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에서 만나다>겉그림
동산사
사미와 바비, 나(대니)는 13살 에티오피아 소년들이다. 죽음을 피해 며칠 동안 산 속 비밀 동굴에서 지내던 소년들은 부모들이 챙겨준 약간의 돈과 며칠 분의 비상식량이 들어 있는 봉지 하나를 들고 국경을 향해 걸어간다.
소년들의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품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어린 아들을 떼어 놓으며 당부하고 당부한다. "마음 단단히 먹고, 국경을 넘어야 돼. 꼭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 오직 살길은 국경을 넘는 것뿐이라고. 그리하여 어디서든 제발 살아만 달라"고.
이 아이들이 어른들을 피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어른 하나 없이 소년들 셋만을 위험한 국경으로 보내야하는 까닭은 남아 있으면 죽기 때문이다. 운 좋게 국경을 넘으면 살 수 있는 가망성이 그나마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절박함,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을 그런. 소년들의 이야기는 에티오피아의 군사 독재 정권 데르그(Derg 혁명위원회) 치하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수많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겪었던 일이란다.
당시 데르그 정권은 반정부군과 내전 중이라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유괴하는 수법으로 강제 징병을 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소년들이 끌려가 이미 총알받이가 됐다. 젊은이들을 거의 볼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사 독재 정권에 희생된 터였다. 책 속 화자인 나의 두 형도 경찰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에티오피아 데르그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내전에 내몰린, 그나마 살아남은 엄청난 수의 어린 소년들이 이야기 속 사미와 바비, 나처럼 선택의 여지도 없이 수단과 같은 인접 국가들로 목숨을 건 탈출을 해 난민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 학교 마치고 마니샤랑 크리스피 사 먹으러 슈퍼마켓에 갔었어. 엄마가 거기 있더라고. 언니, 거기 점원들이 엄마에게 식료품을 던지고 있었어. 다른 손님들이 산 식료품은 봉투에 넣어주면서 엄마한테는 던지고 있었다고! 엄마는 바닥에서 콩이랑 빵을 줍고 있었어. 그런 엄마를 보며, 그 사람들은 "너희 나라로 가!"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어"
엄마가 길 건너 슈퍼마켓을 혼자 다닌 지도 벌써 반 년, 반 년 동안 엄마는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엄마를 따라와서 겁을 주기도 했지만, 엄마는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것만 듣고 여태 거길 다녔던 것이다. 그러자 거기 직원들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식료품이며 잔돈이고 할 것 없이 엄마에게는 죄다 던져서 주었던 것이다. - 책 속에서최근 전쟁 중인 소말리아를 탈출하여 영국의 노스홀트로 간 아미나 가족이 겪은 것들이다. 조국의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민이 된 사람들이 낯선 이국 땅에서 겪는 인종차별과 언어장벽 등, 난민들이 겪는 고통을 통해 그들의 처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까.
가족 넷 중에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동생 디카와 나뿐, 엄마와 파티마는 영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사람처럼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한다. 때문에 처음 몇 달간은 내가 엄마를 도와 식료품을 사곤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엄마 혼자 장을 보러 다니곤 했다. 영어 공부 하랴, 아르바이트 하랴. 동생 디카를 데려오는 등, 시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 혼자 간신히 길 건너 슈퍼마켓에 다닌 지 반년, 엄마는 이처럼 인간 이하의 수모를 당하며 가족들의 식량을 구해왔던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웃들은 시시때때로 몰려와 대문을 걷어 차는가 하면 "당장 떠나라"는 협박의 편지를 투서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가족들은 한편으론 돌아가면 죽음뿐인 조국으로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공포에 떨어야만 한다.
비단 이 가족만의 이야기에 불과하랴. 사미와 바비, 나'와 같은 소년들이나 아미나 가족들처럼 군사정권이나 전쟁을 피해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조국을 탈출한 난민들은 새 삶을 희망하는 곳에서 인종차별과 말이 통하지 않는 등의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기 일쑤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는 한 트럭 운전사의 목숨을 건 도움 덕분에 어렵게 국경을 넘어 하르툼에서 열심히 일한다. 비록 불법체류자 신분이지만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돈도 모은다. 하지만 어느 날 주인이 도둑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감옥에 갇힌다.
이들의 처지를 알고 헌신적으로 돕는 사람들이나 유엔난민기구 덕분에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져 쉽게 살 길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책에 의하면 수많은 나라에 수도 없이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오랜 동안 떠도는 사람들도 많다고.
또한 첫 번째 이야기 주인공 소년처럼 이국땅에서 범죄자로 전락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는 곳으로 탈출은커녕 목숨과 같은 돈만 뜯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말이 통하지 않아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으로 되돌아 가야 하는 처지에도 놓이게 된다. 어떻게 다 열거하랴.
▲난민 현황(유엔난민기구(UNHCR) 자료
유엔난민기구(UNHCR)
▲난민통계
유엔난민기구(UNHCR)
난민 쉼터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영불 해협 터널 입구 주위의 벽을 기어오르는 장면이었는데, 카메라의 시선이 잠깐 한 어린 소년에게 머물렀다. 보나마나 집은 수백 마일 이상 먼 곳에 있을 터인, 많아야 여덟 살 아니면 아홉 살 쯤 되어 보이는 그 소년은 영국으로 건너오기 위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하고 있었다. …나의 관심사는 과연 그 소년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 소년을 그 지경까지 내몰았으며, 소년의 가족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얼마나 끔찍한 사건이었기에, 저토록 어린 소년이 고향을 떠나 생사를 건 모험을 감행하며 프랑스 국경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저들의 사정을 들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민 쉼터를 향해 가는 아이들의 사연을 모아 단편집으로 엮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고, 이왕이면 그들의 입을 통해 살아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이 글들이 쉼터에 있는 난민들의 처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엮은이의 말 중에서<쉼터에서 만나다>(동산사 펴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수도 없이 발생하고 있는 난민들의 실화 11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엮은이는 청소년을 위한 책만 90여 권을 쓴 영국 작가 토니 브래드먼.
글을 쓴 사람들은 난민이 된 아이들 자신이거나 혹은 그들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지라 그들이 어떻게 난민이 되었으며 어떤 고통들을 겪는지 등, 난민들의 현실과 처지를 여타의 어떤 글들이나 관련 보고서들보다 자세하고 생생하게 들려준다.
인간 생존의 기본과 인류애를 호소하는 11편의 이 실화들은 전쟁의 무모함과 그로 인한 피폐함까지 전하고 있다. 약자를 괴롭히는 야비한 사람들의 근성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우리와 거리감이 있는 난민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 책이기도 하다.
엄마의 권유로 혼자 탈출한 에리트레아 소년 카림, 후세인에게 부모를 희생당하고 영국으로 혼자 밀입국한 사미얼,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내전 때문에 난민이 된 유스프…. 책을 통해 만난 난민 소년들의 고통과 아픔이 내 가슴에 선명하게 얼룩져 버리고 만 것 같다. 잠을 자면서도 쫒기는 꿈을 꾸고 어떤 사람이든 경계부터 하는 난민 소년들의 아픔이 자꾸 떠오르니 말이다.
매년 6월 20일은 '세계난민의 날'...올해는 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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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난민 아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삶, 희망, 그리고 약속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여 주고 있다." - 앤 메리 캠벨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 대표)
"영국의 많은 사람들이나, 그 밖에 부와 안전을 누리고 있는 나라들의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런 아이들(난민)들은 큰 문젯거리이다. 영국 언론들은 이런 난민들을 뉴스 헤드라인에서 '골칫거리'라고 표현하면서 온 국민을 향해 호소하듯 외치고 있다. 게다가 정치가들은 한 술 더 떠서 대다수의 난민들이 전쟁과 박해를 피해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펴, 그들로 하여금 생존에 대한 두려움 위에 현실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마저 품게 만들었다. …이 글들이 쉼터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집을 떠나 낯선 이들의 위로를 받아야만 하는 심정이 어떤지를 잘 알게 되었으면 한다." - <쉼터에서 만나다> 엮은이
매년 6월 20일은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난민의 날'로, 2010년 6월 20일 오늘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유엔총회가 지난 2000년 12월 4일, 아프리카통일기구와 논의하여 6월 20일을 공식적인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로 지정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 탄생했다. 국제적으로 세계 난민의 날을 지정하고 기념하는 이유는 난민들의 처지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서이다.
또한 '세계 난민의 날 행사를 통하여 난민의 어려움과 난민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유엔난민기구와 여러 비정부기구들의 활동을 알리는 날이기도'(유엔난민기구 설명 인용) 국내에서도 관련 기념행사가 매년 열린다.
덧붙여, 1950년 유엔 총회 결의로 난민 보호와 난민 문제의 영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설립된 유엔난민기구(UNHCR)는 반세기가 넘는 동안 전세계적으로 5천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으로 현재는 난민 외에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국내 실향민 및 무국적자에게도 국제적 보호를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와같은 공로를 인정, 1954년과 1981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118개국에 260여 개의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6700여 명의 직원들이 3442만 여명의 UNHCR보호 대상자를 지원하고 있다.
2009년 1월 1일 기준 UNHCR보호 대상자 실태는, ▲난민(인종, 종교,국적, 정치적 의견이나 특정사회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위험때문에 자신의 나라를 떠나 국경을 넘은 사람이나 분쟁 등으로 나라를 떠나 돌아갈 수 없는 사람):1047만 8천 6백명 ▲난민 지위 신청자(난민이기에 보호가 필요하다는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 82만 7천 3백명 ▲국내 실향민(난민과 같은 이유로 강제이주 당했으나 아직 자국을 떠나지 못한 사람):1440만 5천 4백명 ▲귀환민(고향이나 상주국으로 돌아간 난민이나 실향민):196만 5천 4백명 ▲무국적자(어떤 나라에서도 국적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657만 2천 1백명 ▲기타보호대상자(기본 분류에 속하지 않으나 아직 보호가 필요한 사람):16만 6천 8백명이라고 한다. (책속 글 참고 정리)
세계 난민 현황과 매년 발생 숫자, 유엔난민기구의 역할, 한국과 난민, 후원과 참여, 세계난민의 날 제정과 취지 및 관련 행사 등 자세한 것은 유엔난민기구 홈페이지(http://unhcr.or.kr)에 가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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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쉼터에서 만나다>|토니 브래드먼 (엮은이) |김화경 (옮긴이) |동산사 2010-03-25|정가:10000
※세계난민의 날(매년 6월 20일)을 기념하여 발간된 이 책의 판매 수익금 일부는 유엔난민기구(UNHCR)의 난민 보호 기부금으로 쓰인다.
쉼터에서 만나다
토니 브래드먼 엮음, 김화경 옮김,
동산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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