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옥 "나는 무대를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평]<소프라노 신영옥의 꿈꾼후에>를 읽고

등록 2010.06.14 15:31수정 2010.06.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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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꿈꾼 후에>

책 <꿈꾼 후에> ⓒ 휘즈프레스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여러 가수 중에 신영옥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음악을 배우기 열악한 한국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꿈을 키우고, 줄리아드 음대에 합격해 세계로 나아간 신영옥에게 '대단하다'라는 수식어만을 붙이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프라노 신영옥의 꿈꾼 후에>(신영옥, 김동환 공저, 휘즈프레스 펴냄)는 그녀의 인생 여정을 사실 그대로 쓴 책이다. 신영옥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그녀의 열성팬인 김동환씨가 다양한 공연 이야기를 썼다. 일반적인 자서전과 인물서들이 칭찬 일색인데 반해 이 책은 아주 솔직하게 신영옥의 삶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흔히들 세계적인 소프라노라고 하면 화려한 삶을 상상하게 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눈물과 고통은 보통 사람의 몇 배에 해당한다. 어린 시절 음악과 춤을 좋아하여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입단한 것이 신영옥이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결정적 계기다.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우여곡절이 있을지도 모른 채, 순수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걸 즐겼던 어린이 신영옥. 그러나 신영옥은 리틀엔젤스에 입단하자마자 맑은 목소리로 주목을 받아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재능을 발휘한다.

"솔리스트로 무대에 서야 하는 나는 숙소에서조차 무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한 번이라도 엇박자가 생길 경우 단체로 선생님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으며 혼이 나야 하는 무서움 때문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겪은 무대가 적어도 과정은 생략된 채 결과만을 펼쳐 보이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대를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이런 철저한 태도가 그녀를 세계적인 성악가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런 그녀에게 줄리아드 음대 입학의 기회는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찾아온 입학 제의에 그녀와 어머니는 큰 결단을 내리고 신영옥만 혼자 남아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하기로 한다.

평범한 가정 출신의 소녀가 미국이라는 넓고 새로운 땅에 가서 혼자 생활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로움에 힘들어하면서도 그녀는 자기 목소리의 기량을 닦았다. 엄격하게 통제하던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자유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고백은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줄리아드 재학 시절의 여러 에피소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치열한 경쟁 사회인 음악계를 느끼게 해 준다. 도도하게만 보이는 음악가들이 연습실을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고, 조금이라도 방을 비우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 때문에 잠이 와도, 배가 고파도 연습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줄리아드 음대생들의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한다.

졸업 후의 신영옥은 사람들이 그토록 동경하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입단하게 된다. 메트 오페라는 매년 신입단원을 뽑고 그들의 노래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위너스 콘서트(Winners Concert)를 실시하는데, 이 콘서트에서 주목을 받은 사람도 단연코 신영옥이었다.


입단 후 신영옥은 다양한 배역을 시도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꼭 맞는 배역을 맡는다. 그건 바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이었다. 첫 공연 이후 그녀는 '질다' 역만 열 번도 넘게 맡는다. 그 역이 얼마나 그녀에게 잘 어울렸는지는 관객들과 평론가들의 여러 평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탄탄대로를 달릴 것만 같았던 그녀의 인생도 참 질곡이 많았다. 자신을 그토록 지지하던 엄마의 죽음, 충격으로 목소리가 안 나와서 고생하던 순간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일들이지만 목소리가 생명인 성악가에게 닥친 이런 고난들은 신영옥을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다행히 의료진과 아버지의 충고, 음악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목소리가 돌아오고 신영옥은 엄마를 잃은 슬픔을 뒤로 한 채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된다. '공연에 지장이 있을지 모르니 당분간 막내에겐 알리지 말라'고 했던 엄마의 유언이 그녀의 마음에 깊이 남아서일까? 신영옥은 자신이 무대에 서는 것만이 하늘에 있는 엄마를 기쁘게 할 유일한 수단임을 깨닫는다.

평생의 스승인 클라우디아 핀차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한 지 30여 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레슨을 받으며 발음을 교정하고 성악법을 연마하는 신영옥의 모습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악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늘 겸손한 자세로 배움을 통해 실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는 감동을 받았다.

일반적인 자서전이나 인물서에 비해 이 책은 신영옥 자신이 스스로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그녀의 열혈 팬인 김동환씨가 일일이 공연 이야기를 서술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신영옥이 참가했던 모든 공연의 레퍼토리와 평론가들의 평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겉핥기 식의 인물평이 아닌, 진짜 음악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내가 세계적인 공연장에서 거장들과 공연한 소프라노라고 말이죠. 하지만 어느 장소에서 누구와 공연을 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극장에서 그들과 같은 대가들과 공연을 하며 나보다 더 훌륭한 재능을 지닌, 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겠죠."

신영옥의 이런 겸손한 말이 그녀 자신을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지 않았나 싶다. 음악팬이 아니더라도 소프라노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비록 그녀가 나이가 들더라도 많은 사랑을 받고 좋은 음악을 하는 성악가로 영원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길 바란다.

소프라노 신영옥의 꿈꾼 후에

신영옥.김동환 지음,
휘즈프레스, 2009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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