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29일 오전 '총리 후보 사퇴'를 발표하기 위해 그동안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던 서울 광화문 한 오피스텔 현관에 도착한 뒤 대기중인 취재진앞에서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권우성
[3신 대체 : 29일 오전 11시]
김태호 "억울하지만 총리직 사퇴하겠다"... 청와대 "안타깝지만 존중하겠다"김태호 후보자가 29일 국무총리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 이상 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오늘 총리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저의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 동안 저의 부족함이 너무나 많음을 진심으로 깨우쳤다"면서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억울한 면도 있지만,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후보자는 "진솔하게 말씀드리려 했던 것이 잘못된 기억으로, 정말 잘못된 기억으로 말실수가 되고, 더 큰 오해를 가져오게 된 것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저에게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인사청문회 기간 동안 박연차 게이트 의혹과 관련 김 후보자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만난 시기를 몇 차례에 걸쳐 번복해 위증 논란에 휩싸였던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인다.
특히 김 후보자는 청문회 마지막 진술에서 박 전 회장과 만난 시기를 2006년 가을이라고 했지만, 지난 27일 <오마이뉴스>는 그가 이미 2006년 2월경 한 행사장에서 만났다는 기사를 보도해 또 다시 위증 논란이 불거졌다.
김 후보자는 이날 사퇴 기자회견에서 "저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미덕은 신뢰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신뢰가 없으면 제가 총리직에 임명이 된다고 해도 무슨 일을 앞으로 할 수 있겠느냐"고 자조했다.
그는 이어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민들의 채찍을 제 스스로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라는 확실한 신념으로 백의종군해서 최선을 다해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무엇보다 혹독하게 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삼아가겠다"며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서울 광화문 '경의궁의 아침' 1층 로비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총리직 자진 사퇴 입장문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향후 거취는?", "청와대와 상의했나?", "사퇴 결심은 언제 했느냐" 등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채 답하지 않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앞서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김 후보자의 사퇴 결정 배경과 관련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안 좋은 분위기가 팽배했다"며 "이런 식이라면 9월 1일 (국회에서) 총리 인준안 처리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청와대는 김태호 후보자의 총리직 자진 사퇴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 후보자의 자진 사퇴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태호 후보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측에 따르면, 김 후보자가 청와대에 자진 사퇴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이날 새벽이었다. 김 후보자가 전화로 임태희 대통령 실장에게 사퇴 의사를 전달했고,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김 후보자의 의사를 존중해 사의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김태호 불가론'이 제기되자, 청와대에서도 일찌감치 김 후보자의 사퇴쪽으로 방향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김 후보자보다 더 큰 의혹이 제기됐던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거취다.
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함에 따라 문제가 심각한 다른 장관 후보자들 중에서도 낙마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청와대로서는 여론의 추이와 당 안팎의 의견 등을 지켜보면서 후속 조치를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김태호 후보자가 후보직을 사퇴함에 따라 향후 총리 공백이 장기화가 될 것은 불가피해보인다. 새로운 총리가 공식 임명될 때까지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총리직을 대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곧바로 총리 후보자 인선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