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최씨 신도비.
한국학중앙연구원 발행 <숙빈최씨 자료집 4>
말을 잘하고 명랑할 뿐만 아니라 불타는 정의심으로 무슨 일에든지 곧잘 끼어드는 드라마 속의 동이와 달리, 실제의 최 숙빈은 그와 정반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성격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숙빈은 천부적인 바탕이 침착하고 과묵하여 기쁨과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라고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소재 소령원(최숙빈의 무덤)에 있는 '숙빈 최씨 신도비'(1725년 건립)는 말하고 있다.
타고난 천성이 침착하고 과묵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가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천민 출신의 후궁인지라 까딱하면 궐내에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수도 있었기에, 그는 궐 안에서 누구보다도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과 아들의 지위를 지키고자 선택한 '대인관계의 2대 노하우'가 있다.
그중 하나는, 궁궐 사람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위의 신도비에 따르면, 최 숙빈은 궁중 웃어른들을 밤낮으로 봉양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후궁과 궁녀들에게도 겸손하고 온화하게 대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언제나 그들의 환심을 얻었다"라고 신도비는 말하고 있다. 실제의 최 숙빈은 '궐 밖'이 아니라 '궐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데에 주력했던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철저히 단속하는 것이었다. 신도비에 따르면, 최 숙빈은 장점이든 단점이든 간에 다른 사람에 관해 말하는 것을 철저히 꺼렸다고 한다. 물론 아무 증거도 없이 숙종에게 장 희빈의 범죄를 보고하여 장 희빈을 몰락시키기는 했지만, 평소에는 남에 관한 말을 일절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에 대한 신뢰를 높였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의 시녀들에게도 남의 장단점에 관해 일절 함구하도록 철저히 당부했다고 한다. 주변 인물들로 인해 자신과 아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그는 보통 이상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남의 단점뿐만 아니라 장점까지도 입에 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은 물론 시녀들에게까지도 그렇게 하도록 철저히 단속하는 최 숙빈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이 여인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궁궐 생활을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살얼음판을 디디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이다.
무료 죽집 개설, 실제 최숙빈은 꿈도 못 꿨다궁궐 사람들에게 밤낮으로 지극정성을 다하는 동시에 지나치리만큼 자신과 주변을 철저히 단속하는 최 숙빈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그의 안테나가 향하는 곳이 궁궐 내부인지 외부인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는 궁궐 밖의 서민들이 아니라 궁궐 안의 내명부(궁궐 여인들의 위계적 조직)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여인이 궐 밖의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해 무료 죽집을 개설하는 기부천사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 친서민 행보가 자신과 아들에게 끼칠 정치적 부담 때문에라도 최 숙빈은 그런 것을 아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고 아들의 미래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실제의 최 숙빈은 드라마 속의 동이와 같은 멋진 선행을 꿈꿀 여유가 없었다. 후궁이 되어서도 '남보다 윗자리에 앉으면 무언가 불안하고 불편한' 삶을 살며 '바보'의 행보를 계속하기보다는, '말을 위엄 있게, 행동을 기품 있게 해야 하는 환경에' 신속히 적응하는 것이 그에게는 보다 더 급선무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최 숙빈의 처신이 개혁군주 영·정조를 낳는 데로 연결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최 숙빈 자신은 드라마 속 동이처럼 그렇게 멋지게 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개혁'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의 개혁을 꿈꾸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최 숙빈의 삶이 평가절하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고 역사가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최 숙빈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자기 인생을 개척해나갔을 것이다. 또 적어도 최 숙빈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삶은 분명히 성공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최 숙빈이 앞만 보지 않고 멀리 보았다면, 앞서 가려고만 하지 않고 함께 가려 했다면, 그래서 자기 자신만 정1품에 올리려 하지 않고 온 세상을 정1품에 올리려는 꿈을 꾸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삶은 분명히 동시대인들로부터 '바보' 같은 삶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겠지만, 어쩌면 그런 삶이야말로 죽어서도 영원히 '승자'가 되는 '수지맞는 삶'이 아닐까? 조선판 신데렐라 최 숙빈의 삶에서 그런 아쉬움을 감출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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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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