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만난 '독도는 한국땅', 부끄러웠다

[맘대로 떠나 무작정 살다오기 18] 본받을 건 본받자

등록 2010.06.29 15:42수정 2010.06.2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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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가까이 일본을 여행하면서 몇 번인가 경이로움을 느낀 바 있다. 그리고 진실로 걱정스러웠다.

"과연 우리가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일본의 저력은 실로 엄청난 게 아닐까?"  


그것은 일찌감치 선진국 5개국(G5)과 우주클럽(Space Club)에 합류하고 세계 경제 2위, 잠재적 군사력 3위, 국가브랜드 5위를 차지하는 등 그들이 오래도록 유지해온 하이클래스적 반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 전반에 녹아 있는 높은 의식 수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땅한 권리를 누리는 '여유'와 '당당함'

 (시계 방향으로)교토 산주산겐도 경내 휠체어도로, 후쿠오카 시사이드 모모치해변의 휠체어 이동통로, 나가사키 원폭기념관 무료대여 휠체어, 교토 쇼후엔 공원의 노약자 전용 엘리베이터.
(시계 방향으로)교토 산주산겐도 경내 휠체어도로, 후쿠오카 시사이드 모모치해변의 휠체어 이동통로, 나가사키 원폭기념관 무료대여 휠체어, 교토 쇼후엔 공원의 노약자 전용 엘리베이터. 이명주

오사카 도부츠엔마에역에서였다. 좁은 인도(人道)에서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안전요원 두 명이 행인들을 향해 서둘러 비켜 달란 수신호를 보냈다. 자재를 실은 트럭이라도 오는가 싶어 얼른 비켰는데, 잠시 후 요원이 터준 길을 따라 휠체어를 탄 장애인 서너 명이 지나갔다.

교토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인파로 붐비는 모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앞. 휠체어 리프트를 타기 위해 장애인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시 그곳을 지키는 듯한 직원이 금세 다가와 90도로 인사를 건넨 후 한 명씩 리프트로 이동하는 것을 도왔다. 직원은 리프트에 함께 올라 휠체어를 잡은 채,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동안 몇 번이나 괜찮으냐고 묻는 듯했다. 그리고 상층에 도착해서 (그에게) 다시 한번 깍듯하게 인사했다.

 교토 지온인의 장애인 이동통로와 휠체어 주차공간(왼쪽 상하), 역시 교토 히사기혼간지의 장애인 이동통로(오른쪽 상), 오사카 해양박물관 무료대여 휠체어.
교토 지온인의 장애인 이동통로와 휠체어 주차공간(왼쪽 상하), 역시 교토 히사기혼간지의 장애인 이동통로(오른쪽 상), 오사카 해양박물관 무료대여 휠체어.이명주

이뿐이 아니었다. 유명 관광지나 국보급 유적지에서도 약자를 위한 배려시설을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오사카의 해양박물관 '나니와노 우미노 사쿠우칸'과 교토의 '히사기혼간지', '지온인', '산주산겐도' 등에서, 후쿠오카의 '쇼후엔' 공원과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이나 나가사키의 '원폭자료관'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이동권을 누리며 여유롭게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애인들의 표정이었다. 그들은 행색이 허름하든 아니든, 어느 순간에도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당연히 황송해 하지도 않았다. 여느 비장애인과 똑같이 마땅한 권리를 누리는 데 대한 여유와 당당함이 묻어날 뿐이었다.

 교토역에서 정성을 다해 장애인들의 휠체어 리프트 사용을 돕던 백화점 직원.
교토역에서 정성을 다해 장애인들의 휠체어 리프트 사용을 돕던 백화점 직원. 이명주

 '조금 어두워도 괜찮습니다'
'조금 어두워도 괜찮습니다'이명주
절수형 변기가 여기에도?


일본여행에서 본 또 하나의 경이로움은 일본인들의 근검절약하는 생활습관이었다. 일본인들에게 물과 전기를 아끼는 것은 약자를 배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에 밴 듯 익숙했다.

오사카 신이마미야역에서 여행자들 사이에 유명한 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때였다. 실내가 다소 어둡다는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깨달았다.

교토의 게스트하우스도 마찬가지였다. 낮이 되면 실내 조명을 모두 끄고 밤에도 필요 이상으로 안팎 조명을 밝히지 않았다.

가장 놀라웠던 시설은 화장실에 있었다. 바로 절수형 변기였다. 변의 종류(대/소)에 따라 정화수의 양을 달리해 밸브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누르는 것이 첫 번째 유형. 두 번째는 더 실용적인 형태로 세면대와 같이 손을 씻을 수 있는 장치가 있고, 손을 씻은 물이 정화수로 재활용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최근 지은 건물이나 호텔, 리조트 등의 일부 편의시설에서 이러한 절수형 변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일본에선 두어 평 남짓한 작은 음식점까지도 이를 상용화하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가? 지구상의 물 중 3%만이 식음 가능한 담수며, 전 세계 인구 20%만이 수돗물을 마시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가정에 공급되는 식수 중 40%가 화장실에서 쓰고 버려지며 연간 2백만 명의 아이들이 단지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해 목숨을 잃는다. 또한 전력을 생산하는 데 가장 많이 소모되는 것이 석탄이며, 이것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해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 상용화되고 있는 절수형 변기들
일본에서 상용화되고 있는 절수형 변기들 이명주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가 일본 성장의 견인차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엔 아직 풀지 못한 역사적 과제들이 많다. 그래서 서로를 싸잡아 욕하기도 하고 곁눈으로 쳐다보는 것조차 기분 상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면 무엇보다 상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공항이나 터미널 같은 현지 공공장소에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써놓은 우리말 낙서를 볼 때면 한숨이 나왔다. 정작 봐야 할 사람들은 읽지도 못하고, 그것이 한글임을 아는 외국인은 한국인의 매너를 의심하는 결과 밖에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미워하고 외면해서 풀릴 문제는 없다. 일본은 분명 역사 앞에 떳떳하지 못한 소인배적 기질이 있다. 그러나 또한 반세기 만에 세계열강 가운데 우뚝 선 저력의 나라기도 하다. 배울 건 배우자. 인정할 건 인정하자. 한때 서양인들에게 '잡종의 나라'라고 멸시받았던 일본이 오늘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난 3월 일본에 갔을 때 오사카 여객선터미널에서 목격한 한국인들의 낙서. "정말 이러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3월 일본에 갔을 때 오사카 여객선터미널에서 목격한 한국인들의 낙서. "정말 이러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이명주
#일본 #선진국 #국민성 #약자존중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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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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