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 세력을 차단하라

[역사소설 민회빈강29] 법과 원칙을 지켜라

등록 2010.05.13 11:12수정 2010.05.1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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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아산에 머물고 있던 대사헌 조경이 강빈을 사사하라는 명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급 상소했다.

"신하가 반란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처형하는 것은 춘추(春秋)의 법입니다. 허나, 왕법에도 순서와 절차가 있습니다. 나인들의 옥사가 중단되어 증좌를 밝히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강씨의 죄목을 성급하게 결정하였으니 순임금께서 '의심쩍은 죄는 가볍게 처벌한다'는 가르침이 어디에 있습니까?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난 지 1년도 채 안 되었고 어린 아이들이 강보 속에서 울고 있는데 그들의 어미를 어찌하여 죽이려 하십니까? 강씨가 불효한다고 하여 소현이 살아 있을 때와 죽고 난 뒤가 이처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까? 강씨가 재물로 사람을 꾀지 않았나 의심하시는 것은 신하들을 너무 천박하게 대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모든 신하들을 이익이나 탐하고 염치가 없는 무리로 여기는 것입니다. 죄를 진 강씨에게 붙어 전하를 저버린단 말입니까? 전하께서 만일 소홀한 데서 변이 생기는 것을 우려하신다면 강씨를 섬에 정배하고 죽이지는 마소서."


대사헌의 직설에 분노한 인조는 조경을 이조참판으로 전보하고 그 자리에 이행원을 임명했다. 품계는 종 2품 동급이지만 대사헌은 사정기관의 장관이다. 지방에서 인사 조치를 당한 조경은 어이가 없었다. 삼성(三省)의 한 축인 사헌부의 수장이 상소를 올리면 가납하는 것이 통례였고 물리칠 경우 그에 합당한 이유를 붙여 승정원에 내려 보냈다. 감정적인 인사라 판단한 조경은 상경하지 않고 아산에 눌러 앉았다.

옥당 편액
옥당편액이정근

부제학 이기조, 부응교 민응협, 장령 박안제, 교리 남선, 부교리 강백년, 수찬 유경창, 엄정구가 강빈에게 사사는 부당하다고 상차했다. 역시 임금은 냉담했다. 옥당(玉堂)이 차자를 올려 강빈을 사사하라는 분부를 거두어들일 것을 청했다. 임금이 반응을 보이 않자 간관들이 인피하고 등청하지 않았다. 임금도 자리를 피하는 자들은 모조리 파직하라고 명했다. 임금과 대간의 힘겨루기다. 인조가 김자점과 비국당상, 삼사(三司)의 장관을 불러들였다.

"대각에서 쟁집(爭執)하는데 경들의 의견은 어떤가?"

"궁위(宮闈)에서 망측한 변이 발생하였으니 신하 누구인들 놀라지 않겠습니까만 법을 굽히고 은혜를 베풀어 변을 처리 하소서"
새로 임명된 대사헌 이행원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부제학의 의사는 어떠한가?"


"전대 제왕이 변을 급하게 처리하다가 후회를 남긴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번 내간의 일은 외부 사람이 그 진실을 알 수 없지만 혹시 용서할 만한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금이 이렇게 중대한 일을 처리 하실 때에는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여 처결해야 뒷공론이 없을 것입니다."
부제학 이기조가 속도를 조절하고 절차의 원칙을 지키자고 강조했다.

"강씨가 독을 넣은 일 이외에 어떤 죄가 있는가?"


"성상께서 지난번 야대에서 '국문할 때 별로 자복한 사람이 없었고 저주한 변도 분명히 드러난 흔적이 없으니 내 어찌 이것만으로 죄를 단정하고자 하였겠는가?' 라고 하교하셨으니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랬다. 인조는 동궁나인들이 가혹한 형문에도 한 마디 자복 없이 죽어간다는 보고를 받고 강빈을 단죄하는 것은 다른데 그 연유가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 점을 이기조가 상기 시키자 인조가 화제를 돌렸다.

"아내와 며느리, 어느 쪽이 더 중한가?"
"어찌 가볍고 무거운 구별이 없겠습니까."
"그렇다면 며느리가 아내보다 더 중하단 말인가?"
"친하고 먼 등급이 본디 같지 않으니 아내가 더 중합니다."

"성종께서 연산의 어머니를 사사할 때 그 당시의 여러 신하들이 쟁집(爭執)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오늘날의 여러 신하들은 며느리가 시역하려던 죄에 대해서 죽음을 면해 줄 것을 청하니 이것은 무슨 도리인가? 옥당의 차자에는 '여러 고아들'이라는 말을 하기까지 하였는데 그 어머니가 이미 악독한 반역 행위를 하였는데 울어대는 자식들을 위해 용서한다면 이것은 구차한 사랑이다. 그 자식들에게 다 유모가 있는데 어찌 죽는데 이르겠는가?"
인조의 노성이 섬뜩하게 빛났다.

천하의 간신들이 조정에 있다

"서인들 가운데 왕망과 동탁 같은 뜻을 품은 자가 못난 무리들을 협박하여 이런 논의를 폈을 것인데 경들처럼 관직이 높은 자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니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지금 이러한 논의를 편 자들은 근거 없는 말을 조작하여 대순·관숙·채숙과 당 태종의 일에 비유하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망발인가?"

"전하께서 왕망·동탁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신하로서는 차마 듣지 못할 바입니다."
김자점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성상께서 이처럼 격노하시니 신들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짜고 치는 투전을 모르는 이행원은 겁을 잔뜩 먹은 채 머리를 조아렸다.

"도헌(都憲)과 부제학이 조화시키지 못해서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김자점의 시선이 이행원과 이기조에 꽂혔다. 순간, 여섯 개의 눈동자가 불꽃을 튀겼다.

"김시번이 맨 먼저 정계(停啓)하자는 논의를 내놓았는데 서인의 위세가 막강하다 하겠다."

"소북과 남인들 중에 고상한 의논을 펴는 자가 많습니다."
김자점이 맞장구를 쳤다. 치고 싶은 정적이 소북과 남인에 많기 때문이다.

"남인과 북인을 말에 비유하면 채찍을 맞으면서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과 같다. 이것은 얻은 벼슬을 잃어버릴까 걱정하여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광해 조정에서부터 큰 의논이 있게 되면 한쪽 사람들은 반드시 대립하고 나섰는데 지금 유독 그렇지 않는 것은 서인들이 정권을 잡은 지 이미 20년이 지났으므로 기세가 두려워서 감히 이론을 제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각이 논한 목적은 우리 임금을 과오가 없는 곳에 인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당(黨)을 비호한다고 지목하시고 심지어는 서인과 남인을 거론하시니 놀랍습니다."
이기조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씨의 죄가 비록 무겁기는 하지만 자비심을 베풀어 목숨만은 살려주시어 은혜를 온전히 하소서. 그래도 마음을 고치지 않을 때, 법을 시행한다면 그 누가 옳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이행원이 자비를 호소했다.

윤비를 폐출한 성종은 옳았다, "나는 선왕을 추종할 것이다"

"성묘조(成廟朝) 때 연산의 어머니는 투기한 죄밖에 없었는데도 사사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요·순을 본받고자 하면 조종(祖宗)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나는 성묘조의 고사를 본받고자 한다. 알겠는가?"
격한 목소리가 빈청을 울렸다.

"강씨는 증오가 가득 차서 후환이 우려되기 때문에 내가 처단하고자 한 것인데 누가 감히 저지하려 하는가? 강씨가 큰 소리로 발악하기에 처음에는 몹시 이상하게 여겼으나 지금 와서 보니 후원하는 당류가 많은 것을 믿고서 그런 것이다."
강빈 배후세력은 서인들이라는 것이다.

"경들이 이처럼 여러 날 동안 논쟁을 벌이니 만일에 역적의 변란이 일어나 국가가 전복되어 멸망하기라도 한다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불측한 화가 있다 하더라도 고변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시아비의 뺨을 때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죄를 다스리는 자가 없을 것이다. 이러하고도 경들이 과인의 신하라 할 수 있는가? 이미 훈련대장으로 하여금 군사를 인솔하고 입직(入直)하게 하였다면 이것은 임금으로서 신하의 변란을 대비한 것인데 서인들이 태연히 논쟁하고 있으니 이는 반드시 배후에서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행원과 이기조가 친히 전하의 명백한 하교를 들었는데 이 뒤에 무슨 논의를 다시 하겠습니까."
김자점이 사헌부와 홍문관의 입을 봉쇄하고 나섰다.

"강씨를 용서하자고 주장하는 논의를 계속한 자를 대역(大逆)으로 단죄하지 않는다면 나라를 보존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논하지 말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삼성(三省)-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三司)-삼성을 삼사라 부르기도 한다.
옥당(玉堂)-홍문관
도헌(都憲)-대사헌
쟁집(爭執)-간쟁하는 것
궁위(宮闈)-궁궐
정계(停啓)-임금에게 보고하는 죄인 문건에서 죄인의 이름을 빼버리는 것
성묘조(成廟朝)-성종 시대


덧붙이는 글 삼성(三省)-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三司)-삼성을 삼사라 부르기도 한다.
옥당(玉堂)-홍문관
도헌(都憲)-대사헌
쟁집(爭執)-간쟁하는 것
궁위(宮闈)-궁궐
정계(停啓)-임금에게 보고하는 죄인 문건에서 죄인의 이름을 빼버리는 것
성묘조(成廟朝)-성종 시대
#인조 #소현세자 #강빈 #삼성 #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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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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