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셔터 소리에 놀라 잔뜩 움추린 새끼제비들사진을 찍는 내 모습에 놀란 새끼제비들이 겁먹은 듯 몸을 움츠립니다. 어미 제비는 불쾌한 듯 날아 다닙니다. 나는 얼른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김대호
제비는 신기하게도 부잣집 기와 처마는 마다하고 꼭 초가집 처마 밑에 2~3개씩 집을 짓곤 했습니다. 제비가 집을 짓지 않은 집은 우환이 닥친다는 속설로 인해 부잣집에선 그 당시엔 귀했던 합판 받침대까지 미리 준비해 놓고 제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인색하게도 겨우 1마리만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어른들은 제비가 물 위로 낮게 날기 시작하고 마른 풀을 물어다 집을 보수하기 시작하면 '큰비'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초가지붕에 새끼줄을 다시 동여매고, 소여물을 베어다 놓고, 땔감을 처마 밑으로 쌓아 볏짚 이엉으로 덮고, 염소를 끌어다 마구간에 묶어두고, 우물가에서 물까지 길어다 놓으면 어김없이 남쪽 하늘에서 천둥번개를 시작으로 태풍이 밀고 올라왔습니다. 이렇듯 제비는 복을 전해주는 길조였습니다.
단파 라디오 몇 대와 흑백TV 1대뿐인 산골마을. 이마저도 날씨가 궂으면 쓸모가 없어집니다. 일기예보를 접할 수 없었던 시절에 시골 사람들은 어떻게 비가 올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까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정확한 건 할머니의 신경통. 허리에서부터 뼈 마디 마디가 쑤시기 시작해 손자 녀석 손을 빌리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렸죠. 일개미가 알을 물고 보금자리를 옮기고, 물고기가 사생결단하고 물위로 뛰어 오르거나 입을 내밀고 뻐끔 거리고, 청개구리는 앞산 뒷산 가릴 것 없이 귀청이 떨어지도록 울어대죠.
땅속 동물 지렁이가 땅을 박차고 나와 신작로를 방황하고, 잠자리 떼들이 진초록 논 위를 활공하며 높아진 습도에 숨이 막혀 고개를 내민 벼멸구 진수성찬으로 미리 단백질을 보충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닭이며 소, 돼지 같은 가축들은 갑자기 식성이 좋아지고 마른 풀들을 모아 둥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비가 오려면 귀먹은 옆집 할머니의 귀청이 뚫렸습니다. 평소처럼 소리라도 지르며 '나 귀 안 먹었어'하시지만 날이 개이면 다시 '뭐라고 잘 안 들려'를 연발 하셨죠. 햇볕은 쨍쨍한데 해거름이 되면 빨래가 눅눅해지고 천개산 꼭대기에 오르면 항상 물 아지랑이에 가려졌던 제주도가 희미하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아침저녁 밥 때마다 군불을 지피는 초가집 뒤뜰에선 연기 한 올이 흩어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똑바로 솟아올랐습니다. 또한 달무리, 해무리가 우울한 무지개 옷을 입었습니다.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불쏘시개가 비글거리며 꺼지고 연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아 눈에서 눈물 콧물 꽤나 쏟아졌습니다. 평소 냄새가 나지 않던 소똥 냄새도 진해지고 푸세식 화장실 냄새는 몸에 배어 평소 좋아하던 여학생 근처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비설거지가 끝나고 이윽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눅눅해진 흙집 아궁이마다 군불이 지펴지고 우비를 입고 논에 물길을 잡고 오신 아버지는 노곤한 몸을 눕혀 긴 낮잠을 주무십니다.
어머니는 부추에 풋고추 송송 썰어 넣은 부침개를 만드시거나 잘 삶은 팥을 맷돌에 갈아 6남매에게 양껏 칼국수를 먹이셨죠. 그런데 요즘은 태풍도 잘 오질 않네요. 초가집 구들장에 몸을 누이던 농부들의 짧은 휴가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