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정례 기자회견 중인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 이날 친강 대변인은 중국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사이트
국가 간의 예양(禮讓)으로 보나, 불과 며칠 전에 정상끼리 만난 한·중관계로 보나, 그 발언 수위는 의외로 강하다. 작심하고 불만을 쏟아낸 것이다. 더구나 통상적인 군사 훈련은 엄격히 보면 내정에 속하는 문제이다.
6월 28일, 이명박 대통령은 토론토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을 만나 천안함 사건과 관련 후진타오 주석의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그때 중국 주석은,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안보리 대응 과정에서 계속 긴밀히 협의해 나가자고 답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우리 정부는 토론토 정상회담 이전에도 이미 수차례나 만나 중국을 설득하려고 많은 공을 들였다. 중국 측과 회동이 있고 나면 외교 당국은 늘 "중국 측이 호의적이더라"면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다.
그러던 중국이 실제로는 엄청난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 불만을 우리 정부와 물밑에서 조율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공개적으로 토로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 당국은 상황을 전혀 판단하거나 예상치 못 하고 열흘 전까지도 중국을 설득하려 했다. 참으로 망신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불만을 넘어 중국이 경고한 것은
이번 중국의 공식 발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중국의 포석은 다목적이다. 우선 가깝게는 우리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지나치게 국제문제화 한다고 보고 제동을 건 것이다. 또 그 이면에는 미국이 최근 북한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대한 불만을 정식으로 제기했다. 중국은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 자처해 온 지 오래다.
중국의 의도는 그러한 불만의 토로로 끝나지 않는다. 분명히 우리 정부에게 미국과 지나치게 밀착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는 또 북한을 너무 몰아붙여서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하지 말라는, 한·미 양국에 보내는 메시지다. 즉 중국 자신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적어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중국은 미국의 세계정세 주도를 패권주의로 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군사적, 경제적 역량은 미국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데 맞춰져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또 하나의 신패권(新覇權)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미 그를 위한 상당한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중국을 곱게 보지 않으며, 엄연한 공해상의 군사 훈련을 경고하고 나선 이번 중국의 간섭도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보면 바로 코앞에서 미국 군함이 와서 훈련을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합동군사훈련을 해야 할 상황까지 몰아간 것이 우리 외교와 대북정책이다.
북한 문제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특히 중국은 한반도에 대단히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실시된 이래 북한과의 사회주의 동맹국이라는 의미는 거의 퇴색했지만 북한에 대한 이해관계는 아직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와 경제관계가 아무리 확대되고 중국이 아무리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더라도, 그들은 절대로 북한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굳이 나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중국이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다.
가장 분명한 것은 중국이 결코 북한의 교조주의나 위험 세력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중국은 자국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 북한이 조용하기를 바란다. 북한에 전쟁이 발발한 경우 거기에 중국도 휘말리게 되거나 쿠데타, 민중 혁명 등으로 난민이 발생하여 자국에 부담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중국은 의리 때문이 아니라 절실한 국익 때문에 북한의 안정을 바라고 있다.
동시에 북한이 핵을 보유하여 통제 불가능한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중국에 위협도 되지만, 그것은 곧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더욱 증대되어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진다. 이는 미국과의 긴장을 불러오고 중국 자신의 경제 발전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잘 안다. 반대로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가장 영향력이 있는 나라는 변함없이 중국이다. 국경을 통한 경제 교류는 물론이고 외교 무대에서도 중국은 든든한 방어벽이다.
갈피를 못 잡는 대북한 정책과 강대국 외교중국이 공개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지나친 밀착을 경고하고 나섬으로써 우리 외교의 실책이 표면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외교의 패착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후 이전까지의 대북 정책을 뒤집어엎은 것으로부터 당연히 외교도 잘못되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해 강경책을 쓰면 우리는 미국의 힘을 빌 수밖에 없다. 우리 힘으로는 작전권도 없고 군사력도 상당 부분 미국에 의존해야 한다. 외교적으로도 북한을 고립시키는 데는 미국만큼 강한 나라가 없다. 이렇게 하여 미국에 더 의존하면 당연히 중국은 반발하고 경계한다. 중국이 우리와의 경제 관계를 희생시키지 못 할 것이라 믿는 것은 오산이다. 결코 북한 정권과 맞바꾸지는 않는다.
이런 국면의 전개는 쉽게 내다볼 수 있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십여 년 동안 무르익어 가던 남북한 관계를 60년대로 되돌려버린 것일까?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 문제, 통일 문제에 관한 비전을 내놓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이 정부는 출범 이래 대북 정책의 원칙적 사항은 아무 것도 언명한 적이 없다. 즉, 원칙은 지금까지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취한 태도는 원칙에 전혀 위배되는 강경책이었다. 대북 원조를 축소하더니 금강산의 박왕자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길도 막혔다. 개성 공단의 기업들은 더 이상 투자를 꺼리며 철수할 눈치만 보고 있다. 마침내는 "전쟁" 얘기까지도 나오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개성의 우리 국민은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북 정책도, 외교도 재고해야그러한 대북 강경책의 근거와 비전은 무엇인가? 근거라고 든 것은 퍼주기로 북한의 핵개발만 도왔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은, 남북한관계를 모르는 동네 아저씨들의 불평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고, 그렇다면 퍼주기라는 성급한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골수 독재 정권이자 국제법도 통하지 않는 무법자요, 정권 자체가 테러 집단인 북한이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의 권력층과 북한의 체제가 그런 것이다. 북한의 주민들은 우리들의 적이 아니다. 그런 북한을 다루는 데는, 지도자와의 대화를 계속 시도해야 하고, 다행히도 월등한 우리의 국력으로 계속 원조함으로써 주민 의식을 개방하고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퍼주기가 아니라 안보 비용이며, 통일 비용이다.
이명박 정부는 강경책으로 무얼 하자는 것인가? 우리는 이 정부의 남북한 관계에 대한 비전을 알 수가 없다. 강경책으로 북한 지도부를 고사(枯死)시키자는 것인가, 주민 봉기로 북한 정권이 무너지게 하자는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하자는 것인가? 만일 정말 그렇다면 그 희생이 얼마나 파멸적인가를 모르고 하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대북 정책 때문에 천안함 사건을 초래했다. 북한을 편든다고 비난하는 것은 유치한 호도이다. 북한을 잘못 다룬 점을 따지는 것이다. 그 천안함으로 국민을 속이고 외교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책임을 지우겠다, 단호히 대응하겠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대결로 몰아갔다. 충분한 설득도 없어 국민들이 천안함의 진상을 못 믿는 판에 국민 아닌 용병으로 전쟁을 치르겠다는 것이었을까?
엄청난 사건에 대한 책임과 사과도 없이 마치 북한으로 쳐들어갈 듯이 국민의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대통령이 취할 만한 단호한 조치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큰소리쳤던 휴전선의 대북 방송조차도 문제의 확대를 우려해 슬그머니 보류했다. 중국, 러시아의 의도도 모른 채 고집만으로 천안함 사건을 유엔으로 가져가서는, '북한'을 명시도 못한 채 알맹이도 없는 안보리 의장성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졸속하고 무지한 사태 판단인가? 그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도 않는다. 늘 그랬듯이 고집으로 밀고나간다면 앞으로도 얼마나 무리가 따를지 모른다. 회수하려던 국방자주권을 다시 돌려주어 미국에 끌려 다니는 것도 개탄할 노릇이지만, 인근 대국과 우호를 깨트려가며 내정간섭 가까운 발언을 듣는 것도 심각한 실책이다.
대통령의 책임은 무한하다. 경제 대통령을 자임한 뒤로 얼마나 경제 발전을 이룩했는지는 미루어 두고 대북한 관계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가고, 중요한 외교의 실책을 거듭한 데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10년, 20년 앞을 보고 북한을 다루어나가야 할 것이며, 좀 더 치밀하고 정확한 판단으로 외교적 처신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해 가장 영향력이 있는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강대국 외교도 마찬가지다. 군사력으로 세계에 관여하는 미국은 도덕적으로 불안한 나라이며, 앞으로 경제, 문화적으로 혼란과 쇠퇴의 길을 걸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적으로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 하고 중국과 등을 진다면 우리 외교의 큰 실책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중국, 서해상의 한·미 합동군사훈련 공식 반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