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에 갔다, 우연히 만난 인연

등록 2010.04.30 13:59수정 2010.04.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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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갑식목사 가족과 동창생(앞줄 왼쪽)

오갑식목사 가족과 동창생(앞줄 왼쪽) ⓒ 오문수


40년 된 초등학교 친구들 동창회에 갔다. 올 봄,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오는 날씨인데도 오늘은 하늘이 참아 주었다. 궂은 날씨와 비바람에 벚꽃은 거의 다 지고 듬성듬성 진달래가 우리를 맞이한다. 오염원이 하나도 없는 마을길로 들어서니 공기가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동창회가 열리는 곳은 전남 곡성군 봉조리 1구.


이 마을유래를 보면 마을 뒤 곤방산의 상서로운 봉황이 알을 품기 위해 이곳에 깃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따온 봉황의 '봉'자와 현조(玄鳥)의 새'조'를 빌어와 봉조리라고 불렀다. 현재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깊은 산속마을이다.

이조 초기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해지나 임진왜란을 피해 이 깊은 골짝까지 피난 와서 살지 않았나 싶다. 난중일기를 보면 왜군이 남원을 거쳐 곡성을 거쳐 지나갔고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마치고 수군진영으로 내려갈 때 옥과에서 1박하며 수군을 징집했던 기록이 있다. 어릴 적 이 마을은 곡성에서 가장 오지로 여기던 곳이다. 그만큼 이 마을은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다.

친척이 사는 이 마을은 우리 집에서 버스로 10킬로미터 쯤 떨어져 있다. 버스에서 내려 이 마을까지 가려면 다시 십리쯤 걸은 것으로 기억한다. 인근 동네와 멀리 떨어지고 교통이 불편해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졌던 곳이다.

나무로 불을 때던 시절 우리 동네 사람들이 며칠씩 움막을 짓고 나무를 하던 이 동네. 당시 길이 어찌나 험한지 나무를 가득 실은 우마차가 조금만 잘못해도 벌렁 넘어지곤 했던 곳이다. 지금은 자동차 한 대가 비켜갈 수 있도록 시멘트로 포장해 놨다.

a  광대나물. 잎을 살짝 벌려 벌을 유혹한다

광대나물. 잎을 살짝 벌려 벌을 유혹한다 ⓒ 오문수


a  골담초. 어릴적 따 먹기도 했었다

골담초. 어릴적 따 먹기도 했었다 ⓒ 오문수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친척집에 결혼식이 있어 어머니 손을 잡고 버스를  내려 산길을 오르는데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고 있었다. 가마꾼들은 힘들었든지 몇 번이나 쉬어가곤 했다. 가마 탄 신부는 십리 길 내내 울었다. 깊은 골짝에서 살 일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으리라.


결혼식 치르고 어른들과 함께 밤에 잠잘 때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집 뒤 대나무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오금을 저리게 하는 데 앞산에서 늑대까지 울었다. 잔칫날이라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소름이 끼치던지.

a  산골짜기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조팝나무

산골짜기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조팝나무 ⓒ 오문수

a  시골 어디가나 볼 수있는 모습이다. 힘없고 외로운 노인은 어디를 쳐다보고 계실까?

시골 어디가나 볼 수있는 모습이다. 힘없고 외로운 노인은 어디를 쳐다보고 계실까? ⓒ 오문수


동네 뒷산으로 올라갔다. 온갖 꽃들 잔치다. 졸졸 흐르는 물위에 철을 넘겨 쇠어버린 버들강아지가 이제 보송보송한 깃털을 가진 새 새끼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바람이 불면 조팝나무 하얀꽃들이 눈송이처럼 날린다. 어릴 적 친구들과 따먹던 골담초, 꽃잎을 열고 벌을 유혹하는 광대나물이 아름답다. 논둑가에 하얗게 펼쳐진 황새냉이는 눈을 뿌린 것만 같다. 이 곳의 자연 모두가 그림이다.


옛날을 회상하며 동네로 내려오는데 교회에서 성경 읽는 소리가 들린다. 교회에 자신을 데려다 주고 구경 끝나면 교회로 오라는 초등학교 동창 생각이 나 교회에 들어갔다. 여러 명이 모여 있을 것으로 상상했던 꿈은 깨졌다. 고작 5명. 목사님 가족 4명과 여자 동창생이 전부다.

성경 공부가 끝나고 수인사를 나눴다. 알고 보니 목사는 집안의 형님뻘 되는 아들이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 어른이 기독교를 허락할 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 자리에 교회를 지었는지와 목사가 된 내력을 들었다.

a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목회를 하는 오목사 . 영어와 성경 캠프를 운영하기도 한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목회를 하는 오목사 . 영어와 성경 캠프를 운영하기도 한다 ⓒ 오문수


오갑식(48) 목사는 순천공고를 나와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시절 허무주의에 빠져 공부는 꼴등이나 마찬가지였다. 명예, 돈, 권력이 다 부질없는 것처럼 보였고 18세부터 무덤을 찾아가 독서를 했다. 무덤가에 의자를 놓고 니체와 파스칼을 읽었다. 인생은 덧없고 하루살이처럼 죽을 목숨이고, 인생은 한 번 왔다가는 데 누구 아들이 사법고시 패스했다고 자랑하는 것이 우습게만 보였다.

아우렐리우스를 500번 정도 읽고 26세에 성경을 만났다. 그 후 죽음에 대한 문제를 초월하며 방위근무시절 동네에 예배당을 신축했다. 당시 아버님은 자신을 미워했다. 순천에서 아파트 공사도 했지만 느낀게  있어 30세에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후 26년 동안 목사로 근무했지만 월급은 한 푼도 받아보지 못했다.

"수입이 있어야 생활을 할 것인데 경제문제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2400평의 매실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많을 때는 11명이었는데 전학 가고 노인들까지 합해서 7명 정도 됩니다. 동네에서는 수입이 없지만 외부에 나가 영어와 성경 강의를 다니죠. 여기는 아름다운 물소리, 새소리, 봄날의 빛으로 무릉도원 같은 곳입니다. 토끼, 고라니, 멧돼지가 수시로 출몰하고 고라니는 개울가에 와서 풀을 뜯기도 합니다."

a  논둑길에 지천으로 널려 뽑아서 버리기도 한 돈나물. 어릴적 하도 흔해서 먹지도 않았었다.

논둑길에 지천으로 널려 뽑아서 버리기도 한 돈나물. 어릴적 하도 흔해서 먹지도 않았었다. ⓒ 오문수

a  황새냉이. 논두렁에 눈이 온 것같다

황새냉이. 논두렁에 눈이 온 것같다 ⓒ 오문수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영어강의를 한다는 데 관심이 쏠렸다. 영어교사인 내게 그의 말은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성지순례를 갈 때 비행기에서 오렌지주스 달라는 말도 못했어요. 갔다 와서 40만원이 넘는 영어캠프를 3주씩이나 훈련받고 40여권이 넘는 회화 책을 사서 공부했습니다. 수백 번 이나 MP3를 듣고 책1권을 통째로 암기해도 외국인과 회화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하다 터득한 것이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가 어려운 것은 첫째, 어순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영어의 핵심은 동사인데 동사가 요술을 부리기 때문이죠.

영어회화의 필수인 be동사, have동사, 일반동사, 조동사 등을 현재, 과거, 미래, 부정형, 진행형 등으로 구구단화하여 50여개의 '영어구구단'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하루 11시간 군대식으로 입으로 고함치며 손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5박 6일 동안 유격 훈련식으로 암기합니다. 이렇게 되면 200여 개의 영어 회화의 기본문장을 암기하게 되어 응용하면 수백여 개의 문장이 되겠죠. 캠프를 마친 사람들이 다들 횡재했다. 원자탄을 만났다고 성원해 줍니다. 제 캠프 훈련 내용이 SBS와 KBC TV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a  철이 지나 쇠어버린 개울가 버들강아지가 어린 새털같이 보송보송하다

철이 지나 쇠어버린 개울가 버들강아지가 어린 새털같이 보송보송하다 ⓒ 오문수

a  시골마을의 커다란 수입원 한봉

시골마을의 커다란 수입원 한봉 ⓒ 오문수


담양의 학교에 근무하다가 오목사한테 시집왔다는 부인한테 물었다.

"이 골짜기까지 시집와서 후회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여기가 좋아요. 동네도 좋고, 야생동물이 뛰어노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목사님이 좋아요"

오목사가 거들었다.

"장모님이 제가 인사드리고 세 시간 만에 결혼을 허락하셨는데 결혼식 직후 장롱을 싣고 여기 와서 화를 내셨죠. 이렇게 산골짜기인 줄은 몰랐다고요."

오목사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 동네를 방문할 것은 예정에도 전혀 없었다. 발길이 끌려 우연히 찾아간 끝에 만난 것이지만 아는 분은 다 돌아가셨다. 인연, 그것은 나도 모르게 발길이 끌리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에도 송고합니다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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