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 콘테스트를 구경하러온 귀여운 소녀.내 이웃 관중이었다. 그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 착하게 아빠말씀을 잘득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운좋게 잡은 비치볼을 주었다.
강수정
뉴욕경찰들은 우리들에게 경쟁에 참가할 선수들이 지나갈 길을 남겨두고 서 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노래도 하고, 무대에서 무작위로 던져주는 티셔츠나 비치볼 같은 것을 받으려고 버둥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비치볼 하나를 가까스로 잡았는데, 내 옆에 서 있던 여자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원하는지 물어봤다. 그 애는 내 딸과 비슷한 나이였다. 그애는 당연히 비치볼을 원했고 나는 공을 아이에게 건넸다. 나중에 그 애 옆에 서 있던 아줌마가 공을 잡았는데 자신은 이미 하나 가졌다면서 그 공을 나에게 주었다. 뉴욕의 인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흐뭇했다. 이웃 관중들과 사진도 찍고, 함께 서서 춤을 추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날씨는 너무 더웠다. 화씨97도의 땡볕이었다. 한참 관중들의 얼굴이 익어갈 무렵 뉴욕경찰 한명과 함께 선남선녀 백인 커플이 나타났고 지나가는 줄 알았던 그들은 나와 룸메이트 앞에 멈춰서서 그 경찰관과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가? 지나가는 것이려니 하고 기다렸지만 그 경찰관이 우리를 지나간 뒤에도 그 커플은 우리 앞에 우뚝서서 쇼를 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른 경찰이 와서 선수들이 지나가야 하니 공간을 비워놓으라고 사람들을 뒤로 두 발짝씩 가도록 했다.
끼어든 그 백인 커플 때문에 우리는 무대가 거의 안 보였고, 억울하기 그지 없었다. 주변에서는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사람 하나 선뜻 나서서 그들에게 시야를 가리지 말라고 말할 용기는 없는 듯 했다. 그녀는 사람들 시선이 의식되면, 경찰관를 손짓해 불러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했다. 아까보다 공간이 좁아졌고 나보다 작은 룸메이트 조비타는 그들에 가려 전혀 무대가 보이지 않은 상태로 10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조비타는 용기를 내어 "너희들이 내 시야를 가리고 있다. 늦게 왔으니 거기에 서면 안된다." 라고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살짝 웃으면서 금방 자리를 옮길 거라고만 이야기를 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또 다시 20분이 지났다. 그들은 선수들이 입장하는 좋은 길목에 서서 지나가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허그를 하는 등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순간 의협심이 발동했다. 모처럼 자유롭고 활기찬 뉴욕에서의 시간을 즐기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지만 더이상 참지 못하고, 코리안 악센트로 자신있게 말했다. "너는 저 경찰과 친구냐?" 그 남자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너희들은 여기 서 있으면 안된다. 공공질서를 지켜라. 너희들은 교육받지 못한 행동을 하는 무식한 사람들이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키를 비교해 보면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그 커플은 웃으면서, "뭣이 그렇게 문제냐?" 고 받아쳤다.
경찰이 왔다. 아까 그 커플과 대화하던 경찰이었다. 그 커플은 의기양양해졌다. 나는 경찰에게 똑같이 말했다. 그들이 나중에 들어와 여기 서 있어서 무대를 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경찰은 조금 있으면, 선수들이 다 입장하고 공간이 생길 것이니 그냥 참고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늦게 왔으면 뒤에 가서 줄을 서야한다" 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간에 그곳에 도착한 나의 친구들은 무대에 근접하지도 못한채 전광판으로 쇼를 지켜보고 있다는 문자가 왔기에 나는 더욱 더 의협심이 생겼다. 나의 기분은 이미 자유롭게 들뜬 관객이 아니라, 친구인 경찰의 권위에 힘입어 다른 사람들의 피해를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특권과 즐거움만 생각하는 막무가내 커플 때문에 피해보는 이들의 볼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변론인이 되어 있었다.
조금 후에 선수 입장이 끝나고 선수입장을 위해 비워뒀던 공간으로 사람들이 옮겨가도록 허락되었다. 그 두 커플은 내 주변의 이웃들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그들은 키가 워낙 커서 뒤어서도 잘 보였으리라. 그제야 나와 힘없고 백없고 부지런하기만 한 이웃들은 쇼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그들이 처음 왔을때 정중하게, "미안하지만, 이곳에 잠시만 서도 되는지" 먼저 양해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뉴요커들은 얼굴 붉히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가능한 피하기 때문에 모두들 조금씩 움직여 자리를 내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찰과 함께 나타난 그들의 부탁을 거절할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