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내 몸이 악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악기를 잘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다. 가끔 내 재능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절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유성호
- 한국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기록 경신을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시작한 <소리 위를 걷다> 투어콘서트는 무려 2년에 걸쳐 70개 도시를 순회하는 대장정이다. 어디까지 왔나. "서울 공연까지 끝냈으니 이제 49개 도시를 돌았다. 17일 부산 공연을 하고나면 50개 도시를 채우게 된다. 3분의 2 정도? 해낸 셈이다."
- 쉽지 않은 일 같다. "솔직히 힘들다. (웃음) 콘서트를 하면 우선 체력적으로 참 힘들다. 더 힘든 건 매주 만나는 관객들은 몇 개월씩 기다려 이은미를 만나는 것이지만, 나는 같은 포맷의 공연을 매주 하는 거다. 음 그러니까... 무언가 꽉 채운 다음에 비우고, 또 꽉 채운 뒤에 비워주고, 이래야 하는데, 1주일이라는 시간은 뭔가를 꽉 채우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1주일 만에 다 비워내고 다시 꺼낸다는 게 쉽지 않다. 버겁다. 그런데도 역시 고비들이 올 때마다 스태프들이 기가 막힌 연주를 해주면 공중부양 하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아, 그래, 맞아, 이거였지... 천상 이거(가수) 하게 태어났나 보다. 하하."
- 일종의 팔자론?"하하. 그렇다. 사실은 음반 <소리 위를 걷다>를 내기 전 2년 6개월 정도 노래 못할 뻔했다. 또 '애인 있어요' 나오기 전에도 3년간 공백기가 있었다. 주위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꺼이 받아주는 팬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게 다 내 능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벗어나려고 했을 때도 있었고, 또 안 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또다시 오게 되고, 이런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하다. 기어이 이 직업이 나의 운명이라면 노래를 좋은 동반자로 잘 다독이며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 대중에게 항상 사랑받는 가수가 왜 '벗어나고 싶다'고 느꼈을까. 직장인도 아닌데. "새롭게 뭘 만들어내야 하는 직업이 다 그럴 것 같은데, 음... 뭐랄까. 어쨌든, 목소리로 뭔가 해내는 일도 새로운 창작 작업이기 때문에 수월하지는 않다. 나는 평소 내 몸이 악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악기를 잘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래 묵어서 낡은 소리가 아닌 명기의 소리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다. 가끔 내 재능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절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을 구석구석 다니며 공연하고 있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됐나."충남 태안군 문화예술회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주 긴 편지였는데, 핵심은 태안군 문화예술회관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어? 태안에도 극장이 있어? 공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러곤 정말 공연을 했다. 잘 끝났다. 태안군 홈페이지가 칭찬글로 도배될 정도로. 그 뒤로 대한민국 지자체별로 체육관이나 컨퍼런스홀이 아닌 문화예술회관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봤고, 140개가 있다는 걸 확인한 뒤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 공연문화도 대도시 중심이기 때문에 문화예술회관 사정이 썩 좋을 것 같지는 않다."과시용으로 짓다보니 문화예술회관 건물은 좋다. 그런데 워낙 빤한 지역예산에, 더군다나 문화예술예산은 더 형편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문화예술회관 예산을 모두 시설 관리하는 데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문화예술회관의 콘텐츠와 관련된 예산보다는 건물을 유지보수, 관리하는 데 돈을 쓰는 게다. 지역민이 쓰기에는 지나치게 큰 건물들이지만, 그래도 뭐 제대로 잘 활용하면 쓸모가 있고, 또 대중음악인들에겐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했다. 대중음악가가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닌가."
- 힘들지만 계속 하는 까닭은 사명감 때문인가."정말 사명감을 갖고 해보는 일이다. 전국의 140개 문화예술회관에서 모두 공연을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최대한 다 소화하고 싶다. 문화적 갈증에 시달리던 관객들은 이은미가 그 마음 알아주니 고마울 테고, 이은미는 그들과 함께하니 즐거운 것이고,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극장들이 알고 보면 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작업이 이뤄진다면 멋진 일 아닌가."
- 그래서 '문화혁명'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한 건가."대통령 내외분을 초대합니다. 문화관광부 장관님을 초대합니다. 좋은 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내외분과 문화관광부 장관님의 자리는 항상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오셔서 현 대중문화의 위치를 확인하십시오. 그 포스터 맞다, 빨간 깃발을 들고 찍은 사진.
개인적으로 무수한 공연을 했지만 단일공연으로는 최장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공연이기 때문에 나에게도 퍽 의미가 깊다. 이 공연을 할 때 가급적 체육시설과 컨벤션홀 같은 회의실은 배제한다.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을 문화예술회관답게 제대로 운영하는 것을 해 보겠다, 이런 의도가 깔려 있다."
가수 현영이 차라리 솔직한 까닭- 요즘 공연장의 트렌드는 어떤가. 이은미 공연엔 10대가 별로 없지 않은가."부모님이 14세, 15세 되는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하고, 또 60~70대 부모님을 모셔오는 경우도 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애인 있어요' 이후 자기들끼리 공연장에 찾아오는 10대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하하.
또 이 노래가 어떤 교본처럼 돼서 오디션용으로 직접 들으러 오는 친구들도 있다. 10대의 특징은 공연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관심 있는 노래가 나올 땐 눈이 반짝반짝 빛나지만, 관심 없는 노래가 나오면 하품한다. 가끔은 난처하다. 모든 세대를 다 커버하는 음악들로 어떻게 공연을 짜야 하나. 후훗."
- 40대가 주 관객인가."30대. 아 인생, 내 뜻대로 안 되는구나, 이런 게 삶이구나, 뭐 이런 걸 느끼신 분들. 이은미의 목소리가 살면서 받은 상처를 조금이나마 어루만져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껴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 2008년 6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립싱크 하는 가수는 립싱커'라 불러야 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요즘 가요계는 어떻게 보나."더 거론할 가치가 있나. 상업적인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데.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그런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차라리 현영 같은 친구는 스스로 돈 벌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차라리 솔직한 표현 같다."
- 이효리씨가 최근 발표한 정규 4집이 표절 파문에 휩싸였다."가요를 담당하는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말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가 문제가 크게 불거지니 그때서야 얘기를 한다. 이미 음원은 다 팔아서 수익은 다 챙긴 뒤의 일이다. 뭔가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한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
- 어떤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표절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작곡가인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는 그런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여전히 그들의 작품은 시장에서 아주 비싼 값에 팔린다. 가장 중요한 건 양심의 문제다. 표절은 시작 때부터 제작자도, 본인도, 노래를 부른 가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제작자가 원해서 그 음악을 부른 가수도 이미 표절이라는 걸 알면서 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물론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 이효리 말고도 MC몽, 손담비, 장윤정 등등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표절에 대한 어떤 규정도 없다. 저작권협회에서 갖고 있는 규정을 보면 몇 소절 이상이면 표절? 창작 작업과 관련해 표절을 구분하는 잣대도 애매하다. 스스로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
또 하나, 표절한 사람을 쉽게 용서하는 문화가 있다. 인기가 있는 사람이니 쉽게 비난할 수 없는 부분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인기 있고 돈 잘 벌면 '장땡' 아닌가.
남의 걸 베끼는 행위는 나쁘다는 여론이 팽배하다면 함부로 표절하지는 못할 것이다. 남의 작업을 훔치는 사람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고 본다. 별로 규제가 없으니 계속 반복되는 거라고 본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한국의 이중잣대가 있다. 어떤 사람은 미국 국적 때문에 한국에 다시는 올 수 없는 역적 취급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에 위반되는 행동을 했는데도 버젓이 활동한다. 표절했어도 활동 중단하고 안 나오면 그만인 걸로 되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유연한 잣대를 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참 복잡한 프리즘을 갖고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이효리 표절 사건과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