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쉬섬 최대 쇼핑몰에 입점한 BYC. 이곳은 부자들이 주 고객층인 걸로 보아 이 상표도 이란에서 최고급 내의로 대접받는 듯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기업의 좋은 물건들은 우리나라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꽤 후한 점수를 주었다.
김은주
이란 부자들의 휴양지 키쉬섬으로 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이란의 중앙에 위치한 야즈드에서 최남단 항구도시 반다라아바스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하루가 꼬박 걸릴 거라고 했습니다. 하루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을 수도 없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버스는 밤새 사막을 달려 마침내 반다라아바스에 도착했습니다. 터미널에는 낯선 모습의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본 이란인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테헤란을 출발해서 야즈드, 쉬라즈, 이스파한을 거쳐 오면서 만난 이란인들은 하얀 피부에 날카로운 콧날을 한 백인에 가까운 모습이라면 이들은 흑인과 더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새까만 피부에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차림새도 색달랐습니다. 남자들은 조선시대 우리나라 서민 의상처럼 새하얀 상하의를 걸쳤고, 여자들의 차도르도 연한 색의 가벼운 천이었습니다.
건조한 사막도시에서 출발한 우리에게 이곳 반다라아바스는 새로웠습니다. 항구도시의 비릿한 바다 냄새와 갑자기 더워진 날씨, 그리고 사람들의 다른 모습은 마치 다른 나라로 들어선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곳에서 착각을 일으킬 만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이란인은 아리아족인데 이곳 반다라아바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아랍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예전에 이곳 반다라아바스는 아랍인의 땅이었기에 이곳에 유독 아랍인이 많은 것이었습니다.
색다른 이란, 반다라아바스는 이런 것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이란인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갖고 친절했다면 이곳에서는 무시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커피를 사러갔을 때도 샌드위치 가게에서도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들 하나 같이 우리에게 '차이나'냐고 물었고, 야유조로 '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특별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했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보건소에 가서 아랍 여자에게 박대당하고는 이들의 우리에 대한 평가를 조금 깨닫게 됐습니다.
보건소에서 화장실을 찾으니 입구에 앉아있던 여자가 '노(안 돼)'라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섭섭한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 여자가 곧 따라 나오더니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태도가 바뀐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처음에 우리를 문전박대했던 이유는 중국에서 온 못 사는 사람들로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못 사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했기 때문이었지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에게 '차이나'니 '친'이니 하는 물음 속에는 이런 식의 무시하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거대 중국, 미래에는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중국이 이곳 반다라아바스에서는 완전히 찬밥 신세였습니다.
이곳에서만 그런 건 아니라고 합니다. 인솔자가 이집트 가서 스카프를 살 때 좀 좋은 것과 안 좋은 것 두 종류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장사가 하는 말이, 안 좋은 건 중국제니까 안 사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중국제는 세계에서 질 나쁜 물건의 대명사로 통하는 모양입니다. 중국 물건에 대한 이런 이미지가 중국인까지 좀 못 사는 나라의 초라한 국민으로 몰고 가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우린 우리 기업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기업의 물건이 이란에서 고급 대접을 받기에 한국에서 왔다면 다 잘사는 나라 국민인 줄 알고 대접이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국가 이미지나 국민 이미지가 기업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곳 반다라아바스에서 우리가 '메이드 인 차이나' 취급을 받은 이유는, 이곳 은 이란의 다른 지역보다 외부인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중동의 뉴욕이라고 할 수 있는 두바이를 가기 위해서는 이곳 반다라아바스에서 출발해야 하기에 이곳은 두바이와 왕래가 잦은 곳이라 꽤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인 듯 했습니다. 그렇게 눈이 높아진 그들에게 배낭여행으로 몰골이 초라해지고 또 버스에서 밤을 새느라 다소 부스스해진 우리 몰골은 당연히 '메인드 인 차이나'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