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8.09 12:09수정 2010.08.0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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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태안성당 '사목계획서'를 만들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신부님께서 사목계획서 첫머리에 시 한 편을 올려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해 본당 사목지표와 어울릴 수 있는 시를 하나 지어보라는 말씀이었지요. 그래서 '버릇 들게 하소서'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전반의 종결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버릇 들게 하소서"라는 구절로 처리했고, 후반의 종결은 "미안합니다! 라는 말이 버릇 들게 하소서"라는 구절로 처리했지요.
그 시의 후반 부분을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더불어 산다는 것이
때로는 서로에게 짐이 되고
누가 되기도 하는 것은 세상 삶의 어려움
알게 모르게 남에게 죄짓는 일
미안스러운 일도 많기 마련
미안함을 느끼고 깨닫는 것은 지혜이며 사랑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 되고 미안한 일이 없나 살피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땐
진실과 용기로써 그 마음을 표현하게 하소서
미안합니다! 라는 말이 버릇 들게 하소서.
세상을 살다보면 남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미안함을 만들거나 키우지 않기 위해 신경 쓰고 애쓰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미안함을 감내해야 경우도 있지요.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유형의 미안함이 있지 싶습니다.
상금도 꽤 많은 지방의 이름난 상을 받은 적들이 있는데, '경합'의 과정을 거쳐 상을 받게 되니, 나 때문에 상을 받지 못한 분의 실망과 상심을 생각하면 수상의 기쁨 속에서도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내가 실패의 쓰라림을 잘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더욱 선명했던 건지도 모르지만….
최근에는 좀 더 특이한 유형의 미안함을 경험했습니다. 노친이 계신 요양병원을 매일같이 세 번도 가고 두 번도 가고 할 때 다른 노인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는 데서 오는 미안함이었습니다. 그 미안함 때문에 노친의 등을 두드려 드릴 때도 소리 나지 않게 가만가만 두드려야 했고, 때로는 다른 할머니들의 등도 두드려 드려야 했고, 식반도 날라드리곤 했지요.
그리고 7월초에 노친께서 퇴원을 할 때도 조심을 해야 했습니다. 노친도 나도 입을 봉한 채 아무에게도 미리 말하지 않고 있다가 살며시 퇴원을 했는데, 그것은 노친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부러워하는 눈들 앞에서 이보란 듯이 퇴원해서는 안 된다는, 미안한 마음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지요.
하지만 같은 병실에서 생활했던 할머니들께 갖는 특이한 미안함은 지금도 내 가슴에 측은지심처럼 남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 대전교구의 8일치 ‘대전주보’에 실린 글입니다.
2010.08.09 12:09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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