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가운데 이런 곳이!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일행의 선릉 답사

등록 2010.08.21 12:05수정 2010.08.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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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일행이 선릉 답사에 나섰다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일행이 선릉 답사에 나섰다 ⓒ 오문수


한 여름 날씨로 푹푹찌는 날씨다. 가만히 있어도 등에 땀이 흐르고 높은 습도 때문에 짜증이 난다. 이 때 시원한 얼음물을 마시거나 매미소리 가득한 나무숲에 가서 부채를 부치며 신선이 되면 더없이 좋다. 그런데 서울 한 가운데에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정말일까?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31번지에는 근방 민가의 묘를 이장시키고 공들여 조성한 선릉이 있다. 빌딩숲 사이로 우거진 소나무와 푸른 능선은 바쁜 도심의 사람들에게 여유로움과 평화로운 분위기를 제공해준다.


18일 오후 5시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일행 40여명은 조선의 왕릉을 배우기 위해 선릉에 모였다. 하나둘씩 모여 답사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 비가 쏟아져 더위를 식혀 주었다. 
 
a  정현왕후의 릉

정현왕후의 릉 ⓒ 오문수


a  정자각에서 선릉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정자각에서 선릉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오문수


선릉은 조선 제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이 있는 곳이다. 성종(1457!1494)은 제7대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로 1469년에 예종이 승하하자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세조 때부터 편찬해 오던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반포(1485년)했고, 1492년에는 <대전속록>을 완성하여 통치의 근간이 되는 법제를 완성했다.

세조 때 공신을 중심으로 하는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파를 등용해 훈신과 사림 간의 세력 균형을 통해 왕권을 안정시키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정현왕후는 우의정 영원부원군 윤호의 딸로 1473년에 입궁해 숙의에 봉해졌고, 1479년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해 왕비로 책봉됐다.

a  조선의 왕릉 배치도. 왕릉에 대한 배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조선의 왕릉 배치도. 왕릉에 대한 배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 문화재청


선릉은 왕릉과 왕비릉이 서로 다른 언덕에 있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왼쪽 언덕에 정현왕후의 능이, 오른쪽 언덕에 성종의 능이 배치되어 있다.

왕릉의 봉분에는 12지신상이 새겨진 병풍석을 둘렀고, 봉분 밖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을 세웠다. 능에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세조의 유언에 따라 광릉(세조의 능) 이후 조성된 왕릉에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나 선릉에는 병풍석이 설치되었다.

그밖에 석양(石羊)·석호(石虎)·망주석·장명등·문인석·무인석 등의 석물이 있다. 장명등의 양식은 태종의 능인 헌릉(獻陵)의 것을 본떴으며, 문인석과 무인석의 얼굴은 극히 사실적이지만 몸집이 크고 입체감이 없다. 한편 왕비릉에는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 둘려져 있으며 다양한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왕비릉의 문·무인석은 그 윤곽이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편이다.


a  선릉에 대한 안내를 맡은 장영태 성균관 부관장

선릉에 대한 안내를 맡은 장영태 성균관 부관장 ⓒ 오문수

조선 왕릉의 입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신중한 일이었다. 도성에서 10리 밖, 100리 안이라는 기준을 충족시키면서도 다양한 풍수지리상의 길지로서의 요건을 갖춘 곳이어야 했다.

만약 이렇게 어렵게 찾은 지역이 이미 민가의 묘 자리로 쓰이고 있는 경우에는, 왕릉을 조성하기 위해 이 민가의 묘를 이장시키기도 하였다.


선릉을 조성하기 위해 물색한 지역에도 이미 민가의 묘가 자리 잡고 있어 이를 이장토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조 왕릉은 풍수사상에서 길지라고 하여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갖추어진 곳으로 주산을 뒤로하고 봉분의 좌우로 청룡 백호의 산세를 이루고 앞에는 물이 흐르고 안산이 겹겹이 중첩되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왕릉은 평야도 아니고 산지도 아닌 곳에 조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조선조 왕릉은 거의 명당에 조성되지 못했다. 우리를 안내한 성균관 부관장 장은태씨는 "옛날부터 덕을 많이 쌓아야 명당을 얻는다고 하는데 결과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하고 아리송한 말로 맺었다.

선릉 인근에 산다는 한 분은 "70평생 강남에 살았는데 우리 동네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데도 몰랐다. 이제 자주 오겠다"고 말했다

선릉은 도심 속에서 더위와 공해를 줄여주고 시민들에게 청량감을 주는 옹달샘 같은 존재다. 정현왕후릉을 답사하고 성종릉을 찾는 동안 걷는 울창한 숲속 길은 "여기가 과연 서울 한복판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문화재는 자주 찾고 쓰다듬어야 빛이 난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선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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