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90) 견강부회

[우리 말에 마음쓰기 899] '억지-어거지-끼워맞추기'를 생각하며

등록 2010.04.15 11:19수정 2010.04.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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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견강부회라 하겠다

.. 귀신 숭배신앙, 태양신 숭배신앙, 난생 국조신화 등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으로, 이를 근거로 한족 계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라 하겠다 ..  <최광식-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살림,2004) 21쪽


'숭배신앙(崇拜信仰)'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섬기는 믿음'이나 '받드는 믿음'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난생(卵生) 국조신화(國祖神話)"는 "알에서 태어난 나라 시조 옛이야기"로 다듬고, '등(等)은'은 '들은'으로 다듬으며, "세계적(-的)으로 나타나는"은 "세계에 널리 나타나는"이나 "세계 어디에나 나타나는"으로 다듬습니다. "보편적(普遍的) 현상(現象)"은 앞말과 이어 '널리'나 '두루'를 사이에 넣고, "세계에 널리 나타나는"이나 "세계 곳곳에서 두루 찾아볼 수 있는"으로 손질하면 됩니다. '근거(根據)'는 '바탕'으로 고쳐쓰고, "주장(主張)하는 것은"은 "이야기한다면"이나 "하는 말은"으로 고쳐 줍니다.

 ┌ 견강부회(牽强附會) :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
 │   - 자기의 취미에 맞도록 아전인수 하고 견강부회하는 바람에
 │
 ├ 이를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라 하겠다
 │→ 이를 바탕으로 말한다면 억지라 하겠다
 │→ 이를 바탕으로 말하면 억지이다
 │→ 이를 바탕으로 말하면 억지일 뿐이다
 └ …

네 글자 한자말 '견강부회'를 곳곳에서 곧잘 듣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리송해 으레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이와 같은 말을 쓰는 분들로서는 손쉬운 낱말이라 여길는지 모르고, 이 낱말만큼 알맞거나 또렷한 낱말이 없다고 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견강부회'라는 낱말을 마주할 때면 늘 골이 아픕니다.

국어사전에서 말뜻을 헤아려 봅니다. '견강부회'는 다름아닌 "억지 쓰기"를 가리킵니다.  '억지'이고, '어거지'이며 '떼'입니다. '어이없는' 짓이요 '어처구니없는' 매무새이며 '터무니없는' 몸가짐입니다. 딱히 어떤 다른 뜻이나 느낌을 담는 낱말이 아닙니다. 한자 지식을 뽐내어 쓸 까닭이 없으며, 누구한테나 허물없이 쓸 만한 쉽고 바른 말마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견강부회' 같은 말마디를 고지식하게 붙잡을까요. 한결 살가이 말하기가 더 힘이 들까요. 한껏 따스하게 글을 쓰기가 더 어려운가요.

이 보기글은 "이를 내세워 한족 갈래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나 "이런 이야기를 들며 한족 갈래라 한다면 더없이 터무니없다"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알맞지 않다
 ├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올바르지 않다
 ├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 …

그런데 국어사전 보기글은 '견강부회'에 '아전인수'를 더한 글월입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은 사람들한테 더욱 말치레를 하라고 부추깁니다. 사람들이 꾸밈없이 말하고 알맞게 글쓰며 슬기롭게 이야기하도록 도와주는 틀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말을 말다이 쓰도록 하는 좋은 길을 찾는 국어사전은 아닌 탓이라 하겠습니다. 말을 슬기롭게 배우거나 글을 올바르게 갈고닦는 데에 이바지하는 국어사전은 아닌 까닭이라 하겠습니다. 말풀이만 달아 놓는다고 해서 국어사전일 수 없으나, 국어사전을 엮는 고운 길을 놓쳤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수많은 낱말을 모조리 실어 놓는다고 해서 국어사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국어사전을 펼칠 사람들한테 훌륭한 길잡이가 되도록 하려는 뜻을 되새기지 못해서라고 하겠습니다.

 ┌ 자기의 취미에 맞도록 아전인수 하고 견강부회하는 바람에
 │
 │→ 제 입맛에 맞도록 뜯어고치고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 저한테만 맞도록 하면서 어거지를 쓰는 바람에
 │→ 저한테 좋도록 맞추고 바꾸는 바람에
 └ …

지식을 주워섬기는 말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담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보다 낫거나 훌륭하다고 내세우는 글이 아닌, 서로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껍데기를 씌우는 이야기가 아닌, 넋과 얼을 튼튼하고 알차게 빛내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다 함께 살아나는 말을 하고, 서로서로 북돋우는 글을 쓰며, 나란히 빛나는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싶습니다.

내 말을 말답게 가꾸면서 내 넋을 넋답게 추스르고 내 삶을 삶답게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글을 글답게 일구면서 내 얼을 얼답게 다독이고 내 삶터를 삶터답게 다스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ㄴ. 견강부회적인 해석

.. 견강부회적인 해석이 눈에 띄는 등, 케이건이 홉스와 칸트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  <강상중/이목 옮김-청춘을 읽는다>(돌베개,2009) 177쪽

'해석(解釋)'은 '풀이'로 다듬고, "눈에 띄는 등(等)"은 "눈에 띄는 한편"이나 "눈에 띄고"로 다듬습니다. "정확(正確)하게 이해(理解)하고"는 "제대로 헤아리고"나 "옳게 읽어내고"나 "올바로 알고"로 손질하고, '심(甚)히'는 '몹시'로 손질하며, '의심(疑心)스럽다'는 '모르겠다'나 '알 수 없다'나 '궁금하다'로 손질해 줍니다.

 ┌ 견강후회적인 해석이
 │
 │→ 억지스런 풀이가
 │→ 어거지 같은 말이
 │→ 끼워맞추기 풀이가
 │→ 끼워맞춘 말이
 └ …

억지스럽게 풀이하는 말이란 깊이 살피지 않고 이렁저렁 끼워맞추듯 풀이하는 말이라는 소리입니다. '끼워맞추기'요 '때려넣기'요 '주워섬기기'입니다. '땜질'이며 '말장난'이고 '얕은 풀이'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엉성한 풀이"나 "어줍잖은 풀이"나 "말이 안 되는 풀이"나 "터무니없는 풀이"나 "뚱딴지 같은 풀이"나 "뜬금없는 풀이"로 고쳐 볼 수 있습니다. 홉스이든 칸트이든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면 올바르게 하는 풀이가 아니라 '엉터리'로 하는 풀이인 셈입니다. 한 마디로 "엉터리 풀이"라 해도 되겠군요. 엉터리 같은 풀이라 한다면 "바보스러운 풀이"라든지 "모자란 풀이"라든지 "앞뒤가 안 맞는 풀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엉성한지를 나타내면 되고, 어떻게 모자란지를 보여주면 되며, 어느 만큼 어설픈지 이야기하면 됩니다.

 ┌ 대충 적은 듯한 말이 눈에 띄며
 ├ 아무렇게나 붙인 말이 눈에 띄고
 ├ 제멋대로 끄적인 말이 눈에 띄고
 ├ 함부로 읊는 말이 눈에 띄고
 └ …

뜻과 느낌을 살리면서 '대충'이나 '아무렇게나'나 '제멋대로'나 '함부로' 같은 꾸밈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읊조리던 말마디가 내 귀로는 얼마나 억지처럼 들렸는가를 다루면 됩니다. 누군가 내뱉은 이야기가 내 마음으로는 어떻게 뜬금없게 느껴졌는가를 밝히면 됩니다. 누군가 끄적인 글줄이 내 눈으로는 어느 만큼 엉터리였는가를 적바림하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살리는 길을 찾아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슬기로 우리 글을 빛내는 삶을 살뜰히 꾸리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고사성어 #상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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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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