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란 모두 다큐멘터리였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7] David Plowden, "The Iron Road"

등록 2010.07.02 14:54수정 2010.07.0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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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그림.
겉그림.최종규
겉그림. ⓒ 최종규

David Plowden, < The Iron Road >(Four Winds Press,1978)

 

<마더 존스 자서전>(평민사, 1978)이라든지 <미국노동운동비사>(인간, 1981)라든지 <정글>(동녘,1991)이라든지, 요즈막에 새로 나온 <제1권력>(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 같은 책을 읽은 사진쟁이는 이 나라에 얼마쯤 될까요. 사진쟁이이든 아니든 이 책들을 읽은 사람이라면 <The Iron Road>처럼 '철길 삶자락'을 훌륭히 담아낸 사진책을 보면서 뜻밖에 가슴이 뭉클뭉클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The Iron Road>는 틀림없이 잘 찍고 잘 담았으며 잘 엮은 사진책입니다만 철길이란 그냥 철길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미국에서든 유럽에서든 철길을 놓을 때에는 예부터 이제까지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손을 맞잡고 서로서로 더 크고 센 권력을 누리려는 속셈을 꽃피우고 있습니다. 참말로 여느 사람들 삶자리를 북돋운다든지 시골마을 사람들한테 발이 되어 준다든지 하려는 철길이란 없습니다. 더 많은 자원을 더 빨리 실어 옮겨 더 엄청난 돈을 긁어모으려고 놓는 철길일 뿐입니다.

 

이 나라 고속철도를 보아도 서울과 부산을 빨리 잇자는 생각일 뿐이지, 서울과 부산 사이에 있는 수많은 시골마을을 이으려는 생각이 아닙니다. 더욱이, 서울과 부산 사이에 숱하게 있는 시골마을을 이어 주던 '느린 철길'은 거의 모두 사라졌고, 남은 철길마저 머잖아 없애 버릴 판입니다. 서울에 지하철이 잘 뻗어 있다지만, 돈벌이 잘 되는 일터가 많은 곳으로 뻗는 전철길이요, 서울 둘레 전철들은 오로지 서울로 사람(노동자·소비자)을 빨리 보내도록 하는 데에만 맞춰져 있습니다. 일산과 인천을 오가거나 인천과 수원을 오가거나 수원과 구리를 오가거나 구리와 의정부를 오가거나 의정부와 일산을 오가는 전철은 예나 이제나 놓을 생각이 없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입니다.

 

 속 사진.
속 사진.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속 사진.
속 사진.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우리 삶터 밑자락과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슬프고 씁쓸한 일투성이입니다. 철길을 보아도 슬프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제도권 교육을 보아도 씁쓸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 대접을 보아도 슬프며 쇠밥그릇 아닌 착하고 참된 공무원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씁쓸합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이 목숨 하나 붙잡고 있는 까닭에 섣불리 고개를 떨구지 못합니다.

 

둘레를 살펴보느니 슬프고 아픈 일이 그득그득이라지만, 이러한 가운데 기쁘며 고운 일을 내 두 손으로 일구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기쁘며 고운 일을 남들이 먼저 스스로 잘 깨달아 펼치기를 바라기 앞서, 나 스스로 내 깜냥껏 깨닫고 찾아낸 기쁘며 고운 일을 나부터 힘차며 즐거이 꾸리면 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철길이 어떻게 놓였고, 철도 노동자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를 떠올린다면, <The Iron Road> 같은 사진책은 더없이 부질없습니다. 그러나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어떻게 여느 사람을 부려먹거나 들볶는다 할지라도, 철도 노동자인 사람들을 살가이 보듬을 수 있거나 이들하고 이웃하며 지내는 사람들이랑 오순도순 알콩달콩 지내고 있으면 아름다운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농사짓는 사람을 막대접 한달지라도 내 손으로 키운 푸성귀를 내 이웃과 동무한테 기쁘게 나누어 줄 수 있고, 철도 노동자를 죄 비정규직으로 내몰거나 일삯을 제대로 챙겨 주지 않는달지라도 내 가난한 살림살이를 쪼개고 나누며 내 둘레 더 어렵고 버거운 동무와 이웃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속 사진.
속 사진.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속 사진.
속 사진.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우리들이 할 일은 다 함께 넉넉하고 따스한 일이요, 우리들이 섬길 믿음은 서로서로 아름다우며 씩씩한 믿음이며, 우리들이 나눌 사랑은 모두들 즐거우며 빛나는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무언가 노리거나 꾀하기 앞서, 꾸밈없이 넉넉하고 따스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무엇을 이루겠다고 바라기 앞서,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자리 그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무슨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밥그릇 다툼에 앞서, 콩 한 알 나누는 사랑을 고이 실어 알뜰살뜰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다큐멘터리만 사진이지 않습니다. 모델이나 옷 벗은 아가씨를 찍어야만 예술 사진이 아닙니다. 산 들 냇물 바람 바다 들짐승을 찍어야 풍경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포토샵이니 셈틀이니 디지털파일이니 만지작거리거나 인화·현상을 남달리 해 본다고 현대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속 사진.
속 사진.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속 사진.
속 사진.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사진이 사진이 되도록 하자면 이야기를 담아야 합니다. 사진에 담는 이야기가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되도록 하자면 내 삶과 내 이웃 삶이 맑고 밝으며 곱고 착한 삶이 될 수 있게끔 우리 모두 땀흘려야 합니다. 사진이 사진이 되게끔 힘쓰고자 사랑을 바치고 믿음을 쏟으며 내 이야기 알알이 가꾸는 가운데 내 이야기 나눌 삶터를 따스하고 넉넉하게 일구고 있으면, 우리가 사진기를 들 때에는 사진으로 빛을 뿌립니다. 볼펜을 들고 있으면 글로 빛줄기를 선사합니다. 붓을 들고 있으면 그림으로 빛살을 나누고, 악기를 들고 있다면 노래로 빛무늬를 이루며, 맨몸이라면 춤으로 빛접은 무지개를 피어올립니다.

 

다큐멘터리라는 갈래가 따로 나오기 앞서, 사진이란 모두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상업이나 만듦이나 예술을 생각하며 갈라 놓기 앞서, 사진이란 모두 내 살붙이 밥벌이가 되는 일이요 내 삶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며 내 꿈을 이루는 예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사진이 사진이 되지 못하는 가운데, 다큐멘터리도 상업도 만듦도 예술도 되지 못합니다.

 

덧없이 조각나고 하릴없이 용두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헤아리는 사진쟁이는 좀처럼 태어나지 못하고,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가까스로 헤아렸어도 삶을 일구는 살림꿈이나 일꾼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한국땅에서는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말하거나 사진을 엮어 책을 만들거나 우물에 갇힌 개구리 모양입니다.

 

 속 사진.
속 사진.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속 사진.
속 사진.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2010.07.02 14:54ⓒ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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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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