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한다고 결정고시가 난 펼침막이 동네 골목에 걸려있다.
한미숙
파마를 다 말 때까지 미용실에는 정말 '움직일 수 있는' 아줌마들이 오지 않았다. 택배 아저씨가 들러 누가 이 물건을 미용실에 맡겨놓으라고 했다면서 자그마한 박스를 주고 갈 뿐이었다.
아기 엄마는 학교에서 온 딸내미와 세 살배기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할머니는 집에서 차를 끌고 온 젊은 남자에게 열무를 실으라고 했다. 열무 세 단을 싣고 가기엔 골목길에 세워진 중형차가 너무 크고 번거로워 보였다. 할머니가 가고 나자 원장이 나지막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학 나온 손자가 아직 직장이 없어."사랑방 동네 미용실은 이웃들의 친근한 통로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기준에서 투표를 할 것이다. 아기 엄마처럼 집마련 할 때까지 재개발이 제발 멈춰지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할머니처럼 동네에 우뚝 솟은 깨끗한 아파트가 들어서서 집값도 오르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 다 컸다고 이젠 누가 교육감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미용실을 나오는데 대여섯 살 남자애가 과자봉지를 들고 울고 있었다. 원장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왜 우느냐고 물었다.
"엄만 어디갔니? 이리루 들어와 있어."아이가 미용실로 들어가자 마음이 놓였다. 아이를 찾으러 아이 엄마는 아마도 미용실로 올 것이다. 사랑방 같은 동네 미용실은 이웃들의 크고 작은 사연이나, 소식들이 오고가는 친근한 통로 구실을 한다.
내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교육도 끝나 버린다고 볼 수 있지만, 내가 사는 마을에 아이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 아이들이 미용실을 들락거리며 커가는 동안에 누구도 교육이 끝나버렸다고 할 수는 없다.
아장아장 걸음걸이도 불안한 어린 아이들이 엄마를 찾다가 미용실에도 들리고 그러면서 훌쩍 커갈 것이다. 우리의 교육정책도 훌쩍 크는 아이의 키처럼 한 오백년쯤 앞을 내다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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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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