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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마다 열리는 안성 장날(8월24일), 드디어 그들이 떴다. 오늘은 방실이 혼자가 아니라 파트너도 함께 왔다. 파트너 이름은 '전국구'. 엿장수 업계의 '킹왕짱' 가수다. 오늘은 제대로 잔치판이다.
팬 몰고 다니며 시장 사람들과 웃고 울고
"우리 어머님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여. 긍게 우리 노래 한가락 들으면 스트레스가 팍팍 날아가. 그츄?"
단순히 엿만 파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뽕짝'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면 상인들도 행인들도 쳐다보며 추억에 젖는다. 흥이 오르면 같이 춤도 춘다. 할머니보다 같이 온 손자 녀석이 더 신기해서 쳐다본다.
입담이 구수하다. 전라도 사투리와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엿장수용 전국구 사투리다. 엿장수 '전국구'가 노래 부르면, 엿장수 '방실이'가 박자 맞춰 엿가위 질이다. 그 옛날 약장수 서커스단이 잠시 와 있는 듯하다.
"언니, 커피 한 잔 주면 안 되까잉"이라고 엿장수 '방실이'가 말하니 상인 아주머니가 "그려유"라며 커피를 정성껏 타서 가져온다.
좀 있으니 한 여성분이 짧은 원피스를 가져온다. "이거 팔던 건데, 엿장수들 의상 하면 좋겠다 싶어서"라며 건네준다. "고마워유. 지가 이래 뵈도 여러 장터에서 의상 협찬 받은 몸 이유"라며 '방실이'가 너스레를 떤다. 그걸 증명 하듯 또 다른 곳으로 옮기니 여성용 팬티랑 브래지어를 누가 또 선물한다.
"옛날 '각설이 엿장수'는 잊어라"
옛 시골 장터에서 '작년에 왔던 각설이~~'를 부르던 품바 엿장수는 잊어라. 이들은 진화했다.
옷부터 섹시한 비키니다. 여성도 아닌데 가슴도 제법 만들었다. 음향시스템도 장난이 아니다. 빵빵한 음향시스템이 장터를 뒤흔든다. 움직이는 노래방이다. 첨단 노래반주기도 있다. 컴퓨터에 입력하면 반주가 절로 나온다.
알고 보니 음반 낸 가수다. 자신들이 부른 노래가 담긴 CD와 테이프도 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듣고 노래 테이프와 CD를 사간다.
"10년 넘게 리어카 끌고 다니다가 허리가 고장 났당게. 힘 못써서 전동 수레로 바꿔부럿어. 아따 자그마치 300만 원 들었당게로."
그들이 꾸리는 홈페이지도 있다. http://cafe.daum.net/shfogksmsrkrtjfdl, 이름 하여 다음 카페 '각설이 전국구'. 이 정도면 요즘 시대에 맞춰 진화한 엿장수가 틀림없다.
그들이 건네 준 명함에는 '엿가위 쇼, 북장구 쇼, 불 쇼, 부채 쇼, 이벤트 행사, 칠순잔치, 아파트 바자회, 음향대여, 체육대회 개업행사' 등이라고 적혀있다. 한마디로 움직이는 만능 엔터테인먼트다.
조금 있으니 일단의 여고생들이 교복을 입고 그들에게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엿장수 방실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 한다. 그는 "허참, 이놈의 인기는. 내가 이런 사람이유. 내 팬이 이러코롬 많당게로"라며 여고생들과 함께 사진 찍는 팬서비스까지 발휘한다.
엿 팔며 도 닦는 엿장수
그들이 속없이 실실 웃는 거 같아도 순간순간 긴장의 연속이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곳 상황 파악하느라 머리와 눈이 팽팽 돌아간다. 단 몇 초 만에 현장상황도 파악해야 하고, 어떤 곡을 부를지, 여기서는 좀 떠들어도 되는지, 시비 걸 만한 사람은 없는지 등등.
"시끄러워서 안 된다면 내 안 허께. 여그 아녀도 장사할 때 없깐. 저짝으로 가서 하믄 되제. 넘 한테 피해 줌서 엿장수 하긴 싫은 께로. 허허허허허"
이렇게 마이크로 너스레를 떤다. 대부분이 좋아하지만, 몇몇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대처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삶의 도를 익히 터득한 셈이다. 손수레 끌고 다니며 그들은 도를 닦아서인지 사람 대하는 도사들이 다됐다.
채소를 팔던 할머니에게 "엄마, 그거 모두 얼마유"라며 '채소떨이'를 해준다. 그러고는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인사도 잊지 않는다. "고마워유, 엄마. 다 팔아 줬응께 집에 가서 편히 쉬시쇼."
한 자리를 뜨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직전 항상 덕담도 잊지 않는다.
"여기 계신 상인 여러분들, 장사 잘 되시고 대박 나시고 건강하셔유. 엿장수는 이제 갑니다."
그렇게 말하는 엿장수 이마엔 땀이 송송 맺혀 있다. 하루 종일 서서 노래 부르고, 엿가위 질 하고, 외쳐대고, 또 옮겨 다니고. 몸이 피곤해서 목소리가 쉴 텐데도 곧잘 노래가 나오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깝다. 노래 좀 한다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피곤하면 목이 쉬어 노래가 잘 안 나온다는 걸. 시간이 지나도 노래 소리가 더 구성진 것은 참으로 탁월한 솜씨다.
오늘도 어느 시골 장터에서 그들은 "나으~ 팬들이 겁나게 많아 부러요이"라며 너스레를 떨고 있을 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본 기자가 지난 8월 24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엿장수와 함께 동행하면서 만난 일들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2010.09.02 11:39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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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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