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선거 3차시-토론 수업3차시 수업으로 후보자별 공약을 중심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자신들과 관련된 내용이어서인지 산만한 가운데도 질문이 많았다.
김인철
수다와 토론은 다르다. 수다는 상대방을 향해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면 되지만 토론은 예상치 못한 상대방의 질문을 받고 그 질문에 가장 합당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수다는 즉흥적이지만 토론은 논리적이다. 수다는 상대방을 향해서 반말을 해도 되지만 토론은 존칭을 써야 한다. 수다는 때로 인신공격을 할 수 있지만 토론은 그게 안된다. 물론 토론이 격해지다 보면 삿대질을 하거나 불의의 습격을 받을수도 있다. 수다는 수다스러워야 하고 토론은 토론다워야 한다. 문제는 나는 수다도 토론도 둘다 능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땠을까?
"흑진주당의 OOO후보에게 질문 있습니다. 먼저 중학생 수업시간을 45분에서 40분으로 줄이자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어차피 정해진 수업 양이 있어서 1교시가 더 늘어나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나요?""그건요. 예전에 우리 학교에서 한번 단축 수업을 해 봤는데 40분 수업을 했지만 그 시간 안에 충분히 정해진 진도를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처음엔 진지하게 진행되던 토론이 뒤늦게 참석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산만한 가운데서도 후보자들을 향한 아이들(방청객)의 질문은 쇄도했다. 후보자들끼리의 토론보다는 방청객의 질의응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사회를 진행하는 나도 곤혹스러웠다. 후보자들의 질문을 듣고 답변을 유도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산만하다 보니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못 듣는 경우도 생겼다. 토론 방식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한 B가 손을 들더니 왜 쟤네들(후보자)끼리만 말(?)하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폐박스로 기표소, 투표함, 투표용지를 만들다이제는 기표소와 투표함을 만들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선관위에 부탁을 해서 투표함과 기표소를 빌려 오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여건으로 인해 현지 조달하기로 했다. 두 선생님들이 열심히 만든 덕분에 생각보다 멋진 투표함과 기표소가 만들어졌다. 투표용지는 두 장 (흰색은 후보자별, 녹색은 비례대표)를 뽑도록 했다. 가능하면 기권표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투표를 실시하기 전 철저하게 교육을 시켰지만 여기저기서 장난스런 얼굴들이 보였다.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철저히 공약과 토론을 중심으로 투표를 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선생님, 그거 선거인 명부 확인하는 거죠? 그거 우리가 하면 안돼요?""맞아요, 재미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하게 해주세요."1학년 여학생이었다. 처음엔 선생님들이 신분 확인(?)을 하고 투표용지를 나누어 줄 생각이었지만 두 친구가 하겠다고 해서 자리를 양보했다. 그리고 마침내 투표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떠들다가도 투표할 순서가 되면 진지해졌다. 기표소에서 한참을 망설이는 유권자도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개표 결과 기권표가 다량 나왔다.
학생들은 좀더 현실적인 방식을 원했다. 어쩌면 그것(컴퓨터 사용시간 늘이기, 휴대폰 사용 등등)이 아이들이 생각하는 '청소년 인권'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본 모의 선거가 그것을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아이들의 호응도는 훨씬 높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었다.
처음 모의 선거를 시작했을 때는 단 1회로 정리를 하려고 했었다. 차후 수업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을 하고 나자 조금 더 깊이 들어 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직접 선거 포스터를 만들고 공약도 정하고 구호도 정하면서 새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수업을 진행 했던 나와 다른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덧붙이는 글 | 푸른학교(공부방)에서 중학생들과 4차시로 진행한 모의 선거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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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 꼬마당, 흑진주당, 그리고 올레당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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