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호' 파는 것만이 능사인가?

9억 짜리가 3억도 안 돼... "관광용 유람선에서 벗어나라"

등록 2010.05.12 16:39수정 2010.05.12 16:39
0
원고료로 응원
a  사천시 대방동 앞바다에서 새 주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북선형유람선, 거북선호다.

사천시 대방동 앞바다에서 새 주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북선형유람선, 거북선호다. ⓒ 하병주

사천시 대방동 앞바다에서 새 주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북선형유람선, 거북선호다. ⓒ 하병주

"처음부터 몹쓸 거북선을 만들었나, 아니면 문화관광기획력의 한계인가?"

 

이는 사천시가 10억 가까운 돈을 들여 거북선형유람선을 만들어 놓고도, 7년밖에 사용하지 않은 채 아주 싼 가격으로 팔아버리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한 시민의 '가시 있는' 넋두리다.

 

실제로 사천시는 지난 6일 2억7000여 만원을 최저가로 해서 이 거북선형유람선을 팔겠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거북선호 매각 계획은 이번이 여덟 번째다. 일곱 차례 진행된 이전 입찰에서는 입찰인이 아무도 나서지 않아 유찰된 바 있다.

 

이 시민의 넋두리처럼, 사천시가 처음부터 부적절한 사업을 기획했던 것일까? 아니면 활용 방안을 충분히 검토하지도 않은 채 팔아치우기에만 급급한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거북선형유람선(=거북선호)에 얽힌 사연을 따라가 본다.

 

8억7400만 원 들여 만든 거북선호! 그러나...

 

거북선호는 지난 2001년 5월에 '사천시거북선형유람선의관리및위탁운영에관한조례'를 바탕으로 '사천시의 관광 진흥'을 위해 태어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유람선은 거북선 모양을 본떴다. 제조비용으로 8억7400만원이 들었고, 주요 재질은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s=유리섬유보강플라스틱)이다. 98톤에 길이 19.6m, 폭 6m, 깊이 2.6m 규모로, 최대 98명이 탈 수 있다.

 

a  거북선호는 98톤에 길이 19.6m, 폭 6m, 깊이 2.6m 규모로, 최대 98명이 탈 수 있다.

거북선호는 98톤에 길이 19.6m, 폭 6m, 깊이 2.6m 규모로, 최대 98명이 탈 수 있다. ⓒ 하병주

거북선호는 98톤에 길이 19.6m, 폭 6m, 깊이 2.6m 규모로, 최대 98명이 탈 수 있다. ⓒ 하병주

사천시는 이 거북선호를 만들어, 한 해 1000만 원 남짓의 임대비를 받고 삼천포유람선협회에 맡겨 운용했다.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처음 3년 정도는 이용객이 꽤 많았다고 한다. 주 이용객은 여행업체 소개로 내려온 전국의 50대 이상 여행객들. 이들은 1만 원 정도의 삯을 내고 고성 상족암과 수우도 등 삼천포항 주변의 한려수도를 관광했다.

 

이후 유람선이 점점 대형화 추세를 걷게 되고, 사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유람선이 등장하면서, 거북선호 이용객은 급격히 줄었다. 결국 삼천포유람선협회는 2008년5월에 사천시와 한 계약을 포기했다.

 

이때부터 거북선형유람선은 운항되지 않았다. 늑도항을 거쳐 지금은 대방항 귀퉁이에 정박된 채 새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끝내 새로운 민간위탁관리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사천시는 고민 끝에 이 유람선을 팔기로 했다. 2008년 10월 20일을 시작으로, 공개매각을 위한 입찰이 7번 진행됐으나 매번 단 한 명의 주인도 나타나지 않았다.


 

a  전용 유람선으로 만들어진 거북선호. 그래서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게 사천시의 해명이다.

전용 유람선으로 만들어진 거북선호. 그래서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게 사천시의 해명이다. ⓒ 하병주

전용 유람선으로 만들어진 거북선호. 그래서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게 사천시의 해명이다. ⓒ 하병주

처음 감정가격은 4억7000만 원쯤. 그러나 4차례 유찰된 뒤 다시 감정한 가격은 3억4000만원으로 낮아졌다.

 

그리고 5월 11일 오늘은 이 유람선의 여덟 번째 입찰이 있었다. 최저예정가는 2억7000여 만 원으로 내려갔지만 이날도 응찰자가 없어 또 유찰됐다. 결국 한 때 잘 나갔다는 거북선형유람선이 지금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이쯤에서 이 '애물단지'와 관련해 크게 두 가지 짚어 볼 문제가 있다. 그 첫째가 '처음부터 사업구상이 잘못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사천시로선 크게 반박하지 않는 눈치다. 한 때 "자리가 없어 못 탄다"는 말도 있었다지만 유람선이 선보인 초기에 그것도 관광성수기에 반짝 그럴 때가 있었던 정도였기 때문이다.

 

유람선은 잘 해야 3년? 그렇다면 새로운 발상으로 전환해야

 

반면 유람선 제조비용과 관리비용에 비해 거둬들인 수입은 고작 임대료 8000만 원 남짓. 게다가 유람선협회에서도 "임대기간 전체로 보면 오히려 손해 봤다"고 할 정도니, 사천시로서도 처지가 난감할 따름이다.

 

그나마 "거북선호 덕에 딱히 관광상품이 없음에도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위안의 소리도 들린다. 이점에 관해서는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평가가 뒤따를 필요가 있겠다.

 

그럼에도 거북선호를 만들고 이것을 활용하는 계획을 세움에 있어, 준비가 정말 꼼꼼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거북선모양을 강조하다보니 실내공간만 있을 뿐 실외공간이 없다는 게 약점이었다.

 

또 장년층의 유람선관광객만 주요 고객으로 삼았을 뿐 다양한 여행객을 수용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모양만 거북선이었지, 실제로 거북선과 이순신에 얽힌 이야기는 상품화 하지 못한 채 보통의 유람선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유람선업계에서는 흔히 "유람선은 잘 해야 3년"이라는 말을 한단다. 유람선도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상품을 내놓더라도 곧 다른 곳에서 따라 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온 말이란다. 그러기에 "사천시가 조금 더 살폈더라면 좀 더 종합적인 거북선호를 탄생시켰을 것"이라는 지적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a  대방진굴항에서 바라본 유람선 거북선호. 대방진굴항은 경남 문화재자료 제93호로, 고려시대에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구라량의 진영이 있던 곳이다.

대방진굴항에서 바라본 유람선 거북선호. 대방진굴항은 경남 문화재자료 제93호로, 고려시대에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구라량의 진영이 있던 곳이다. ⓒ 하병주

대방진굴항에서 바라본 유람선 거북선호. 대방진굴항은 경남 문화재자료 제93호로, 고려시대에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구라량의 진영이 있던 곳이다. ⓒ 하병주

둘째로 '이 시점에서 굳이 거북선호를 팔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겠다. 이와 관련해 사천시의 입장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엔진이 낡은 데다 기름을 많이 소모한다. 주재료가 FRP이다 보니 리모델링도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또 마땅히 위탁관리 하겠다는 업체도 나타나지 않고 있어, 마냥 내버려두면 값어치만 떨어질 뿐이다." 사천시 문화관광과 관계자의 말이다.

 

여기에는 유람선업계 관계자도 동의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 물 갔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굳이 가격을 매긴다면 1억원 안쪽"이라며, 지금 사천시가 추진하는 매각 금액보다 훨씬 낮아야 살 사람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지나친 판단이 아닐까. 물론 처음부터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거북선호를 제조한 한계가 있다지만, 좀 더 새로운 발상을 해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팔기 전에 다른 활용 방안을" 역사+교육+체험...

 

삼천포항에서 오랫동안 해양수산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A씨는 "비싼 돈을 들여 만들어 놓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사천시를 비판했다. 그는 유람선 안에 거북선에 있던 무기 모형을 만들어 놓거나 거북선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을 상영하는 등 시설을 개선해 학생들에게 체험기회를 주는 방안을 즉석 제안했다.

 

A씨의 제안이 얼마나 실현에 옮길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단순 유람관광용 목적에서만 벗어난다면 다른 발상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특히 이를 '교육과 체험'에 연결시킨다면 사천을 찾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a  대방진굴항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거북선과 연결지어도 손색 없는 곳이다.

대방진굴항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거북선과 연결지어도 손색 없는 곳이다. ⓒ 하병주

대방진굴항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거북선과 연결지어도 손색 없는 곳이다. ⓒ 하병주

경상남도는 몇 해 전부터 '이순신 프로젝터'에 많은 예산을 쏟아 부으며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이 정당한지, 또 구체적인 사업들이 적절한지를 따지는 것은 뒤로 넘기더라도,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관광 상품'을 만들겠다는 '의도'는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사천도 이순신과 인연이 깊다. 백의종군 할 당시 사천을 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곤명과 곤양 일부 도로가 '백의종군로'로 포장되고 있음이다. 또 이순신이 거북선을 이용해 최초의 승리를 거둔 곳이 용현면 선진리 앞바다란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밖에도 수 년 간 해전을 치렀다면 사천만과 삼천포 앞바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숨은 이야기가 있을 터, 이를 이야기 삼아 유람선을 띄우는 것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다행히 사천시는 뉴스사천의 취재가 들어간 뒤 작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3차 감정평가를 받은 뒤 다시 공개매각 할 것이라던 기존 입장에서, 활용방안을 먼저 찾아보는 쪽으로 무게를 옮기는 분위기다. 부디 좋은 해법을 찾아주길 기대한다.

 

a  사천시가 새롭게 꾸미고 있는 '거북선 모형 복원' 사업도 꼼꼼한 준비 속에 진행되길 기대한다. 사진은 정박중인 거북선호

사천시가 새롭게 꾸미고 있는 '거북선 모형 복원' 사업도 꼼꼼한 준비 속에 진행되길 기대한다. 사진은 정박중인 거북선호 ⓒ 하병주

사천시가 새롭게 꾸미고 있는 '거북선 모형 복원' 사업도 꼼꼼한 준비 속에 진행되길 기대한다. 사진은 정박중인 거북선호 ⓒ 하병주

덧붙여 거북선에 얽힌 사실을 한 가지 소개한다면, 사천시는 올해 사업비 10억원을 들여 원형에 가까운 거북선 모형을 만들 계획이다. 사천시 대방동에 이른 바 '거북선 공원'을 만들고 여기에 불을 뿜는 거북선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유람선이든 단순 모형이든, 거북선을 만들어 놓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는 지자체가 경남에만 여러 곳이다. 가까운 남해와 고성은 물론 진해에도 거북선이 상품화 되어 있다. 또 통영시는 무려 50억원을 들여 2척의 거북선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천시는 과연 어떤 거북선을 사천시민과 사천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선보이려 하는 것일까. 모르긴 해도 기왕 사천시의회까지 이 사업을 허락한 마당이니, 부디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을, 그런 거북선을 만들어주길 기대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www.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5.12 16:39ⓒ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사천(www.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뉴스사천 #거북선 #사천시 #이순신 #남해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언론, 작은 이야기... 큰 생각, 큰 여운...


AD

AD

AD

인기기사

  1. 1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5. 5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