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은 저마다 극장이요 마당이요 놀이판

인천 골목길을 배경으로 최종규 님이 찍고 쓴 <골목빛_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등록 2010.08.10 17:21수정 2010.08.11 11:37
0
원고료로 응원
a 책겉그림 〈골목빛 _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책겉그림 〈골목빛 _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 호미

마천동으로 삶터를 옮겨온 지 벌써 2년이 지나가고 있네요. 오래 전부터 뉴타운 개발로 들썩이던 곳이라 사람들 마음이 흉흉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죠. 젊은 사람들은 그런 면이 없지 않았죠. 헌데 나이 드신 분들과 어린아이들은 여전히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지요.

동네 앞 골목길을 청소하는 호랑이 할아버지랑 할머니들은 마음씨가 참 따뜻한 분들이에요. 쓰레기만 청소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까지도 훈훈하게 해 주지요. 그리고 동네 앞 돌무더기 놀이터에서 오후 한때를 보내는 아이들은 시골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기만 하죠.


가끔씩 마천1동 동사무소를 가로질러 거여동 방향으로 골목길을 건널 때도 있죠. 멀리 우회하는 길목보다 직선코스로 가로지르는 길목이기 때문이죠. 그 길목을 지날 때면 마주하는 것들이 있죠. 예쁜 꽃 그릇과 꽃을 담고 있는 화분들, 호박넝쿨과 고추를 키워내고 있는 화분들, 그리고 여러 이름 모를 화초들이 그것이죠.

마천동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죠. 그 동네가 재개발 1호 지역이란 것쯤을요. 기와지붕들도 낡아 있고, 슬레이트로 된 지붕들도 비가 오면 새는지 천막으로 칭칭 감아 놓은 게 눈에 띄죠. 집들도 쪽방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곳이 한 둘이 아니죠. 그렇게 퍽퍽해도 가끔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면 언제나 웃음기 섞인 모습으로 인사를 돌려주죠.

그래서 하나 생각해 본 게 있었죠. 조금 괜찮은 디지털 카메라가 있다면 마천동과 거여동 지역의 골목길들을 사진과 글로 담아 보고픈 것 말이죠. 뉴타운이 되기 전에, 그 속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그들이 가꾼 골목길, 그리고 여러 사람 냄새를 기록해 놓는다면 먼 훗날 또 다른 역사가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최종규님이 찍고 쓴 <골목빛 _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을 보니 저보다 먼저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게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최종규님은 이오덕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말과 우리글을 살리는 데 온 힘을 쏟아붓고 있고, 또 헌책방을 살리는 이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이 땅에 그저 왔다 가는 이가 아니라 뜻 있는 인생을 건져 올리고 있는 이죠.

그는 이 책에서 인천에 있는 여러 골목길에 얽힌 사연과 풍경과 사람살이를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보여주고 있지요. 동네 사람 누구라도 함께 앉아 어울릴 수 있는 꽃 그릇과 긴 걸상이 있는 골목길, 정원 일을 배우지 않았어도 동네 집 안팎을 꽃 잔치로 꾸며놓을 줄 아는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 그리고 지는 꽃들도 얼마든지 아름답다는 걸 알려주는 겨울맞이 골목길도 해맑게 드러내주고 있죠.


"골목동네에는 번듯한 도서관이 있지 않아도 됩니다. 골목동네에서 뿌리박고 이웃동무하며 지내온 사람들 삶이 곧바로 도서관입니다. 골목동네에는 극장이고 전시관이고 문화회관이고 노인화관이고 없어도 됩니다. 골목동네에 저마다 다른 모양과 크기로 마련해 놓은 걸상과 평상이 다름 아닌 극장이요 마당 놀이판이요 쉼터요 이야기자리입니다."(327쪽)

이것이 내 가슴에 가장 와 닿는 글귀였지요. 사실 마천동과 거여동 골목길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역사와 삶을 그려야할지 고민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글귀를 읽는 동안 그건 뭔가 꾸미려드는 일일 뿐 본래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의 마음을 적시고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참된 호흡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죠. 최종규님의 인천 골목길도 그의 태어남과 자람과 이별과 재회 등 실제적인 그의 생환이 깃들어 있는 곳이죠.


특별히 이 책에 나오는 송현동, 금곡동, 답동, 숭의동, 신흥동은 내 기억 속에도 남아 있는 곳들이죠. 2003년 봄부터 1년 넘게 인천 중구청 골목길에서 살며, 여러 동네를 차로 운전하며 지냈던 까닭이죠. 중구청 옆으로 늘어서 있는 중화가 거리, 배다리 헌책방, 그리고 신흥동 철길은 더더욱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골목길이구요.

그때 나는 중구청 옆에 있는 관동교회에서 부목사로 지내고 있었죠. 그 시절 신흥동 철길 옆에 살던 김재선이란 녀석도 떠오르네요. 녀석 아래로는 동생들이 세 명씩이나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탓에 늘 누워 지냈었죠. 녀석이 온 가정의 지주였던 셈이죠. 지금은 어떻게 자랐을지 무척 궁금하기도 해요.

작년 5월 달에 그곳을 다시금 되밟을 기회가 있었죠. 우리 딸아이가 낳고 자란 곳이라, 아이들과 함께 중구청과 월미도를 돌아다녔던 것이죠. 그때 느낀 것은 6년 사이에 많은 게 변했다는 거죠. 그 거리와 건물이 완전히 새롭게 단장돼 있었죠. 그 때문에 예전에 자리 잡고 있던 익숙함과는 전혀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었죠. 그건 비단 그 거리만이 아니라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래서 최종규님도 숭의 야구장과 여러 문화가 서려 있는 인천 골목길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거겠지요. 그걸 축구장으로 바꾸고, 또 여러 집들과 아파트가 들어서면 그만큼 이전의 것들은 다 사라지는 법이니까요. 그 자리에 들어 선 새로운 사람들이 또 낯선 정을 심고 가꾸어야 할 테니 그만큼의 세월을 뭘로 보상해 줄 수 있을까요. 최종규님도 그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게 눈에 선하게 보이네요.

골목빛 :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최종규 지음,
호미, 2010


#최종규 #골목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