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가 상전 행세? 보수언론, 공문원칙 모르나

[분석] 교장들에게 '일제고사 보고' 강요 <조선> 기사 논란

등록 2010.07.10 21:28수정 2010.07.1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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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일보> 10일치 A10면 보도 내용.

<조선일보> 10일치 A10면 보도 내용. ⓒ PDF화면


일부 보수언론이 일제고사(국가 학업성취도평가) 실태 조사를 위한 전교조 전북지부의 공문에 대해 몽둥이를 들고 나섰다. 공문 수신 난에 '학교장'이라고 적은 내용 등을 예로 들며 '진보교육감이 들어서자 교장에게 보고를 강요했다'는 식으로 일제히 공격한 것이다.

<조선> "전교조가 월권, 상전 행세" 주장, 그러나...

<조선일보>는 10일 A1면과 A10면 기사 "전북 전교조 '일제고사 실태 보고하라' 교장들에 공문"에서 '학교장에게 보고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며 상전행세를 하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음은 보도 내용이다.

"교원 노조가 학교장에게 '보고'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월권인 데다 친 전교조 성향의 김승환 전북 교육감이 취임하자 전교조가 일선 학교에 '정책을 하달하는 상전'으로 행세하려 한다는 비판이 교장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도 이날 <조선>의 보도를 받아 "전교조 전북지부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앞두고 일선학교 교장 앞으로 '일제고사 시행 실태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내 파장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a  전교조 전북지부가 지난 8일 각 학교에 보낸 공문.

전교조 전북지부가 지난 8일 각 학교에 보낸 공문. ⓒ 윤근혁

이들 신문의 보도대로 전북지부가 지난 8일 보낸 공문은 수신자란에 '학교장'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맞다. 기관과 기관에서 공식으로 오고 가는 문서가 '개인문서(사문)'가 아닌 '공식문서'(공문)가 되려면 기관장을 명기하는 것이 공문의 기본 작성 원칙이다.

하지만 두 매체는 이런 사실을 놓고 '교장에게 보고를 강요했다'식으로 넘겨짚었다. 공문 형식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했거나, 기본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을 속이기 위한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두 매체는 전북지부 공문에서 일부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교장에 대한 보고 강요'라는 자신들의 주장과 어긋나는 내용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문에서 전북지부는 조사 대상과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명기해놓았다.


"대상: 전교조 분회장 및 조합원, 방법 1)전교조분회장님이 발송된 실태조사 참여, 2)전교조전북지부 FAX로 전송"

이 내용에 비춰보면 교장이 보고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 조합원(분회장)들이 일제고사 실태를 조사해서 전북지부로 팩스 전송해달라는 내용인 것이다.

또한 전북지부의 공문을 보면 수신자란 아래 '경유'란에 전교조 '분회장(교원노조업무담당자'이라고 적었다. 이 경유란이 업무처리 담당자를 뜻하는 것이라는 게 일선 교사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노병섭 전북지부장은 "학교에 공문을 접수시키려면 수신자는 당연히 학교장이 되어야 하고 업무처리는 경유 담당자가 하는 것이 공문처리 시스템의 기본"이라면서 "전교조가 99년 합법화 이후 10여 년 넘게 학교에 보낸 공문이 줄곧 이런 형식이었는데 마치 이번이 처음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전북지역 한 교사는 "같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을 비롯한 청소년단체, 문화단체, 사회단체가 보낸 공문들도 모두 수신자를 교장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총이 보낸 공문도 살펴보니, 수신 란에 학교장이…

a  부산교총이 각 학교에 보낸 공문.

부산교총이 각 학교에 보낸 공문. ⓒ 윤근혁


실제로 기자가 한국교총이 보낸 공문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대부분 수신자는 학교장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한국교총 산하단체인 부산교총은 2007년 9월 17일 "무자격 교장(공모)제 입법 예고관련 협조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이 지역 초중고에 일제히 보냈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이 공문의 수신처란에는 "각급 학교장(분회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같은 단체가 같은 해 11월에 보낸 "교육강국, 교육대통령 만들기 전국교육자대회' 안내 및 참석자 통보 의뢰" 공문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당시 선관위로부터 불법 선거운동으로 검찰에 고발되기도 한 이 집회 수신자란에 "각급학교장(분회장)"이라고 적은데다 경유자는 "교감(교무처장)"으로 표기해놓았기 때문이다.

같은 해 전북교총도 "'학생 수 기준 교원 배정안' 반대 서명운동"을 하면서 수신자란에 "전라북도교육청 및 직할기관장, 지역교육장, 유․초․중․고등학교장"이라고 적었다.

<조선>과 <연합>의 논리대로라면 한국교총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공문을 학교에 보내 교장에게 서명과 집회까지 강요한 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문 시스템을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누구도 이들 매체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두 매체의 이번 보도를 보고 '공문 시스템을 망각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교조 #조선일보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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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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