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안과 바깥에서 자신의 정치를 외쳐라!

[서평] '가라타니 고진'의 <정치를 말하다>

등록 2010.05.16 11:11수정 2010.05.1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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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은 현대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국내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근대문학의 종언>이었고, 특히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주되게 관계를 맺었음에서 느낄 수 있겠지만 그의 작업 영역은 문학과 사실 깊게 관계가 있었다.

 

<근대 문학의 종언>을 말하던 '가라타니 고진'

 

a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 ⓒ 도서출판b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 ⓒ 도서출판b

이처럼 그의 출발점은 사실 '문학'이다.

 

그의 대표적인 초기 저작이 바로 <근대 일본 문학의 기원>에서 그는 이제까지의 시각을 전도시켜, '근대가 근대문학을 만들었다'는 이상으로 문학이 근대를 구성해온 역사들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무엇보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타자'다.

 

그가 근대국가와 세계 공화국을 위한 어소시에이션(협동조합)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는 것도 바로 이 타자의 문제에 깊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타자의 문제는 본래 윤리의 문제를 우리에게 강요하는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이 타자에 대한 천착은 그를 문학비평이라는 좁은 영역에서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타자의 문제를 다루게 되는 철학의 영역으로 옮기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탐구의 과정은 <탐구> <탐구2> <트랜스크리틱>이라는 세 권을 책을 비롯한 여러 대담집을 통해 국내에 이미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학자들이 내어놓는 책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결코 읽기 만만하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을 중심으로 삼아 일반명사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성을 가진 타자의 문제를 탐구하고, 마지막에는 칸트와 맑스를 경유해 어소시에이션이란 주제로 넘어가 근대국가를 극복할 방안을 찾는 그의 책들은 방대한 사유의 영역을 집적하고 있다.

 

때문에 독자들에게 이미 많은 것들을 알고 있기를 요구하는 것이 그의 책이 가지는 특징인데, 때문에 <트랜스크리틱>의 서문에서 그가 밝힌 고등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적었다는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책들은 일반인이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이것은 사실 매우 아쉬운 일인데, 특히 그가 대표적인 일본의 친한파 지식인의 한 명으로 서 진지하게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과 일본의 문제를 근대라는 시스템 속에서 사유하고 있는 규모가 큰 철학자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렇다. 즉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일종의 호수는, 탈근대를 위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 토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본과 한국이라는 근대의 문제에서 발생해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불편한 양국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연대의 초석이 될 양심적 지식인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그 자신은 이제 넘어서 있다고 하는 문제설정 속에서만 지나치게 이야기 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런 문제는 심지어 고진에 대한 국내 이해의 오해를 광범위하게 부르고 있을 지경이다. 난폭하게 줄이면 그는 그저 소설가가 소설로 밥벌이 할 수 없을 거라고 주장했다는 정도로 이해되어 버리는 경우가 이른바 국내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드물지 않을 정도다.

 

'고진 읽기'의 새로운 방법론 <정치를 말하다>

 

a  <정치를 말하다>

<정치를 말하다> ⓒ 도서출판b

<정치를 말하다> ⓒ 도서출판b

이런 형편에 이번에 나온 그의 새로운 책인 <정치를 말하다>는 반가운 책이다.

 

일본의 작가 '고아라시 구하치로'가 2008년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고진과 한 인터뷰를 정리한 이 책은, 고진이 이제까지 걸어온 사상적인 행로가 어떤 식으로 천착해 왔고 또한 어떤 방법으로 천착해 왔는지를 일상 언어의 친절함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다.

 

비록 그가 적어낸 본격적인 저술들의 세밀함과 탁월함은 없지만, 대략적인 개괄을 이해하고 이른바 '고진읽기'의 지도를 마련하는 데는 이 책만큼 좋은 자료는 달리 없을 것이다. 즉,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고진 입문을 위한 좋은 책이다.

 

그는 60년대 동경대에 재학하면서 안보투쟁을 몸으로 겪으며 문학비평을 시작했고, 안보투쟁 이후 모두가 이제는 낡았다고 버리기 시작하던 맑스를 다시 읽어 이해하면서, 그의 가치가 다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고 그를 평생 지니고 탐구할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물이 바로 알다시피 앞서 말한 <트랜스크리틱>이다. 후에 그는 비평가라는 좁은 틀을 넘어, 비판적 사상가로서 사유의 지평을 넓혀가는 그의 모습이 이 책에는 시원하게 설명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그의 변천은 그가 겪어온 실질적인 역사적 행로와 떨어지지 않는 것들이라, 대담 중간 중간에 그가 드러내 보이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에도 음미할만한 지점이 많다. 또한 이 책이 가진 매력을 더 추가한다면, 이런 면모들에 대해 인간 고진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 점이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라 할 것들은 다른 저술들에서도 담담하고도 강한 어조의 문체 속에서 충분히 느껴지는 요소이긴 하지만, 사회와 역사가 얽힌 가운데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이 책만큼은 느끼기 힘들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무엇보다 가라타니 고진 읽기의 입문서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탁월한 읽을 책으로 많은 이들에게 지적 자극이 되어 줄 것이다.

 

모두 함께 자신의 정치를 말하라!

 

a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1인 시위. 경찰차량 뒤에 모여 있는 경찰들이 박원석씨의 시위 모습을 감시하고 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1인 시위. 경찰차량 뒤에 모여 있는 경찰들이 박원석씨의 시위 모습을 감시하고 있다. ⓒ 권우성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1인 시위. 경찰차량 뒤에 모여 있는 경찰들이 박원석씨의 시위 모습을 감시하고 있다. ⓒ 권우성

지금의 한국은 민주화 운동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가 포함된 시절이며, 아울러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기도 하다. 한 명의 사회에 대한 탁월한 사상가의 생각을 그러한 정치와 연관하여 음미할 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우리의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환원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를 위해 필요하다 여겨지는 그의 말을 하나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대의제란 대표자를 뽑는 과두정입니다. 그것은 민중이 참여하는 데모크라시가 아닙니다. 데모크라시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 바깥의 정치활동, 예를 들어 데모 같은 형태로만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2010.05.16 11:11ⓒ 2010 OhmyNews

정치를 말하다 - 가라타니 고진의 민주주의론

가라타니 고진 지음, 고아라시 구하치로 들음, 조영일 옮김,
비(도서출판b), 2010


#정치를 말하다 #가라타니 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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