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죽'이 울고 갈 '뽕잎 바지락죽'

"밥 먹고 멀 허겄시유, 반지락이나 까야지..."

등록 2010.06.10 10:51수정 2010.06.2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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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동생이 오더니 새만금 방조제를 구경하고 부안에서 소문난 '바지락죽'이나 먹고 오자고 해서 형제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물막이공사가 끝나고 처음 가보았는데, 하늘과 바다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날씨가 좋아 무척 상쾌했습니다.  


수평선만 보이는 33km의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 '변산 온천' 입구에 있는 식당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니까, 그동안 다녀간 손님들이 음식이 맛있다며 적어 놓은 온갖 예찬론들이 벽을 도배하다시피 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지락회무침. 생선회와 달리 부드럽고 상큼하면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바지락회무침. 생선회와 달리 부드럽고 상큼하면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조종안

점심 때여서 그런지 빈자리가 없더군요. 세 명씩 따로 앉아서 '바지락회무침'을 주문했더니 한 그릇에 5천 원 하는 '바지락계란탕'이 서비스로 나왔는데요. 시골 촌구석에 자리한 식당임에도 손님들이 넘쳐나는 이유를 맛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오디를 벌꿀과 100일 동안 숙성시킨 원액으로 만들었다는 바지락회무침은 맛이 자극적이지 않았고, 부드러우면서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는데요. 온갖 양념이 들어갔어도 특유의 바지락 맛을 간직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리를 넣어 비빔냉면처럼 비벼먹기도 하는 바지락회무침은 바지락의 쫄깃한 맛과 새콤달콤한 양념 맛, 그리고 채소의 사각사각한 느낌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먹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것 같았습니다.

 바지락계란탕. 계란탕인지, 바지락탕인지 헷갈릴 정도로 바지락이 듬뿍 들어갔는데요. 맛도 있지만, 애주가들 속풀이에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지락계란탕. 계란탕인지, 바지락탕인지 헷갈릴 정도로 바지락이 듬뿍 들어갔는데요. 맛도 있지만, 애주가들 속풀이에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종안

처음 먹어본 '바지락계란탕'은 계란찜인지 바지락찜인지 모를 정도로 바지락이 많이 들어갔는데요. 처음엔 느끼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 씹을 때 느끼는 바지락의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고, 담백하고 고소한 계란탕 국물이 뱃속까지 시원하게 했습니다.


바지락회와 계란탕을 안주로 소주를 한잔하고, 조금 있으니까 '뽕잎 바지락죽'이 나왔는데요. 수저로 휘휘 저으니까 고소한 냄새와 싱그러운 향기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후식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양이 많은 편이어서 포만감도 느꼈습니다.

 뽕잎, 수삼 등 각종 약초가 들어간 ‘뽕잎 바지락죽’. 녹두죽이 불쌍하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뽕잎, 수삼 등 각종 약초가 들어간 ‘뽕잎 바지락죽’. 녹두죽이 불쌍하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조종안



'뽕잎 바지락죽'을 맛있게 먹는 법도 배워왔습니다. 죽을 한 수저 떠먹고 반찬을 집어먹지 않고, 죽 한 수저에 미역무침이나 콩나물 무침, 배추 겉절이, 젓갈 등 반찬을 얹어 먹으면서 다양한 맛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부안, 곰소 앞 갯벌에서 전날 채취한 바지락을 넣고 끓였기 때문에 싱싱하고 담백한 맛을 유지하는 바지락죽에 뽕잎을 갈아 넣은 '뽕잎 바지락죽'은 고소하고 향기로운 맛도 맛이지만, 일등 웰빙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죽 이야기가 나오면 녹두죽이 으뜸이라고 주장해왔던 저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처음 먹어본 '뽕잎 바지락죽'은 그동안의 생각을 바꿔 놓을 만했습니다. 그윽한 향기와 부드러움은 녹두죽이 울고 갈 정도였고, 해물과 약초가 어우러지면서 내는 맛이 일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뇨, 중풍,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뛰어나다는 뽕잎을 갈아서 바지락을 듬뿍 넣고 끓여 내놓는 '뽕잎 바지락죽'은 보기만 해도 귀빈 대접을 받는 것처럼 흐뭇해졌고, 냄새가 향긋해서 보약을 먹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반찬도 7~9가지 정도가 정갈하고 깔끔하게 차려 나왔습니다. 죽 반찬치고는 종류가 많은 편이었는데요. 생색내기가 아닌 것을 맛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미역무침, 고소한 콩나물무침이 죽 맛을 더해주었습니다. 특히 시원한 오이소박이와 고소한 배추 겉절이는 원조 바지락죽 식당을 대표하는 반찬으로 알려졌다고 하더군요. 

 식당 입구. 평상과 꼬마들이 옛날 고향동네를 떠올리게 했는데요. 창밖으로 펼쳐지는 고즈넉한 농촌풍경이 음식 맛을 돋워주었습니다.
식당 입구. 평상과 꼬마들이 옛날 고향동네를 떠올리게 했는데요. 창밖으로 펼쳐지는 고즈넉한 농촌풍경이 음식 맛을 돋워주었습니다. 조종안


부안군 변산면 묵정마을에 있는 '원조 바지락죽' 식당은 들어가는 입구와 부근 전망이 전형적인 시골이어서 마음부터 푸근하게 했는데요. 나무그늘에 놓인 평상에서 쉬는 아주머니와 아이들 모습이 무척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바쁜 어머니의 일손을 덜어주려고 아이를 등에 업고 품안에 보듬은 모습들이 무척 정겹게 다가왔는데요. 바지락을 까는 일에 열중인 할머니들 정성이 음식에 가미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바지락만 까는 할머니들

 아침을 먹기 무섭게 바지락을 까기 시작한다는 할머니들, 재빠른 손놀림은 할머니들의 지난했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을 먹기 무섭게 바지락을 까기 시작한다는 할머니들, 재빠른 손놀림은 할머니들의 지난했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조종안

식당 뒤로 돌아가 바지락을 까고 있는 할머니들을 잠시 만나보았는데요.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하시니까 힘드시겠다고 인사를 건네면서 식당이 이웃이니까 도와주는 것인지, 하루 일당을 받고 일을 하는지 물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가 밥 먹고 멀 허겄시유, 반지락이나 까야지, 노인네들이 일허는 것을 머더러 찍는댜, 그렇게 찍으믄, 반지락이 어치케 생겼는가 우리도 봐야 헝게, 사진을 잘 빼가꼬 꼭 가지고 와야 혀유~" (웃음)

할머니들은 멀리서 찾아온 친정 동생에게 대하듯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는데요.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니까 잘 빼서 가져오라는 할머니 당부에는 여유와 유머가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바지락을 냉동 창고에 보관하지 않고, 할머니 셋이 둘러앉아 주방에서 필요한 만큼 작업해서 조달하기 때문에 손님들이 싱싱한 바지락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며 식당 홍보도 빠뜨리지 않았는데요. 아침밥 먹고 시작하면 저녁 7시에 끝난다면서 하루 일당이 6만 원이라는 것까지 알려주었습니다.

고생은 되겠지만, 시골에서 적잖은 수입이 되겠다고 하니까 "그라믄, 평생 혀왔든 일인디 큰 돈이제. 옛날보다 좋은디서 일을 허닝게 편혀서 좋고···"라며 웃음으로 받아주는 대답에서 할머니들의 지난했던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부안, 곰소 갯벌에서 평생을 보냈다는 할머니들의 구수한 입담은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손맛을 떠올리게 했는데요. 방문했던 식당의 바지락죽과 회무침이 맛있는 것도 할머니들의 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뽕잎 바지락죽 #부안 #바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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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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