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베트남 작전지(망망계곡)에서 맨몸에 방탄조끼만을 걸치고 포탄을 나르거나 벙커 짓는 일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때 고엽제에 노출되지 않았나 싶다.
지요하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까스로 사태가 수습된 후, 작전지에다 침실을 짓고 잠옷 차림으로 잠을 잤던 대대장은 즉각 구속되었고, 연대장도 고국으로 송환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작전 중에 벌어진 일이므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은 모두 당연히 '전사'로 처리되었지만, 너무도 큰 지휘책임 문제여서 대대장과 연대장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병행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단장에게도 징계가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사건이 고국에 알려지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보도통제 역시 당연이고 필연이었다. 그 상황을 직접 겪었거나 부대 안에서 소상히 알게 된 병사들에게는 특별 정훈교육이 행해졌다.
베트남 전장에서 돌아오는 모든 병사들은 수송선 함상에서부터 또 부산의 모 부대에 머무르는 사나흘 동안 집중적인 정훈교육을 받아야 했다. 베트남에서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을 발설하지 말라는 것이 그 교육의 요체였다.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 것이 국익을 위한 일이고, 파월장병의 명예에도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군인, 군인정신이 없다천안함 사고를 보면서 나는 과거 베트남 전장에서 보고 듣고 겪었던 수많은 일들, 그중에서도 영현실 풍경이 자꾸 떠올라 이상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연대본부 옆 209이동외과병원 영현실 안이 넘쳐서 너른 마당에 길게 놓여져 있던 시신들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곤 했다. 앉은뱅이 야전침대 위에 눕혀진 채 이마에까지 덮인 하얀 시트 밖으로 바람에 나풀거리던 머리칼들….
숨이 막히는 듯했던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그때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것은 분명 '행운'이지만 행운을 의식하는 것 또한 죄악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는 것이었다.
지난날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해군장'으로 엄수된 천안함 순국 '46용사'들에 대한 영결식 관련 보도를 TV에서 여러 번 보았다. 특히 해군참모총장의 '조사' 내용이 너무도 과감하고 결연해서 내 뇌리에 아프게 엉겨 붙는 느낌이었다.
그는 "백령도에서의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를 절대 용서할 수 없으며 용서해서도 안 되며 잊어서도 안 된다"라고 했고, "우리에게 큰 고통을 준 세력들이 그 누구든지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내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이야 결연했지만 내 눈에는 군인다운 기백이 없어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지켜보는 앞에서 충성 서약을 하는 것만 같았고, '정략'의 그림자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에게 군인의 참 가치 기준은 무엇이고, 그가 과연 '군인정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