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우리 집 카사 이야기 (13)

등록 2010.05.06 09:47수정 2010.05.06 09:4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원한 것은 없다

 

a  새 보호자 박명수 화백과 카사의 첫 상견례

새 보호자 박명수 화백과 카사의 첫 상견례 ⓒ 박도

새 보호자 박명수 화백과 카사의 첫 상견례 ⓒ 박도

나는 평생 국어교사를 했으니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 '거자필반(去者必返,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옴)'이라는 한자말을 숱하게 거듭 가르쳤다.

 

이는 만남과 헤어짐이 덧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은 점차 나이를 먹은 뒤 학교 밖 세상살이에서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은 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만날 수 없는, 먼 길을 떠날 줄을 미처 몰랐다.

 

단짝 친구가 젊은 나이에 한 줌 흙으로 돌아간 것을 보고, 어린 제자가 한 마디 말도 없이 영영 떠나는 것을 본 뒤, 나는 가슴 아프게 '생자필멸(生者必滅,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회자정리(會者定離)'를 뼈속 깊이 체득하게 되었다. 이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지난해 어느 날, 아내가 "우리 이제 안흥생활을 접고 원주로 이사 갑시다"라는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첫 마디로 "카사는?"하고 되물었다. 순간 퍼뜩 그 녀석과 헤어질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원주 아파트에서는 반려동물을 기를 수 없는 데다가 그동안 3년 가까이 바깥에서 자유를 만끽하던 그 녀석을 다시 실내에 가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a  거실 장롱 위에서 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거실 장롱 위에서 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도

거실 장롱 위에서 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도

 

몇 날 고심 끝에 우리 부부는 그래도 제 생활에 익은 그곳에 떨어뜨려 두고 오고자 새로 이사 올 분에게 카사를 부탁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와 인연의 끈이 더 남았는지 하필이면 이사 보름 전 그 녀석이 들 고양이에게 물려 크게 다쳤다. 원주 삼성동물병원에서 서너 바늘 꿰매는 수술까지 받았다.

 

a  2004년 카사가 우리집에 왔을 때 모습

2004년 카사가 우리집에 왔을 때 모습 ⓒ 박도

2004년 카사가 우리집에 왔을 때 모습 ⓒ 박도

이사 직전 상처는 아물었지만 도저히 그놈을 그곳에 떨어뜨려 두고 올 수가 없어 원주 아파트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날마다 바깥에서 맘대로 뛰놀던 녀석이 다시 실내에 갇히는 생활을 하게 되자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날씨도 추운 데다가 제 놈이 바깥을 내다보니 고층(5층)이니까 곧 체념을 하는 듯 긴 겨울을 실내에서 그렁저렁 함께 살았다.

 

수의사가 아파트에서 고양이와 같이 지내려면 털을 깎아줘야 한다고 하기에 동물병원 부속미용실에 맡겼더니 두 시간 뒤에 찾으러 오라고 했다.

 

두 시간 뒤에 갔더니 카사란 놈의 털을 말끔히 밀어 놓았다. 고양이는 그대로 털을 깎으면 미용사를 할퀴기에 어쩔 수 없이 털을 깎기 위해서는 전신마취를 시킨다고 했다. 아내는 그 얘기를 듣고는 다시는 전신 마취를 시켜 털을 깎게 할 수 없다고 펄쩍 뛰었다.

 

이별연습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점차 풀리자 카사란 놈은 다시 바깥세상이 그리운지 창가에서 바깥을 하염없이 내다보거나 저를 자유롭게 해 달라고 마냥 울면서 칭얼거렸다. 그때마다 아파트 옆 동 이웃에게 죄지은 듯 미안했지만 제 놈이 그 사정까지야 어찌 헤아리겠는가. 우리 부부는 봄이 되면 좋은 보호자를 구해 저를 다시 해방시켜주기로 작정을 하고는 물색을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았다.

 

a  풀밭에 뛰노는 카사

풀밭에 뛰노는 카사 ⓒ 이영수

풀밭에 뛰노는 카사 ⓒ 이영수

올 봄은 일기도 불순하고 날씨도 풀리지 않다가 지난달 말일(4월 30일)에야 완연한 봄 날씨인지라 평소 마음속으로 점지해 두었던 인근 귀래면 박명수 화백에게 우리의 사정을 말씀드리고는 카사를 부탁했다. 그러자 박 화백은 당신은 좋은데 부인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하기에 서로 상의한 뒤 가부를 알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이튿날 박 화백은 부인을 잘 설득했다고 하므로 카사를 사흘 뒤에 보내기로 약속했다.

 

막상 카사를 떠나보낼 날을 받자 그때부터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주 그 놈을 쳐다보기조차도 민망할 뿐 아니라 여간 죄스럽지 않았다. 제 놈도 그런 낌새를 알았는지 그때부터는 집안에서 울거나 보채지도 않은 채 얌전히 지냈다. 이대로 키울 걸 괜히 박 화백에게 전화했다는 후회도 들다가도, 어떻게 하는 게 카사를 진정으로 더 위하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우리가 그에게 자유로운 바깥 생활을 해주지 못하고 계속 아파트에 거둬 기르는 것보다는 여건이 좋은 집으로 보내는 것이 피차 덜 상처받는, 아름다운 작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나들이 때마다 출입문 버턴을 눌러야 바깥을 나갈 수 있는 아파트는 그에게 꼼짝할 수 없는 감옥이나 다름이 없다.

 

아내는 이날을 대비하여 카사를 미리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돌림병 예방주사도 맞히고 구충제도 먹였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아침, 방석 겸 침대를 새로 사 시집을 보내는 딸의 혼수처럼 챙겨주었다.

 

이미 그 이전에 제 밥과 화장실에 깔 모래도 넉넉히 주문하여 지참케 했다. 그동안 써오던 카사의 이런저런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목욕을 시켰다.

 

그날 밤 나는 그놈을 안고서 내 방으로 데리고 와 서로 눈을 맞추며 이별연습을 했다.

 

"카사야, 너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고 죄스럽구나."

 

나는 눈으로 그에게 사죄하며 용서를 빌었다. 이심전심이었는지 제 놈도 나도 눈가가 젖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점차 제 뜻대로 살기도, 자기조차도 간수하기 힘들지 않는가. 자기가 감당 못할 일은 하나하나 정리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a  이별 전날 새 침대 위에서 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별 전날 새 침대 위에서 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도

이별 전날 새 침대 위에서 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도

 

안녕!!!

 

카사는 2004년 5월에 내 집에 와 2010년 5월에 떠나니 만 6년을 우리 가족으로 함께 산 셈이다. 긴 세월로 볼 때는 6년이 짧을지라도 묘생(猫生, 고양이의 삶)이나 인생으로 볼 때는 결코 짧지 않다. 이날따라 카사는 새 방석에서 얌전히 포즈를 취해줬다. 나는 컴퓨터에 이미지를 담아 그가 생각날 때마다 두고두고 열어 보고자 그의 예쁜 모습에 카메라 셔터를 여러 번 눌렀다.

 

5월 4일, 마침내 카사가 박 화백 집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카사 짐이 쏠쏠했다. 승용차 뒤 트렁크에 가득 찼다. 아내 차에 카사를 태워 함께 떠나는데 그는 자기가 내 집을 영 떠나는 줄 알았는지 새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울었다. 우리 내외는 너를 더 좋은 집으로 데려다준다고 달랬다.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원주에서 귀래로 가는 길에는 신록이 싱그럽고 복사꽃을 비롯한 여러 꽃들이 산과 들에 야단스럽게 피는 무릉도원으로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a  카사의 새 보금자리인 하정화숙 뜰

카사의 새 보금자리인 하정화숙 뜰 ⓒ 박도

카사의 새 보금자리인 하정화숙 뜰 ⓒ 박도

 

미륵산 기슭 박 화백의 집 하정화숙(荷亭畵塾) 뜰에도 봄꽃들이 화사했다. 카사를 그 집 마당에 내려놓자 처음에는 겁을 먹고 슬슬 기더니 곧 제 집인 줄 알아차렸는지 새로운 호기심으로 온 집안을 쏘다니며 두루 살폈다. 그 녀석은 그곳이 자기가 살 터전임을 육감으로 알고는 마치 이사 온 새 주인 마냥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a  손수 지은 카사의 집앞에서 박 화백이 카사를 맞이하고 있다

손수 지은 카사의 집앞에서 박 화백이 카사를 맞이하고 있다 ⓒ 박도

손수 지은 카사의 집앞에서 박 화백이 카사를 맞이하고 있다 ⓒ 박도

박 화백은 그새 카사를 위해 손수 집까지 예쁘게 지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박 화백은 반가운 얼굴로 카사를 안고는 첫 상견례를 했다. 카사란 놈은 새 보호자와 인연을 담담히 받아들인 듯했다. 그리고는 우리 내외를 씩 한번 쳐다봤다.

 

"저에게 다시 자유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여기 남아 잘 살 테니 제  걱정 마시고 엄마 아빠 안녕히 돌아가세요."

 

그의 담담한 표정에서 그동안 우리 내외가 지녔던 미안함과 죄의식을 한꺼번에 씻을 수 있었다.

 

우리 내외의 염려가 한낱 기우인 양, 카사는 새 환경에 잘 적응하는 듯했다. 그동안 아파트에 갇혀 살면서 카사는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그는 다시 흙을 밟으며 새들의 노래를 듣고 쥐를 혼내주며 뭇 생명체들과 더불어 자유를 마음껏 즐기면서 남은 묘생을 살아가리라. 모든 생명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그게 하늘의 뜻이요, 강한 생명력이 아닐까. 그야말로 하늘의 순리를 따르는 자는 살아 남고, 하늘의 순리를 거스른 자는 살 수 없을 게다. 저를 데려다 줄 때의 염려와는 달리 저를 두고 떠날 올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카사야, 너의 새 보호자는 마음씨 고운 화가로 네가 잠들면 너의 아름다운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 줄 것이다. 그분 내외는 우리 이상으로 너를 잘 보호해 줄 것이다.

 

카사야, 이 밤 아빠는 너의 남은 묘생을 빈다. 새 집에서 첫날 밤 좋은 꿈꾸어라. 그동안 너를 사랑했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구나.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

 

a  어느 날 안흥집에서

어느 날 안흥집에서 ⓒ 진천규

어느 날 안흥집에서 ⓒ 진천규

덧붙이는 글 | 지난 6년 동안 오마이뉴스에 쓴 <우리 집 카사 이야기>는 모두 13편입니다 

2010.05.06 09:47ⓒ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지난 6년 동안 오마이뉴스에 쓴 <우리 집 카사 이야기>는 모두 13편입니다 
#카사 #고양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