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누구보고 나쁜 놈들이래?

[서평] <작은책>이 내놓은 알짜배기 노동자 이야기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등록 2010.04.30 15:28수정 2010.04.3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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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과 윤구병 선생의 철학으로 시작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월간 <작은책>이 15살이 됐다.

"뭐, 노동자가 글을 써? 모든 게 전문으로 돼가는 세상에 일꾼들은 일만 할 것이지. 임금 올려라, 일하는 시간 줄여라 하여 농성하고 데모하고 하더니 이제는 글까지 쓰겠다고? 참 별꼴 다 보겠네." -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23쪽)


노동자들도 글을 쓴다고 하면 먹물 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먹물도 아닌 나 역시 월간 <작은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나를 노동자로 눈뜨게 한 월간 <작은책>

여성신문사에서 해고되고 시작한 것이 무가지 신문 배포 도우미였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이들은 시급 5000원짜리 노동자의 모습 이상의 것을 보려 하지 않았다. 오후에 나가던 학원에서는 만 몇 천원의 돈을 벌기 위해 새벽마다 서너 시간씩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신문을 배포하는 '노동자 이명옥'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그 괴리감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일상의 소소함을 글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첫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실린 '대한민국 40대는 설 자리가 없다'였고 그 기사를 읽은 방송대 강사 덕분에 난 학원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역할만 다를 뿐 노점상, 상자 줍는 노인, 신문 배포 도우미, 학원 강사 모두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노동자들이다. 내가 일하는 사람들의 잡지인 월간 <작은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난 아마도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월간 <작은책>을 만드는 이들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들이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쓴 20년 경력의 버스 운전기사 안건모씨, 독자사업부 일꾼은 코스콤 해고 노동자 정인열씨, 편집부 일꾼 역시 노동 운동권 출신의 최규화씨라는 사실이 월간 <작은책>이 지닌 정체성을 말해준다.

하지만 월간 <작은책>의 진짜 주인공은 <작은책> 대표나 일꾼들이 아니다. 일터에서 진솔한 자기 목소리를 글에 담아 전하는 수많은 노동자와 독자가 월간 <작은책>의 진정한 주인이다. 그러니 노동자인 내 정체성에 눈을 뜨게 만든 월간 <작은책>이  어찌 고맙고 감사하지 않으며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있으랴.


도대체 누가 나쁜 놈이라는 거야?

a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작은책에  실은 글을 모아 엮었다.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작은책에 실은 글을 모아 엮었다. ⓒ 작은책

월간 <작은책>이 15년을 돌아보며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누가 사장시켜 달래?>,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 등  총 3권의 단행본을 선보인다고 한다.

첫 번째 책<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에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노동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미려한 문장도 없고 화려한 수식어도 없지만 책갈피마다 감동이 넘쳐나는 이유는 남의 이야기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아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은 이렇게 사시는구나. 우리 엄마들이 그렇게 고생을 하셨구나. 맞아, 나도 그런 경험을 했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만큼 솔직하게 털어 놓은 글이 주는 감동이 크다.

글을 읽으면서 2003년 해고된 뒤 지하철역에서 무가지 신문을 돌리던 내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코끝이 시큰해졌다. 내가 무가지를 돌리던 첫날의 감정을 그대로 기록해 두었더라면 그 감동이나 느낌이 훨씬 강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여성신문사를 다니다 실업자가 되어 지하철역에서 무가지 신문을 돌리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 거의 한 달을 울며 다녔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때까지 육체노동을 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고 노동 현장을 단 한 줄의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씁쓸하게도 15년 전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 노동현장의 현주소다. 생리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잘릴까 봐 월차 한번 쓰겠다는 소리도 못하고 일하는 아줌마 노동자, 몇 천원의 경비를 줄이려고 용역 경비를 들이고 30년 이상 경비로 일 해온 60대 경비를 해고한 아파트, 밀린 임금을 달라고 했다고 온갖 수치와 모욕, 욕설을 들어야만 했다는 여성 노동자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대체 누가 누구보고 나쁜 놈들이래?'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정당한 노동 대가인 밀린 임금을 받으면서 사장의 눈치를 살펴야한다.  자본가는 걸핏하면 노동자가 데모를 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다고 투덜댄다. 무더기로 노동자들을 잘라내면서 회사가 어려워 정리해고를 하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힘없는 노동자들은 그저 일자리에서 떨려나지 않으려고 온갖 수모와 장시간의 노동을 묵묵히 견뎌낸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노동, 더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도대체 누가 진짜 나쁜 놈들이라는 것인가? 15살 <작은책>이 내놓은 알짜배기 노동자의 목소리를 통해 노동자가 서 있는 현주소를 되짚어 보자. 그리고 정말 누가 나쁜 놈들인지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 보길 바란다.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배고파 밥 달라고 하는 우리들한테
회사를 말아먹을 나쁜 놈들이래.
우리가 일해 놓으면
알맹이는 깡그리 챙겨가고
우리에게 빈껍데기만 남겨주면서
주는 대로 받고 고분고분 일하지 않는다고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언제는 한 가족 한 가족 하면서
일만 곱빼기로 부려먹고
최소한의 생계비라도 보장해달라면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이래.
회사 망쳐놓을 빨갱이 세력들이래.
텔레비전에서도 신문에서도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래.
뼈 빠지게 일해서 우리는 먹지 말고
저들에게 갈퀴로 걷어가는 이익을 주는
충실한 종이 아니라고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래.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래.

개자식들...
                 [대우기전노동조합 조합원 1996년 3월]

월간 <작은책>은?
1995년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창간한 <작은책>은 지난 15년 동안 출판된 노동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상업 출판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출판 현실에서 <작은책>은 형식과 내용에서 기존의 생각과 상식을 뛰어넘어 밑으로부터의 출판이라는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

<작은책>은 이 땅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이 살면서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나가는 잡지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긴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시작은 일하는 삶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데 있다. 진솔한 글 속에 삶이 있고, 일하는 삶 속에 글이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글모음,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작은책>은 바로 내 이야기다.

월간 <작은책>은 강좌를 통해 많은 진보 인사들과 독자들과의 만남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는 정신으로 창간과 함께 시작된 글쓰기 모임은 서울, 부산, 경남 지역에서 매달 이어지고 있으며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작은책 편집부 엮음,
작은책,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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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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