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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2학년이던 1983년 가을날, 담임을 맡던 젊은 여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혼인한 지 얼마 안 되던 담임선생님은 아이를 낳고자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아이 낳는 말미를 얻어 한두 해쯤 쉰다 하겠으나, 지난날 여자 교사들은 아이를 낳을 무렵이 되면 으레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지난날로서는 마땅한 노릇일 텐데, 이러한 때에 애 아빠 되는 분(똑같이 교사라 할 때에)들이 아이를 함께 돌보겠다며 학교를 쉰다든지 말미를 얻는다든지 하는 일은 꿈조차 꿀 수 없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1학기를 마칠 때까지 다른 말이 없었으나, 2학기를 열자마자 학교를 그만둔다고 우리들한테 알렸고, 우리들한테 알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헤어지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만두는 자리에서 예순 남짓 되는 반 아이들 모두한테 선물 하나와 편지 하나씩 남깁니다.
담임선생님이 선물과 편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는 자리에서 모두들 울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지난 한 학기를 돌아보며 나는 얼마나 개구지게 놀며 공부하는 때에 이웃 짝꿍들하고 시끄럽게 떠들었는가 뉘우칩니다. 적잖은 동무들은 "이제 수업 때에 안 떠들 테니까 가지 마셔요"하고 말하며 흐느낍니다. 그러면서도 담임선생님이 내미는 선물은 빠짐없이 받아 챙깁니다.
어느덧 나한테까지 선물이 돌아올 차례. 다른 아이들이 받는 선물을 보아 하니 연필이거나 공책이거나 '문방구에서 파는 값싼 장난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나한테는 아주 뜻밖에도 '인천 三美슈퍼스타즈 야구수첩'을 건넵니다. 다른 아이들은 부피가 제법 큰 선물을 받는데, 나한테는 아주 조그마한 선물이라 처음에는 서운하게 여겼지만, 정작 선물을 끌르니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야구와 얽힌 선물이라 크게 놀랐습니다. "종규는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종규를 생각하니 딱 이게 떠오르더라."
아직까지 잘 간수하고 있는 국민학교 2학년 때 그림일기장을 비롯해 6학년까지 쓰던 일기장을 죽 살피노라면, 제 일기 줄거리 가운데 2/3쯤은 집과 학교 둘레에서 형이나 동무들하고 야구를 하며 놀던 일입니다. 또는 숭의야구장(도원야구장)으로 찾아가서 야구 경기를 보고 온 이야기를 일기로 썼습니다. 이무렵 야구장은 7회말을 할 즈음 문을 열어 누구나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 주었기에, 돈 없는 우리 꼬맹이들은 7회를 할 때까지는 언덕받이에 올라가 경기장 안쪽을 멀거니 바라보며 전광판 글월하고 구경꾼 소리로 경기를 지켜보았고, 7회가 넘어설 때부터는 파울로 경기장 밖으로 나오는 공을 주울 수 있나 싶어 빨빨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어린 날, 야구장에서 받은 삼미슈퍼스타즈 모자니 야구공이니 선물이니 야구장 표이니는 모두 사라지거나 잃어버리거나 남아 있지 않지만, 국민학교 2학년 때 한 학기만 가르치고 떠난 선생님이 남긴 야구수첩은 고이 남아 있습니다. 아니, 이 야구수첩은 국민학교 여섯 해에 걸쳐 아주 소담스러운 보배로 삼아 알뜰히 건사했고, 국민학교를 마친 뒤이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이건, 제도권학교를 모두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지내거나 충주 산골마을로 들어가 지내거나 다시 고향 인천으로 돌아와 지내거나 책상서랍 한쪽에 곱다시 모셔 두었습니다.
나한테뿐 아니라 동무들한테 삼미슈퍼스타즈는 '꼴찌 팀'도 '프로라 하기 어려운 아마추어 팀'도 아닌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좋은 님들이었습니다. 선수들은 으레 동네 형이거나 아저씨라 할 만한 사람들이었는데, 경기에서 진다고 우리들이 선수들을 나무라거나 손가락질하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 동네에도 야구장이 하나 있고, 이 오래된 야구장에서 동네 어른들이 아기자기하게 야구를 즐기면서 안타 하나라도 때리고 맞은편 잘하는 선수들한테서 삼진을 하나라도 뽑아내면 '이야 대단하다!'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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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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