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디자인된' 오세훈이냐, '폭발적인' 한명숙이냐

[取중眞담]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 감상기

등록 2010.05.30 18:55수정 2010.05.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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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일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래, <오마이뉴스> 기자가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와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운동 현장을 몇 차례 지켜보면서 받은 인상은 후보들의 성향만큼이나 선거운동 방식도 극과 극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오세훈 후보의 선거운동은 그가 내세우는 '디자인 서울'처럼 '잘 디자인된' 현장이었고, 한명숙 후보의 경우는 '치밀함은 없지만 뜨거운' 현장으로 요약된다.

오세훈 - 치밀하게 계획되고 세련된 현장, 준비된 시장의 모습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운동 방식은 한마디로 '세련됐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일 이후 오 후보의 동선을 살펴보면, 오전에는 봉사활동 참여나 간담회 등을 통해 유권자들을 만나고, 오후에는 거리유세를 펼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오전 일정을 진행하는 장소도 재임기간 동안 공사를 한 곳이나, 교육·보육공약과 연관되는 장소에서 공약 내용을 설명하고 유권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시민들과 일문일답을 나누는 오 시장의 태도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유권자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해주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한 자전거 동호인이 자전거 이용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도 "시민들의 취미생활이 자전거타기 외에도 수백 가지인데, 어떻게 자전거에 대해서만 그렇게 해줄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시민의 이해를 구했다. 그야말로 '준비된 시장', '균형 잡힌 시장'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오세훈 후보의 오전 일정에는 영상취재거리로 좋은 장면들도 많다. 어린이들의 등교길 안전을 돕는 모습, 자전거 동호인들과 자전거 타기, 학부모 타운 미팅에서 어린이들과 손도장을 찍기와 물장난을 치는 모습은 훌륭한 사진·동영상 취재거리가 됐다.

오 후보의 '테마 현장 방문'은 시민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공약 내용도 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진·동영상 보도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쉽게 구축할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잘 디자인된 유세'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은 이런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 준비와 연출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29일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사이에 있는 '물 위에 뜬 무대' 안에서 열린 '싱싱자전거 타운미팅'에 참석한 50여 명의 자전거 동호인들은 오 후보가 도착하기 전 구호 하나를 연습해야 했다. "씽씽 자전거, 쌩쌩 한강, 아싸 오세훈!"이라는 구호다.

당연히 이날 유세현장에서도 이 구호가 울려 퍼졌고, 승리를 확신하는 오 후보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많은 언론사 카메라에 담겼다.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플로팅스테이지에서 '싱싱자전거 타운미팅'을 갖고 자전거 동호인들과 함께 6.2 지방선거의 승리를 다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플로팅스테이지에서 '싱싱자전거 타운미팅'을 갖고 자전거 동호인들과 함께 6.2 지방선거의 승리를 다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유성호

자연스러운 모습 위한 출연자 섭외, 과연 필요할까?

그러나 완벽함을 추구한 부작용이랄까. 이면을 뜯어보자 금세 '부자연스러움'이 드러났다.

이날 자전거 유세 현장에는 자전거 동호인들과 같은 자전거 복장을 갖추지 않은 젊은 여성 1명이 끼어 있었다. 평상복 차림의 이 여성은 이날 오 후보 곁에서 자전거를 타며 촬영 포즈를 취했다.

이 여성이 있어서 현장 분위기는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비싼 MTB를 타고 자전거 복장에 헬멧과 고글을 완벽하게 갖춘 중년 동호인들만 오 후보를 둘러싸는 것보다는, 바퀴가 작은 미니벨로를 타고 평상복을 입은 이 여성이 끼어 있는 모습이 훨씬 친근하게 다가왔다.

오 후보의 자전거 유세가 끝나자 이 여성은 자전거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왔다. 7~8명의 무리들이 이 여성을 둘러싸고 "자전거 잘 타던데?"라며 칭찬을 늘어놨다. 이 여성이 탄 자전거도 자기 것이 아니었고, "사무처장이 갖고 온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아침에 자전거를 차에 싣느라 고생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날의 성공적인 자전거 유세 지원을 자축했다. 이들은 곧 자전거를 차에 싣고 떠났다.

유세현장을 다녀보면, 오세훈 후보를 마주치는 시민들의 반응은 아주 좋다. 특히 노년층과 40·50대 여성들에게 오 후보는 절대적인 환영을 받고 있고, 시민들이 줄지어 사인 요청을 하는 일도 잦다. 시민들의 반응이 이렇게 좋은 상황에서 굳이 인위적인 출연자 섭외가 필요할까?

한명숙 - 치밀함 결여, 선거운동원들도 힘들어하는 '악수 대행진'

한명숙 민주당 후보의 경우는 반대다. 사전 계획과 실행단계에서 치밀함이 보이지 않는다. 수차례 일정 변경 혹은 유세 취소가 있었다. 당일에 '펑크'나는 일정들도 있다.

29일 한 후보는 3일에 걸친 무지막지한 유세행보를 시작했다. 이른바 '지하철 올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승객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중간중간 유동인구가 많은 거점에서 유세를 펼친다는 것인데, 그다지 '과학적'이지 못한 방식이자 선거운동원들도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29일 오후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시작돼 건대입구역-잠실역-강남역-사당역-서울대입구역으로 이어진 이 '지하철 올레'에서 한 선거운동원은 "발이 땅에 들러붙는 것 같다"고 힘겨움을 호소했다. 이 선거운동원은 "이틀을 더 해야 돼요"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당초 계획의 '지하철 유세' 종착역은 신도림역이었지만, 이날 일정이 전체적으로 늦춰지는 바람에 서울대입구역이 종착역이 됐다.

한 후보는 이날 지하철 열차 안에서 1000명 이상, 유세 현장에서 1000명 이상, 이렇게 적어도 2000명 이상과 악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후보는 "손에 멍이 들었다"면서도 "시민들의 반응이 폭발적이기 때문에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29일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건대입구역에 내린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시민들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29일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건대입구역에 내린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시민들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남소연

낮은 지지율과 큰 차이 나는 '폭발적'인 현장 반응

선거운동 현장에서 한명숙 후보가 시민들로부터 받는 반응은 오세훈 후보에 대한 반응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라는 느낌이다.

미리 통제되지 않은 현장을 다니는 탓에, 한명숙 후보가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한 노인이 "2번 찍으면 안 돼! 빨갱이를 왜 찍어!"라고 호통을 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근처의 젊은이들이 "할아버지, 요즘 빨갱이가 어디 있어요?"라고 대신 반박해주기도 했다.

이날 '지하철 올레' 직전 열린 광화문 광장 유세는 '반응이 좋았다'라는 것으론 부족하고, '폭발적이다'라고 하는 게 맞았다. 광장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몰린 시민들은 한 후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박수와 환호를 쏟았고 '한명숙'을 연호했다.

시민들이 제작해온 피켓도 제각각. 이들은 피켓을 들고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들에게 한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4대강 반대', '민주주의 후퇴', '전쟁이냐 평화냐' 등 피켓에 적어온 이명박 정권 반대 이유도 다양했다.

이같이 '폭발적인' 반응은 지난 27일 여의도 유세에서 그 조짐이 나타났다. 400여 명의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한 후보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고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한 후보 선거대책위 관계자들도 이런 반응에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난 26일까지 조사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좁히지 못한 것은 이런 폭발적인 반응에 회의가 들게 하는 부분이다. 한명숙 후보가 사당역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던 시각, 한 20대 남성은 지나가면서 "이러면 뭘 하냐고, 지지율은 어쩔 건데?"라고 조롱하듯 말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명숙 후보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29일 지하철 유세 당시 기자가 '한 후보에 대한 현장의 반응과 지지율에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자 한명숙 후보는 "있는 그대로의 표심이 여론조사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한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공안통치'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표심이 위축돼 있는 것 같다"며 "여론조사와 선거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은 이명박 정부 집권 뒤 치러진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이미 나타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오세훈 #한명숙 #선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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