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제주 서귀포 중문해수욕장 들머리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왼쪽)과 국내 최고령 해녀인 고인호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선대식
"이레옵써(이리 오세요)! 만 원! 만 원!"
26일 오후 제주도 중문해수욕장 들머리가 떠들썩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가운데, 해녀들은 직접 잡은 해산물을 벌려놓고는 올레꾼들을 자신들의 파라솔로 이끌었다. 이날 오전에 잡았다는 성게와 소라를 입에 넣는 순간, 싱싱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이곳의 유명인사는 고인호(86) 할머니다. 국내 최고령 해녀인 고 할머니는 "함께 사진찍자"는 올레꾼들의 요청에 "백 번은 더 찍었다"며 손사레를 치면서도 카메라 앞에 섰다.
글자를 모르는 고 할머니가 삐뚤삐뚤 적은 한글 자모가 최근 제주올레 공식 서체로 재탄생되면서 고 할머니의 유명세는 더욱 커졌다. 올레길 곳곳에서 고 할머니의 글씨를 만날 수 있다.
고 할머니는 '화살표의 기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주올레는 단순히 인기 있는 도보여행코스를 넘어서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면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제주올레 덕에 중문관광단지뿐 아니라 송이슈퍼도 돈 번다26일 저녁이 가까워지자, 서귀포 월평마을과 대평포구를 잇는 제주올레길 8코스에는 새 찬 비바람이 모자를 푹 눌러쓴 얼굴을 때렸다. 신발은 젖은 지 이미 오래다. 우비로 몸을 꽁꽁 싸매도 옷이 젖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비바람은 또한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올레길은 비가 와도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며 "제주올레 초창기 수백 명의 사람들과 비오는 올레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날 '평생 맞은 비보다 더 많은 비를 맞았다'는 올레꾼들과의 추억은 잊지 못한다"고 밝혔다.
비바람 속 걷는 길이 크게 힘들지 않은 것은 길 위에서 만나는 '점빵(구멍가게)' 덕분이다. 특히, 올레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올레꿀빵' 한 개면 주린 배를 달래기에 충분하다. 아이들 주먹만 한 크기의 팥빵에 유채꿀과 견과류를 입힌 올레꿀빵은 고소한 맛에 올레꾼들에게 큰 인기다.
점빵뿐 아니라 신선한 해산물로 제주 음식을 만들어 파는 '할망집'이나 도시사람들 눈높이에 맞춰 주민들이 만든 분위기 있는 카페·식당에도 올레꾼들이 많이 찾는다. 최근 올레길 주변에 점빵이나 카페가 많이 늘었다. 쇠락했던 마을경제가 올레길로 인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