 한쪽 면에 물감을 바르고 붙인다. 모든 아이들과 엄마들은 제각각 색칠한 데칼코마니 작품을 하나씩 손에 쥐었다. 어깨에 나비 날개를 달고 머리에도 나비 더듬이 머리띠를 썼다. 엄마와 아이들이 완벽한 나비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엄마와 아이들이 신나게 촬영에 임하는 도중, 뿡뿡이와 뿡순이는 가끔 세트 밖으로 나온다. 뿡순이와 뿡뿡이가 세트 밖으로 나오면 곧장 부채가 대령된다. 뒤집어 쓰고 있는 캐릭터 모자를 살짝 든 다음에 그 안에 부채바람을 넣는다. "시원하냐"고 물으면 뿡순이 캐릭터가 고개를 끄덕인다.
짜잔형 최동균씨는 아무리 더워도 캐릭터 연기자들 앞에서는 덥다는 소리를 안 한다고 했다. 한여름 조명 아래에서 촬영을 하면 등줄기와 목줄기에 땀이 나지만, 캐릭터 인형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연기자들의 얼굴에 맺힌 구슬땀들을 보면 덥다는 말이 쏙 들어간다는 것. 그만큼 캐릭터 연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