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세대 정문 건너편에 자리한 헌책방 <정은서점>은 1969년부터 '작은 책방'으로서 헌책방 살림을 고이 이어 오고 있습니다. 몇 해 앞서부터는 헌책방 따님이 책일을 차츰차츰 배우면서 함께 일하며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최종규
땀을 흘리지 않는 일이 되고 놀이가 됩니다. 땀을 흘리면 일터에서 즐겁고 놀이터에서 흐뭇합니다만, 땀을 흘리지 않고 돈만 버는 일이 되고 돈만 쓰는 놀이가 되다 보니, 오늘날 우리 터전에서 쏟아지는 책은 땀을 담지 않고 돈을 다루는 책이 되고 맙니다. 몸품을 팔지 않는 삶이 되고 다리품을 들이지 않는 삶이 되며 손품을 바치지 않는 삶이 된 오늘날은, 몸품과 다리품과 손품이 안 담긴 책과 영화와 운동경기와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줄줄이 흘러넘칩니다.
몸품을 팔아 보고 다리품을 팔아 보고 손품을 팔아 보면, 책에는 없는 그지없이 깊은 이야기를 만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에는 없는 더없이 살가운 이야기를 만나며 영화와 운동경기에는 없는 가없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음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깨닫습니다.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지 말고 집에서 하루 내내 아이하고 뒹굴어 보셔요. 자동차에 몸을 맡기지 말고 내 두 다리한테 마실을 맡겨 보셔요. 자전거도 좋고요. 빨래기계에 사랑스러운 식구들 옷가지를 맡기지 말고 내 두 손에 사랑스러운 식구들 옷가지 빨래를 맡겨 보셔요.
머리맡에 누워 새근새근 잠든 아이와 옆지기를 꾸덕살 박힌 내 투박한 손바닥으로 살살 어루만져 보셔요. 전기밥솥에 물과 쌀 넣고 땡이 아니라 냄비에 밥물 맞추어 내 몸느낌과 코느낌에 따라 구수한 밥을 지어 내 손으로 식구들 밥상을 차리고, 식구들이 나란히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해 보셔요.
나부터 내 삶자리에서 삶다운 삶이라 할 때에는 내 살림집 하나 때문에 동네가 되고 마을이 됩니다. 삶다운 삶인 사람이 하나가 모이고 둘이 모이면서 복닥복닥 싱그러운 이야기꽃 피어나는 마을터가 이루어집니다. 마을놀이란, 마을잔치란, 마을두레란, 마을마당이란, 하나같이 삶다운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몇몇이 밑뿌리가 되어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