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대찰을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남도여행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 ⑮] 영암 월출산 도갑사 2

등록 2010.08.07 09:18수정 2010.08.0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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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미륵전 석조여래좌상

 미륵전으로 가는 길에 놓인 다리
미륵전으로 가는 길에 놓인 다리이상기

도갑사의 중심 동선은 해탈문에서 대웅보전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 좌우에 전각들이 들어서 있다. 대웅전 좌측에는 천불전이 있고, 우측에는 국사전이 있다. 그러나 좌측 천불전을 지나 월출산 등산로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서면 계곡을 따라 용추폭포가 나온다. 이 계곡에 놓인 다리를 지나 왼쪽으로 올라가면 미륵전이 있다.


그냥 민가처럼 생긴 절집인데 이곳에 정말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다. 보물 제89호인 석조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몸체와 광배를 하나의 돌에 조각하고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를 큼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미륵전 석조여래좌상
미륵전 석조여래좌상이상기

도드라진 눈덩이,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은 조금 근엄한듯하면서도 은근한 친근감을 보여준다. 넓은 어깨, 평평한 가슴, 단순한 몸의 굴곡 등은 소박하면서도 경건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나마 그러한 소박함을 보완해주는 것은 왼쪽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늘어뜨려진 몇 가닥의 옷 주름이다.

끝이 뾰족한 타원형 광배 가운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꼭지와 머리 양 옆에는 세 기의 화불이 표현되었다. 광배에 새겨진 조각은 대체적으로 생략이 강하다.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좌는 밋밋한 4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원래는 연꽃무늬를 새긴 8각형 대좌였을 것이다. 기법으로 볼 때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부도밭과 도선수미비

 부도밭
부도밭이상기

미륵전을 나와 다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왼쪽에 부도밭과 도선수미비가 나타난다. 이곳의 부도밭은 다른 절과 달리 줄을 지어 나란히 서 있다. 한쪽에는 6기, 다른 한쪽에는 5기의 부도가 있다. 어쩐 일인지 한 기는 기단부만 보인다. 8각원단형, 석종형, 절충형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와 조선시대 부도로 보인다. 그런데 부도에서 글자를 확인할 수가 없다. 또 부도를 설명하는 안내판도 없어 그 주인들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부도밭 옆에는 도선수미비(보물 제1395호)가 있다. 도갑사를 세운 도선 스님과 중건한 수미 스님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1653년(효종 4)에 건립되었으며, 규모와 조각기법 등에서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귀부는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을 사용했다. 비신 양 측면에 조각된 운룡문은 힘찬 율동과 상승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리석을 비신으로 사용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도선수미비
도선수미비이상기

이 비의 공식 명칭은 '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대선사 비명'이다. 비문 내용을 보면, 이곳에 도선국사비가 있었으나 훼손되어 1653년 다시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이 비석에는 비문이 3개 있다. 전면에 2개, 후면에 1개 있으며 비문을 지은 사람이 모두 다르다. 전면의 비문은 영의정 이경석(李景奭), 홍문관 부수찬 이수인(李壽仁)이 지었다. 그리고 후면 '국사 도선비 음명(陰銘)'은 홍문관 교리 정두경(鄭斗卿)이 지었다.


이경석이 지은 비문은 도선국사의 위대성을 찬양했다면, 이수인이 지은 비문은 도선국사비의 역사와 재건립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수인의 비문은 도선국사비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정두경의 비문은 음기(陰記)로, 도선국사의 업적을 찬양한 시문이다. 그러므로 '도선수미비'는 도선국사와 수미대선사 두 분의 업적을 기린 것이라기보다는 도선국사의 업적과 비석의 재건립 과정을 기록한 특이한 비다. 정두경은 도선국사의 업적을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기리고 있다.

 정두경의 '국사 도선비 음명'이 새겨진 후면
정두경의 '국사 도선비 음명'이 새겨진 후면이상기

위대하신 고려 초의 도선국사는    猗歟詵師
민족위해 태어나신 용상이시다!    龍象之傑
어떤 분야 학술이던 무불통이나    術無不通
그중에서 뛰어남은 지술이라네!    靑鳥其一
        […]
스님께서 중국에서 수학한 다음    師得妙訣
마음가득 채우고서 귀국하였네!    複還東國
귀국 후엔 송악 터를 살펴보고서   爰相松嶽
오백 년의 도읍터라 지상을 보다!  載祀五百
투철하신 스님 법안 비길 데 없어  師有法眼
백천 년을 꿰뚫어서 밝게 보시다!  洞觀百千
        […]
해가 뜨는 동쪽나라 우리 국토는   東國之土
삼천리 금수강산 반만년 역사!      數千餘里
회령에서 제주까지 멀고 넓지만    無遠無邇
도선국사 두루두루 살펴보았네!    師無不歷
절을 짓고 탑을 세운 그 공덕으로  創寺建塔
묏부리와 하천을 진압하였다!       以鎭嶽瀆

성보박물관에 있는 유물들

 성보박물관 가는 길에 만난 탑재와 건축부재
성보박물관 가는 길에 만난 탑재와 건축부재이상기

부도밭을 내려온 다음 아내와 나는 마지막 볼거리인 성보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으로 가면서 보니 주변에 주춧돌과 탑재 등이 널려 있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목포대학교 박물관팀이 발굴․조사한 후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들로 보인다. 성보박물관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니 열리지 않는다.

마침 건물 한쪽으로 박물관 지킴이가 한 분 앉아있다. 그 분께 문을 좀 열어달라고 하니 자기는 잘 모르고 종무소에 전화를 걸어보라고 한다. 종무소에 전화를 하니 열쇠를 가지고 갈 테니 잠깐 기다리란다. 그것 참, 박물관 보기가 꽤나 어렵다. 잠시 후 종무소 직원이 와 문을 열어준다.

 <도선비결>
<도선비결>이상기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도선국사가 쓴 <도선비결> 영인본이 보인다. 다른 쪽 공간에는 유적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도자기와 와당 등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도갑사의 역사를 아는 데는 중요해 보인다. 사실 이 박물관에서 더 중요한 것은 도선국사와 수미왕사 진영이다. 국사전에 있는 것은 복사본이고 이곳에 있는 것이 진품이다.

도선국사 초상은 주장자를 들고 의자에 걸터앉아 약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전신상이다. 화폭의 윗부분에 '도선국사진영'이라는 제목을 써 놓았다. 절에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도선의 초상화는 세조 2년(1456) 도갑사를 중창한 수미왕사의 제안으로 처음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조선 후기 다시 옮겨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 어디서 본 듯한데...

그렇지만 이 초상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보물 제1134호 목조 문수․보현동자상이다. 이들은 원래 해탈전에 있던 것으로, 사천왕상 대신 건물 안 양쪽에 모셔져 있었다. 그러나 해탈문을 해체 복원하면서 이들 동자상이 성보박물관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절에서 해탈문에 모셔진 문수동자상과 보현보살상은 현재 대흥사 해탈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수동자상
문수동자상이상기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상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상은 총 높이가 1.8m이고, 앉은 높이가 1.1m이다. 다리를 앞쪽으로 나란히 모으고 사자와 코끼리 등에 걸터앉은 모습이다. 두 동자상의 머리를 묶은 모양새가 특이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동자의 원만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기 때문에,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인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나무로 만든 동자상으로 사자와 코끼리를 탄 작품은 유례를 찾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수·보현동자상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이들 문화재를 보고 나오니, 종무소에서 온 분이 문 옆에서 우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보현동자상
보현동자상이상기

그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도갑사를 떠난다. 수리 중인 해탈문을 지나 일주문 쪽으로 나오는데 일련의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 도갑사는 동쪽 천황사에서 서쪽 도갑사로 이어지는 월출산 종주산행의 종점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들 등산객 대부분은 산만 찾지 문화유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등산객들이 문화재 관람료 징수에 반발하는 것일까?

이제 3박 4일간의 남도여행을 마감할 시간이다. 강진에서 시작해 해남과 완도를 거쳐 영암까지 이어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답사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또 배웠다. 여러 사람과 만나며 인연도 맺고 즐거움도 나누었다. 여행이 기대로 시작해 아쉬움으로 끝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 답사는 아쉬움이 별로 남지 않는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사람들이 이 지역을 남도여행 일번지라고 말하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완결)
#미륵전 #석조여래좌상 #도선수미비 #,도선비결> #목조 문수보현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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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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