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노조, 안전보건단체, 인권단체, 보건의료단체 등이 꾸린 공동대책위원회는 청구성심병원 노동자의 산재인정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구성심병원노조 홈페이지
"노노 싸움 만들어질 때 가장 힘들어"권기한 분회장은 대화 도중 종종 침묵했다. 기억 저편에 묻었을 과거를 말할 때, 이정미 전 지부장을 이야기할 때, 지금은 청구성심병원에 없는 동지들 소식을 전할 때 그랬다. 침묵은 날마다 전쟁터였을 지난 12년의 투쟁 현장을 지킨 그가 삼키는 상처였다.
폭언, 폭행, 업무과중, 부서 내 회식 배제, 사소한 실수에 경고 남발, 승진 탈락, 잦은 부서이동, CCTV 감시, 조퇴와 외출 엄격히 제한 등 나열하기도 벅찬 노조와 조합원 탄압을 견디는 것보다 권 분회장을 가슴 아프게 한 것은 다른 일이었다. 노노 싸움, 함께 싸웠던 이의 자살 시도, 힘들 때 의지했던 지부장의 사망까지 동지와 아픔을 같이 나누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매번 투쟁에서 관리자들은 서서 말만 할 뿐이다. 그 앞에서 몸싸움하는 사람들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라며 (사측이) 노노 싸움을 만드는 게 가장 힘들고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병원 내에서 조직활동을 할 때 못되게 구는 비조합원이 있다며 우리끼리 싸우는 것 같아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아픈 몸을 돌보지도 않고 투쟁만 했던 이정미 전 지부장의 사망, 이○○ 전 지부장의 자살 기도 때에도 참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권 분회장은 쓰러지고 아픈 동지들 옆에서 왜 조금이라도 돕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다시 짧은 침묵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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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기록한 청구성심병원 노동자 정신질환 |
청구성심병원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이 노동자는 심한 요통으로 방문했지만 요통보다는 불안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지 못하며 공포를 느끼는 행동을 보여 정신과 의뢰를 통해 적응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노동자로 인해 청구성심병원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다. 청구성심병원은 1998년부터 노사 갈등이 심했던 사업장으로 알려졌다. 사용자측은 노조 조합원들에게 직접 폭언과 폭력은 물론이고 감시, 승진 차별, 차별적인 업무 과부하, 회식에 끼워주지 않기, 인사해도 받지 않기와 같은 대화 배제와 단절, 부서 내 '왕따' 유도 등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스트레스와 압력을 드러내놓고 행사해왔다. 일상 업무와 활동 속에서 끊임없이 이뤄지는 인권침해 속에서 거의 모든 조합원이 초조, 분노, 공포, 우울, 가슴 답답함이나 두근거림, 소화불량, 변비, 어깨 결림, 두통 또는 불면 등의 증세에 시달렸다.
조합원 10명의 정신과의사 검진에서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적응 장애'와 '전환 장애', '수면 장애'라는 질환을 진단받았다. 발생 원인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근무조건과 근무환경으로 확인되었다. 이들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와 안전보건단체, 보건의료단체, 인권운동단체, 법률지원단체, 지역활동단체로 구성된 '청구성심병원노동자 집단산재인정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연구소 임상혁 소장이 집행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활동 결과로 정신질환 노동자 전원이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사업장은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되어 사업주 처벌이 이뤄졌다. 청구성심병원 문제 해결은 서비스노동자의 정신건강문제가 조명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업무상 질병에 정신질환이 포함된다는 성과를 올렸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10년사, 산업의학실,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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