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것도 죄스러운 엄마, 몰래 우는 아빠... 돌아와 형"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의 기도

등록 2010.04.16 10:04수정 2010.04.1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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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천안함 실종 장병들이 견뎌야했던 날들이다. 480시간, 실종자 가족과 친구들이 마음 졸이며 슬퍼했던 시간이다. 이제 실종자들은 그들을 기다리던 가족·친구들 품으로 돌아왔다. '천안함 실종자 46명'으로만 이야기 되었던 그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미니홈피에 남겨진 흔적을 좇아 실종자들의 삶을 기억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이상민 병장(89년생) 미니홈피

이상민 병장(89년생) 미니홈피 ⓒ 미니홈피 캡쳐


"우리 늦둥이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내일 입대 한다고 머리를 자르고 왔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내 동생이 간다니 보내고 싶지가 않네."

이상민 병장 누나 "사랑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고 이상민 병장

고 이상민 병장

그랬던 막내 동생, 이상민(89년생) 병장이었다. 머리 깎은 모습마저 "동글동글 귀엽다"고 보였던, 어리기만 한 막둥이의 입대에 이 병장 누나 이순희씨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2008년 6월의 일이다.

"잘 참았던 눈물이 필승 하고 경례를 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어. 상민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엄마와 난 아무 말 없이 흐느껴 울었어. 우리 막둥이 건강히 잘 지내다가 씩씩하고 멋진 남자가 되어서 돌아와."

이순희씨가 미니홈피에 올린 글들에는 이 병장을 향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잠 못 자고 뒤척이다가 4시부터 도시락 준비하고 8시쯤 공주 집으로 출발해서 부모님 모시고 평택에 있는 해군2함대 사령부로. 울 막둥이 면회하려다 누나 녹초가 됐어. 그래도 상민이 얼굴 보니깐 좋던걸. 부모님이랑 언니도 함께여서 더 더욱 좋았고."

몸이 얼마나 힘이 들던 동생 얼굴 본다는 생각에 행복할 수 있었던 이순희씨였다. 생일이면 온 가족이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면회를 가 시간을 보냈던 화목한 집의 막내 이상민 병장.


많은 것을 주었을 것 같은데, 누나의 가슴에는 아직 해주지 못한 것들만이 남았다. 이 병장의 누나 이상희씨는 15일 새벽 "한 번도 해주지 못한 말 '사랑해'... 내일 꼭 해줄 수 있게 누나한테 기회를 주렴, 내일 꼭 와야 해"라고 이 병장의 미니홈피에 글을 남겼다. 상희씨는 "하고 싶은 거 다하게 해줄게, 누나 마지막 소원 네가 살아오는 거 들어줘 꼭"이라며 간절한 마음을 적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민 병장은 누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 15일, 함미 기관부 침실에서 이 병장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상희씨는 "그곳에선 웃고만 살아, 아프지 말고, 사랑한다, 누나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라고 이 병장의 미니홈피에 글을 올렸다.


방일민 하사 동생 "형.... 내가 잘할게 돌아와"

 고 방일민 하사

고 방일민 하사

실종자 가족들은 천안함 안에 있을 그들의 형, 오빠, 동생, 아들에게 건네지 못한 말들을 미니홈피를 통해 전해 왔다. 유리병 안에 담긴 편지처럼 바다 한 가운데를 거슬러 가 실종자에게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글에 녹아 있다. 그 절절함은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함미 수색 작업 중 승조원 식당 입구에서 발견된 방일민 하사. 방 하사의 동생 방동민씨는 방 하사의 미니홈피에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죄스러워서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우리 엄마 어떻게 할 거야, 몰래 화장실 가서 눈물 흘리는 우리 아빠 어떻게 할 거야"라고 글을 남겼다.

방동민씨는 "사람들이 나한테 이제는 내가 엄마 아빠 챙겨야 된다고 형 몫까지 내가 다 해야 된다고 강해지고 열심히 살아야 된다고 하는데.. 근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라며 "형, 그만하고 이제 우리 앞에 나타나....... 내가 잘할게 돌아와 제발"이라고 호소했다.

 방일민 하사 친구의 미니홈피

방일민 하사 친구의 미니홈피 ⓒ 미니홈피 캡처


장진선 하사 "돌아간다 기다려라"

한편, 김선명 상병은 함미 기관부 침실에서 발견됐다. 김 상병의 동생 김진명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히야 어디 있노... 빨리 나와서 반기라........ㅜㅜ"라 글을 올렸다. 김진명씨의 일촌평은 "웃는 그 얼굴 잊혀지지 않네"이다.

서대호 하사의 형은 서 하사의 미니홈피 대문글에 "저로썬 너무 가슴이 답답하고 착잡합니다. 형으로써 해 준 게 너무 없고 그저 소식만 기다릴 뿐입니다. 꼭 무사하게 돌아오길 기도해주세요"라고 자신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형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서대호 하사는 함미 승조원 식당에서 발견됐다.

장진선 하사 미니홈피의 대문글에는 '돌아간다 기다려라'라고 적혀 있다. 20일 만에 돌아온,  모두가 간절히 귀환만을 바랐던 상황을 예견한 듯한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고 있다.

지난 9일, 동생 장진희씨는 장 하사 미니홈피 방명록에 "오빠 빨리 와, 엄마 아빠 걱정하시잖아, 기도할게 꼭 돌아와 빨리"라고 글을 남겼다. 장진선 하사의 소식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시신 발견된 실종자 친구 "가슴에 살아..."

가족들의 기도는 끝내 하늘에 닿지 않은 듯하다. 함미 인양 작업이 이어지며 하나 둘씩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실종자들의 친구들은 실종자의 미니홈피를 방문해 마지막 말을 전하고 있다.

조한수씨는 "목이 왜 이렇게 메이냐"며 "너 다음에도 내 친구 할 거지? 자주 놀러갈게"라고 방일민 하사 미니홈피에 글을 올렸다.

서대호 하사 미니홈피에 글을 남긴 서은진씨는 "그냥 안 가면 안 되나? 아무것도 안하더라도 살아있기만 하면 안 되는 건가, 진짜 가야만 되는 건가"라며 서 하사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김정수씨는 김선명 상병 미니홈피에 "가슴에 살아..."라며 김 상병을 기렸다.

막둥이었던, 잘해주지 못해 마음에 남는 동생이었던, 든든한 형·오빠였던 이들은 돌아오지 못했지만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한 언제까지고 마음속에서 살아있을 것이다.
#실종자 #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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