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된 의료법 개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무회의 결정 이후 인터넷에서는 의료민영화 논란이 다시 번지고 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인 부대사업의 하나로 구매·재무·직원교육 등 경영지원사업을 추가 허용, 의료법인의 합병 허용 등 세 가지다. 무엇이 문제이기에 의료민영화 논란이 재연되기 시작하는 것인지 알아보자.
의사와 환자 사이 원격진료,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부는 의료취약지역 거주자가 의료이용을 잘 할 수 있도록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겠다고 한다. 개정안대로라면 의사가 컴퓨터나 영상통신을 활용하여 멀리 있는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처방하거나 대리인에게 처방전을 내주거나 약국으로 처방전을 발송할 수 있게 된다.
서울이나 대도시의 대형병원들이 원격 진료를 이용해 퇴원한 지방 환자, 만성질환자까지 진료하고 처방전을 발행하게 된다면, 중소도시나 읍면 지역에 있는 의료기관은 환자들을 다 빼앗기기 때문에 경영이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지금도 전국의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있으며, 지방에는 응급의료기관이 없거나 출산이 가능한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는 경우도 많다. 지방의 병의원들이 결국 문을 닫게 된다면 중소도시 내지 농어촌지역 주민들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만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접근성이 오히려 나빠질 것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좋아질 것인가? 큰 병에 걸린 환자는 수술 후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후속 진료를 꼭 수술 받은 대형병원에서만 받아야할 이유는 없다. 대형병원 의사와 환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병원 의사 사이에 원격진료를 해서 안전하고 정확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환자가 받는 의료서비스 질과 만족도는 의사와 직접 대면하여 진료 받는 것 만한 것이 없다. 기계와 통신을 통한 건강상태 파악과 의사가 아닌 다른 보건의료인에 의한 진료에 대해 환자가 만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원격진료에 따른 개인질병정보의 보호 장치도 미비하다. 원격진료 장비에 대한 비용 부담이나 안전에 대한 책임도 환자 몫이다. 결국 환자 입장에서는 좋을 것은 거의 없고 비용부담과 책임만 커지게 될 것이다.
현재도 의사와 의사 사이에 원격진료가 허용되어 있다. 의사나 간호사도 없이 직접적인 원격진료가 이루어지는 것은 환자 안전과 진료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의사와 의사간의 원격진료를 보다 활성화하고 의사가 없는 일부 지역이나 장소라 하더라도 최소한 의료인을 통한 원격진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던 의료법인을 사고파는 기업 취급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병원은 대부분 의사가 개설한 의료법인과 비영리법인(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재단법인)이다. 의료법인은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며 민법상 '비영리법인'에 해당하는 세제혜택 등을 정부가 지원을 해주어 의료인이 세우더라도 상당한 공공적 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이러한 의료법인에게는 의료사업 이외에 수익사업을 제한하고 있으며 의료법인이 파산하면 남은 재산은 국고로 귀속된다. 지금까지 의료법인의 합병이 불가능했던 것은 의료법인의 공익성을 인정하고 일반 기업과 같은 수익추구를 위한 인수합병이 성행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의 의료법인 관련 조항은 바로 의료법인의 공공성을 포기하고 영리추구 사업을 대폭 열어주려는 규제완화이다. 먼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다른 의료기관의 경영을 지원하기 위하여 의료기관의 구매, 재무, 직원교육, 임금체계․ 후생관리 및 경영진단 ․ 평가를 수행하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추가 허용한다면, 이는 장례식 운영과 같이 수익 창구를 하나 더 마련해주는 것에 그치리라고 보지 않는다.
지금도 의료기관과 별도로 병원경영지원회사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기관에 의한 구매, 재무, 직원교육, 경영진단 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법인이 직접 다른 병원의 경영 지원과 경영진단 평가 등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여기에 의료법인의 합병 허용까지 이루어진다면 대형병원들이 지방의 중소병의원까지 합병하여 계열화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인은 공익성보다는 사실상 영리추구 경향이 매우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의료법인이나 대형병원들이 지방의 중소병의원까지 합병하고 대형병원의 독점과 계열화가 이루어진다면 영리 추구와 경쟁이 더욱 심화되어 지역간 의료자원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민영화 추진 악법
정부는 의료법 개정의 취지에서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을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대형병원들 중심으로 의료의 영리화, 기업화를 촉진하고 의료기관 운영에 정보통신회사, 경영지원회사 등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며, 의료영역에 자본의 투자를 유인하려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그나마 있던 의료법인에 대한 정부 규제를 완화하여 의료를 더욱 시장화하고 정부의 책임을 시장에 다 넘기는 의료민영화 추진의 핵심적인 법안이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의료법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의료를 더욱 시장화할수록 국민들은 높은 의료비부담만 커지고 저소득일수록 의료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의료이용의 양극화만 심해질 것이다. 지난 2009년 의료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었을 때 1만 4천여 명의 시민이 반대의견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8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의 반대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국회에 제출했다. 이제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로 넘어갔다. 의료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는 국민의 여론에 달려있다.
덧붙이는 글 | 조경애 님은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4.22 18:09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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