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를 잡고 벽을 닦는다.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을 번갈아가며 닦아야 반짝거린다.
황상호
"아유, 스테이크 하나에 3만 원이야. 나 같은 사람은 못 와."
손씨는 청소하다가 메뉴판을 보고 기겁한다. 그 식당에서는 보통 수준인 스테이크가 3만 원을 넘는다. "여기 오냐? 먹어봤어?" 최 과장이 내게 물었다. 서울 강남의 한 커피전문점을 청소 할 때다.
"미쳤어. 커피가 오천 원이 넘고. 세상이…."나의 일당은 3만5500원이다. 쉬는 날은 빠지니 한 달 수입이 채 100만 원이 안 된다. 일인당 3만 원짜리 스테이크, 5천 원짜리 커피는 가당찮은 사치다. 만일 내가 혼자 살면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처지라면, 이 돈으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 따져봤다. 방값이 30만 원이라면 생활비로 70만 원 남는다. 이틀에 한 번만 아침을 챙겨먹는다고 했을 때 한 달 총 75끼를 먹는다. 한 끼 5000원을 기준으로 밥값만 37만5000원이 든다. 해장국에 소주 한 병을 곁들이는 게 부담스럽다.
매일 8~10시간씩 야간 일을 하면서 한 달에 100만 원은 아무리 따져도 너무 적다. 일반 기업이면 야간작업에 50%의 추가 수당을 줄 것이다. 이 회사에서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은 근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보통 오후 9시에 출근해 한 시간 대기하고 10시에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일을 시작하는 11시가 되기 전까지 2시간을 그냥 보낸다. 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멀리 갈 때는 편도만 199km를 달려가지만 특별 수당 같은 것은 없다. 일이 일찍 끝나서 오전 3~4시쯤 돌아와도 집까지 차를 태워주거나 택시비 같은 것을 챙겨주는 법이 없다. 대책 없이 지하철역에 앉아 있다가 첫 차를 타고 퇴근해야 한다.
지방에 일이 연이어 있으면 현지에서 숙식을 할 때도 있다. 청소하는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자고 먹을까? 충청도 출장 첫 날, 일을 마치고 '24시간 고기집'에 갔다. 모두 6명이었다. 새벽까지 일했으니 배가 무척 고팠다.
"3300원 짜리 고기가 없네, 그게 맛있는데."최 과장이 메뉴판을 보고 아쉬워하더니 삼겹살 5인분을 시켰다. "간단하게 먹고 자야하니까요, 그렇죠?" 억지 동의를 구했다. 고기가 불판에 오르기도 전에 빈속에 소주를 들이켰다. 밥을 같이 시킨다. "된장찌개는 서비스죠?" 최 과장이 아주머니에게 몇 차례나 묻는다. 남자 6명이서 삼겹살 5인분에 소주 7병을 마셨다.
숙소로 모텔 방 2개를 잡았다. 3명 씩 나뉘어 자기로 했다. 계산대에서 주인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5천 원 더 주셔야 돼요. 다섯 명이라고 하셨잖아요." 최 과장이 예약했던 이 과장을 쳐다본다. "이 과장, 6명이라고 예약 안 했어?" 이 과장은 엘리베이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 "에이, 한 명 가지고 되게 그러네. 난 옥상 가서 자면 되지, 아니면 화장실에서 자면 될 거 아냐!" 술이 들어간 김씨가 소리를 높였다. 6만 원을 줘야 한다는 주인을 겨우 설득해 5만5천 원을 내고 6명이 잠을 잤다.
'일하며 공부'는 희망사항일 뿐, 시간도 돈도 없다 처음에 나는 밤에 일하고 낮에는 공부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오전 5시 40분, 지하철 첫 차를 타고 퇴근한다. 빠르면 7시 집에 도착한다. 작업이 길어지면 아침 9시 무렵에야 돌아오는 날도 있다. 씻고 밥 챙겨 먹은 뒤 잠을 청한다. 바로 잠들어도 햇빛 때문인지 생체리듬 때문인지 오후 1~2시가 되면 잠이 깬다. 멍한 상태로 한 시간 정도를 보내고 3시쯤 점심을 챙겨먹는다. 졸려서 다시 자다 깨다 하다가 오후 6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밥 챙겨 먹고 8시에 집을 나선다. 시간을 잘 내봐야 신문 하나 정도 볼 수 있다.
주말도 없다. 기본적으로 주 6일, 한달 26일 근무다. 토요일엔 출근하지 않지만, 사실 그 날도 아침까지 일하다 돌아온 것이다. 어지간히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곤 자기계발이 어렵다. 의식주 외에 쓸 돈도 없다.
모두들 모자를 쓴다. 손씨, 서씨, 황씨, 그리고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최 과장도 쓴다.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부분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다. "쪽 팔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특히 독립 건물이나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따로 있는 가게가 아니라, 지하철역 등 사람 많은 곳을 거쳐 들어가야 하는 장소는 다들 싫어했다. 책임자급인 이 과장도 "더러운 일이지만", "쪽팔린 일이긴 하지만"을 심심찮게 내뱉는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일하러 나가는 길이 괴로웠다. 일찍 도착해도 빌딩 앞을 서성였다. 대기실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이 땀 뻘뻘 흘리며 일할 때보다 더 힘들었다. '시간을 죽이려고' 실없이 주고받는 야한 농담에 웃어주거나 대꾸하기도 싫었다. 진짜 직장이 아니고 잠시 일하는 것일 뿐인데도,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최 과장에게 그만 두겠다는 말을 꺼냈다. 15일간 일한 뒤였다. 그는 담배에 불을 댕겼다. 딸이 냄새난다고 뽀뽀를 안 해 준다며, 담배를 끊었다고 했던 그였다.
"어떡하냐, 저 영감들 데리고…."7년 동안 나처럼 석 달 이하로 일하고 떠난 사람이 150명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 해보더니 다신 안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한 20명 쯤 돌아야 쓸 만한 사람 하나 정도 생기는 것 같다." 사장은 월급을 올려서 사람을 붙잡을 생각은 없고, 적은 인원으로 어떻게든 해내고 그 몫을 관리직들이 나눠 갖자고 했단다.
부장과 과장들은 돌아가며 조금 더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부장은 어차피 취업도 잘 안 될 텐데 야간작업 좀 하다가 낮에 사무실 근무를 시켜주겠다고 나를 구슬렸다. 거절했다. 그러자 돈을 조금 더 줄 테니 예정돼 있는 지방 출장까지만 도와달라고 했다. 그렇게 총 21일을 일했다. 하지만 그가 챙겨 준 '웃돈'은 고작 5천 원이었다.
2000년 이후 6년간 청소용역업체 70%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