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부부라고요!
애초에 이집트 룩소르에서 처음 만난 K와는 루트가 서로 비슷해, '우리 앞으로 또 볼 수 있을거야' 라는 말로 헤어지기도 했는데 실제로 카르툼에서 만났다. 인생은 돌고돈다. 단 며칠이지만, 정든 카르툼의 친구들과 너무나 슬프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알리를 뒤로 하고 K와 나는 수단의 동쪽마을 카사라로 향했다.
시골마을 카사라에 몇 개의 호텔이 있었지만 너무 비싼 곳은 K나 나나 피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군데를 돌아보며 어디서 묵을지를 정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고를 처지가 아니었다. 난 혼자였으면 여러 군데서 퇴짜 맞을 신세였던 것이다. 신실한 무슬림들이 보기에 여자 혼자 돌아다니는 나에겐 방을 줄 리가 만무했다.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숙소 정하기의 어려움을 겪은 우린, 관계가 어찌 되느냐고 묻는 직원에게 허름한 더블 룸을 위해 기꺼이 얘기 했다.
"이 방으로 할게요. 아 참, 그리고 우린 부부예요."
체크인을 위해 여권을 달라는 말에 나는 순간 심장이 콩알만해져서 '부부라는 것이 여권에 표시가 되었던가?' 하는 엉뚱한 고민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권에 미스라고 되어있는지, 미세스라고 되어있는지, 그들은 별 관심 없었던 것 같다. 일단 부부라고 했으니 그대로 믿은 것 같다.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내 심장은 콩닥 댔으니…. 다만, 혼자 숙소를 구할라치면, 꽤 힘든 날을 보내야 했을 듯 해서 참 다행스럽게 지나갔구나 싶다.
전기가 이틀에 한번씩 들어온다는 작은 마을 카사라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무슨 문제 때문인지 3일 내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로 생활을 해야 했다. 더구나 물은 정해진 짧은 시간에만 나와서 그 때 맞춰 발과 얼굴이라도 씻어야 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K와 한 방을 쓰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지만 한 편으로는 안심도 되었다.
K는 프로였다. 배낭여행을 꽤 잘 알았고, 방을 같이 쓰거나 현지 음식을 먹는 일에 겁을 내지 않았다. 가끔 잘난 체를 하고, 자기 침대에 모기장을 칠 때, 너무 부산을 떨긴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나에게 안전 불감증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난 하루하루 그렇게 모기장을 치고 자는 게 귀찮기도 하고 가져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모기장이 있는 숙소에서도 사용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이상한 쪽으로 깔끔 떠는 면이 있어 모기장을 보면 거기에 붙어있는 먼지가 모기보다 더 싫었다.
내 나름의 방법은 얇은 긴 옷을 입고 자는 것이다. 몇몇 지역은 긴 옷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덥지만, 이집트나 수단을 지나면 보통 저녁엔 선선한 편이니 긴 옷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일단 피부가 드러나지 않으면 벌레가 물기에도 꽤 노력이 필요하니 좋은 방법이다.
나는 중간을 건너 뛴 아마추어
"K, 자니?"
"안 자. 모기가 윙윙거린다."
"그래도 넌 모기장 안에 들어가서 자쟎아. 그냥 자는 나보단 낫지."
"사라, 너는 어떻게 아프리카에 오게 되었어?"
"그냥 꼭 오고 싶었어. 난 유명한 관광지나 도시보다는 우리가 정의하는 '발전이 덜 된' 라오스나 캄보디아 이런 데가 좋거든. 정말 사람 냄새 나고, 자연스러운 곳이 많아. 내가 좋아하는 초록들도 많고. K 너는? "
"나는 일종의 마지막 장소이지. 사라, 그럼 넌 아프리카 제외하고 전 세계는 다 가 본 거니?"
"아니! 세계여행이 꿈이긴 하지만 아직 그건 아니고, 피지랑, 호주 반 바퀴 돌고, 아시아, 동남 아시아가 다야. 난 동남아시아 진짜 좋아해. 그러다 느꼈지. 왠지 내가 아프리카에 오면 좋아하게 될 거라고…"
"뭐? 그럼 미국이나 유럽배낭 여행 혹은 남미도 안 가본거야? "
"응. 유럽배낭여행 갈 돈으로 호주를 간 거였거든."
"엥? 보통 배낭여행을 얘기할 때, 아시아는 초보자, 동남아시아는 아마추어, 미국이나 유럽배낭여행을 거치면 프로, 그 다음이 남미나 아프리카인데, 넌 중간을 훌쩍 뛰어 넘고 바로 하드 코어로 접어든 거네? "
솔직히 K가 이 얘기를 할 때는, 살짝 밥 맛이었다. 배낭 여행자를 초보자와 아마추어, 프로로 분류해서 '아시아에서 바로 아프리카로 점프한 거야?라며 날 보는 표정이 그리 달갑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K는 그렇게 자유로워 보이진 않았다. 세계여행이라는 그 단어에 무언가 압박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아프리카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 동양인 여행자는 일본인이듯, 그들은 세계여행이 일종의 통과 의례이며 유행인 듯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K는 남들과 비슷한 여정은 무조건 배제했고, 모든 생활을 현지식으로만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난 그가 그리 부럽진 않았다.
내게 있어서 세계여행이란 일 년 안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2010.07.04 10:50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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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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