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좋고 마라도 좋다

▲상동마을의 벽화. 가파도의 마을은 온통 벽화로 채색이 되어 있다.김종길

바람이 모질다는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5.5km, 직선거리로는 2km밖에 되지 않는 곳에 평평하게 누운 섬이 하나 있다. 이름 그대로 거센 파도가 밀려온다는 가파도다.

가파도라는 섬 이름은 옛날 모슬포항의 장사꾼들이 마라도나 가파도에 사는 주민들에게 물건을 종종 외상으로 주는 일이 있었는데 바람이 세어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나오지 못하는 일이 잦아 '갚아도(가파도) 좋고 말아도(마라도) 좋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라도보다 2.5배가 큰 가파도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정도에 불과하며 섬 전체가 27만여 평 정도이다. 조선 성종 때인 15세기 말 이곳에 목마장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섬이다.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가 살게 된 것은 현종 8년인 1842년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보다 앞서 영조 26년인 1750년에 제주 목사가 조정에 진상하기 위하여 소 50마리를 방목하였으나 소의 약탈이 빈번해지자 소들을 지키려고 1842년에 40여 가구 주민들의 입도를 허가하였다고 한다. 최근에 선사시대의 고인돌 56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가파도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된 계기가 된 곳이 가파도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1653년 가파도에 표류했으리라 짐작되는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이 국내에는 하멜 표류기로 알려진 <화란선 제주도 난파기>와 부록 <조선국기>를 저술하여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상동마을할망당 상, 하동마을에 한 개소씩 있는 할망당의 본당이다. 가족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던 신당으로 해마다 제를 지내고 있다. — ▲**상동마을할망당**상, 하동마을에 한 개소씩 있는 할망당의 본당이다. 가족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던 신당으로 해마다 제를 지내고 있다.김종길

접시 모양으로 평평한 섬인 가파도는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5m에 불과하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 한라산이라면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이 가파도다.

최근 이곳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편이다. 가파도에 올레 10-1코스가 개장하면서 가장 낮은 섬의 가치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지난 해 2만여 명이 찾았다고 하니 이 섬도 더 이상 변방의 외로운 섬은 아닌 셈이다.

상동포구에서 내려 제일 먼저 상동마을할망당을 들렀다. 상·하동마을에 한 개소씩 있는 할망당의 본당이다. 주민들이 객지로 나간 가족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던 신당으로 해마다 제를 지내고 있다.

푸른 바다와 나란히 걷는 해안길은 '큰왕돌'에 이르러 바람이 세어진다. 바위 위에 사람이 올라가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진다는 큰왕돌은 지금도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바람돌'이라고도 한다. 하동마을에도 이와 비슷한 '까매기동산'이 있다.

평풍덕과 작은 아끈여, 큰 아끈여를 지나니 거친 자갈길이 나왔다. 물앞이돌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든 걸어가야 한다. 가파도에 사신다는 노인 두 분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내를 걱정한다.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면 된다고 했는데도 노인들은 못내 걱정스런 표정이 가시지 않는다. 여행자의 눈에는 정겹게만 보이는 길이 섬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곳이었다. 바람이 거세어지면 이 길은 매번 파도에 쓸려갔다고 한다. 올해에는 포장이 될 것이라는 말에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바다와 수평을 맞추던 길이 갑자기 언덕 위로 솟아오른다. 눈앞에 끝없이 넓은 청보리밭이 펼쳐졌다. 올레꾼들도 이곳에서는 걸음을 멈추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보리밭 언덕길을 따라 다시 해안기로 접어들었다. 마라도가 지척이다. 섬은 걷는 속도에 따라 조금씩 아주 느리게 다가왔다.

하동포구에서 성게국수와 자리돔 물회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제주 특유의 이 음식들로 인해 가파도 여행은 더욱 맛있게 되었다. 얼마 전에 부임했다는 파출소 직원과 잠시 환담을 나누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가파도는 제주도의 유인도 중 유일하게 샘물이 솟는 곳이라고 한다. 고망물이라는 곳이 있어 예부터 물 걱정 없는 섬이었다고 한다. 제단 옆의 언덕을 올랐다.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추정되는 이곳에 서면 가파도의 드넓은 평지는 물론이고 산방산과 송악산 일대, 한라산까지 한눈에 보인다.

▲가파도 올레는 주로 해안길이다. 지척에 산방산과 송악산이 보인다.김종길

뒤시여를 지나 청보리밭으로 향했다. 18만여 평에 이르는 가파도 청보리밭은 이렇다 할 명소가 없는 가파도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명물이 되었다. 가파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청보리밭을 걷노라면 바람마저 누워 버린다.

한 여행자가 바다를 향해 구성진 소리를 한다. 그녀의 깊은 판소리는 파도소리에 묻힌 듯 아니 묻힌 듯 바람을 따라 흘러왔다. 검은 현무암과 아름다운 돌담길, 푸른 바다와 바람이 함께 하는 가파도는 가장 낮은 곳을 걷는 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돌아오는 뱃길에서 본 가파도.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5m로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이다.김종길

☞여행팁 가파도 가는 배는 모슬포항에서 타면 된다. 오전 9시, 11시(마라도 경유), 오후 2시, 오후 4시에 있다. 가파도 올레 길은 쉬엄쉬엄 걸어도 두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배시간은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사전에 모슬포항(064-794-5490)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요금은 삼영호는 왕복 8,000원 21삼영호는 왕복10,000원이다.

덧붙이는 글 | 2010년 4월 17일에 다녀 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2010년 4월 17일에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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