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단폭격하듯이 찍어누르면 땅이 살 수 있을까

등록 2010.04.14 11:16수정 2010.04.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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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심을 두둑을 만들려고 흙을 퍼올리는데 땅강아지 한마리가 잽싸게 숨을 곳을 찾아서 도망칩니다. 어릴적에 검정 고무신에 흙과 땅강아지를 담아서 놀더 생각이 나서 손바닥에도 올려보고 숨어 들어간 흙을 파헤치며 장난을 쳤습니다. 순간, 나는 장난이지만 녀석에게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겠다는 생각에 안전한 곳으로 놔줬습니다.


두번째 두둑을 만들 때 땅강아지를 또 만났습니다. 처음 만난 녀석과는 장난치느라 인증샷을 못한 것이 못내 서운했는데 이번에도 생사를 넘나드는 녀석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자 이리저리 도망치며 잽싸게 흙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흙을 고르다 보면 다양한 생명체들이 저마다의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데 옆 밭의 농부님이 와서 답답한 속내를 비칩니다.

"아 그걸 뭐하러 힘들게 일하고 그래요. 쟁기로 밀어버리면 금방 끝나는데..."
"뭐 그냥 쉬엄쉬엄 할려고요."

주변의 다른 밭들을 한바퀴 둘러보니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나에게는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투트특 투트특' 거리는 굉음을 쫒아서 가보니 경운기에 장착한 낫처럼 생긴 여러개의 로타리날이 흙을 사정없이 찍어내고 있습니다. 마치 융단폭격 하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찍어대는 날카로운 칼날에 흙속에 있는 생명들이 저것을 피해서 살아날 가능성은 매우 적어보입니다.

a  밭갈이를 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

밭갈이를 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 ⓒ 오창균


a  여러개의 칼날이 땅속을 파헤치는 로타리기계

여러개의 칼날이 땅속을 파헤치는 로타리기계 ⓒ 오창균

트랙터나 경운기를 움직이는 사람의 눈에 흙속의 작은 생명체들이 보일리가 없습니다. 2차대전 당시 폭격기로 무수한 폭탄을 떨어뜨린 어느 군인은 땅 위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하고 반전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도 놀라는 작은 생명체들이 육중한 쇳덩어리가 굉음을 내며 칼날을 땅속으로 들이밀때 얼마나 공포스러울까요. 멀리서 보면 한편의 그림 같은 농촌의 모습으로만 느껴었는데 땅속의 생명들을 만난 후로는 농기계들이 살육무기로 느껴지는 요즘이고, 흙과 함께 하는 농사는 무수한 생명들과의 교감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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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강아지 ⓒ 오창균


#땅강아지 #로타리 #농사 #흙 #도시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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