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아, 연장하면 탈영할 거야"

[남자들의 대화] '18개월에서 다시 24개월로' 군 복무기간 연장 논란에 부쳐

등록 2010.08.18 09:24수정 2010.08.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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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막 병장이 된 녀석이 휴가를 나왔기에 삼겹살에 소주 걸치려고 친구들이 모였다. 모여든 여섯 명 중에 넷이 군필자요, 하나가 군인이요, 다른 하나가 미필자였다. 삼겹살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술 몇 잔이 오가고 나자 군필자 하나가 낄낄 웃기 시작하더니, "대통령이 군대 24개월로 연장한대"라며 이죽거렸다.

즐거운 웃음은 모든 군필자의 입으로 퍼졌고, 곧이어 대놓고 조롱이 이어졌다. 미필자는 발끈하며 "나도 들었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며 애처로운 방어를 했다. 그 불쌍한 미필자가 바로 나다. 여의치 않은 사정 때문에 친구들 중에서 입대가 가장 늦었다. 오는 10월 입대를 앞두고 있는 나는 요즘, 지옥의 카운트다운 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국방개혁안에 따라 군 복무기간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국방부는 2014년까지 육군 현역병은 24개월에서 18개월로, 해군은 26개월에서 20개월로, 공군은 28개월에서 22개월로 6개월씩 점진적으로 단축할 계획이었고, 실제 단축되고 있었다.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나는 21개월 남짓한 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불안하다.

"군대에서는 하루가 일년처럼 간다"

 대한민국 군대 현실을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대한민국 군대 현실을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이앤디 픽쳐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싱가포르는 모든 국민이 24개월간 군에 의무 복무를 하고 정규군 5만을 유지하고 있다"며 싱가포르의 투철한 안보의식에 충격을 받았음을 밝혔다. 이어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복무기간을 다시 24개월로 환원하는 내용을 확정했고 이상우 의장은 12일 <국방일보> 인터뷰에서 "최소한 24개월은 돼야 한다"며 공식적으로 단축 반대의견을 밝혔다.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16일 "국방부 차원에서 연장 문제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도 복무기간 연장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몹시 긴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이유로 군대를 필해야 하는 서글픈 숙명은 마침내 어떤 자존심이 되어 남자들의 세계를 지배한다.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소주에 새우깡만 놓고도 기꺼이 밤을 새운다.


군대와 관련하면 유독 진지해지고 예민해진다. 해병대니 수색대니 공익이니 '땡보'니 하는 계급론도 생긴다. 이는 아마 한창 꽃피는 청춘을 국가에 저당잡히는 데에 관한 자기위로일 것이다. 이번 복무기간 문제를 두고도 의견은 중구난방이다.

어떤 누리꾼은 "요즘 군대가 군대냐"며 거의 속담처럼 굳어진 악담을 했다. 이는 우리 세대가 아버지 세대에게, 아버지 세대가 할아버지 세대에게 듣는 핀잔이다. 그러니 군대는 누구에게나 아무튼 고단한 곳인 것이다. 언제 어디서 복무했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군인이다. 지금 복무기간 논란은 현역 군인에게도 최대의 이슈다.


흔히 "군대에서는 하루가 일년처럼 간다"는 말이 있다. 복무기간 6개월의 문제는 거의 영원을 따지는 문제다. 최근 상병 말호봉이 되어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친구는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줄줄이 면제자인데 누구더러 군생활 더하라는 이야기냐"며 벌컥 역정을 냈다.

국민에게 안보의 부담 떠넘기는 것 아닌지

 대한민국 군대 현실을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대한민국 군대 현실을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이앤디 픽쳐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면제자이기 때문에 군 문제를 판단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의 안보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반드시 유격 훈련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하겠지만 만일 복무기간 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국가는 국민의 복지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고 군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군인 또한 국민이다. 하지 않아도 될 복무기간 연장은 국민의 복지를 분명히 해치는 일이다.

나는 복무기간 연장이 별다른 고민 없이 국민에게 안보의 부담을 떠넘기는 방안이 아닌지 의심한다. 참여정부 시절 복무기간을 단축한 전제조건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북한의 위협이 감소하고 있는 것, 둘째는 복무기간을 줄여도 다양한 방법으로 병역자원 수급이 가능한 것이다. 복무기간을 다시 24개월로 연장하자는 주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이 같은 전제조건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나온다.

우선 북한과는 이명박 정부가 공격적이고 단절적인 대북정책을 강행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특히 여러 해명되지 않은 의문점을 안고서 천안함 사건의 배후를 북한으로 지목한 것은 결정적인 남북관계 냉각을 불렀다. 아직도 북한은 배후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지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 동안 진전됐던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3년 만에 위태롭다.

다음으로 병역자원 부족은 저출산 사회구조가 심화되는 이상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는 복무기간 연장 같은 단기적 방안으로는 막지 못할 문제다. 장기적으로 직업군인 위주의 군대 개편과 군 현대화, 무기 첨단화를 통한 전력 강화를 고려해보아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에 정부의 노력이 충분했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가 위의 두 가지 문제를 모두 복무기간 연장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반발하는 이들의 억울함도 정당한 것이다. 나처럼 늑장을 부리다 입대해서 막 이등병이 되었다는 친구는 뉴스에서 소식을 접하고 초조해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의 불안을 달랬지만 좀체 안심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에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아,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아. 연장하면 나 탈영할 거야."

웃어넘기긴 했지만 내심 그 친구 걱정이 된다.
#군대 #복무기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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