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 오하니의 상상은 시청자의 손발을 오글거리게 만들었다.
MBC 화면캡쳐
그러나 <장난스런 키스>의 1회는 이 모범답안과는 너무 달랐다. 편집은 엉망이었고, 따라서 화면 구성과 교차는 제때 이뤄지지 않고 늘어졌다. 당연히 스피디한 전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맥락 없는 장면들의 교차로 상황 설명도 매끄럽지 못했고, 캐릭터 전달도 실패했다. 드라마의 1회가 끝나고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건, 엔딩 장면의 테디 베어를 통해 이 드라마의 연출자가 황인뢰 PD라는(황인뢰 PD는 <궁> 엔딩 장면에도 테디 베어를 사용했다), 그것 하나뿐이었다.
오프닝 장면이 오하니(정소민 분)의 상상신이었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드라마의 곳곳에는 이런 만화적 상상력이 스며있다. 그러나 상상은 현실을 뒷받침해주고 부연 설명하는 그림자의 자리에 머무르며 조화를 이뤄야지, 상상이 현실세계와 대등해서는 안 된다. <인셉션>을 찍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장난스런 키스>는 이 균형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맥락 없는 상상신이 드라마가 시작하고 채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3번이나 삽입된 바람에 극의 흐름은 자꾸 끊겼고, 시청자들은 한참이 지나고도 극에 몰입하지 못했다. 더구나 만화적 상상력이란 때론 지나치게 유치찬란한지라, 일부 시청자들은 "손발이 오글거려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시청자가 손발이 오글거려 극에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시청자가 드라마에 대해 '만화 같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과 '만화 같이 유치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만화 같은 세계의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만화 같은 세계의 주인공을 타자의 시선으로 그저 바라보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장난스런 키스>같이 10~20대 여성 시청자를 주 타깃층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이런 현상은 치명적이다. 그녀들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여자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시켜 꽃같이 아름다운 남자 주인공과의 달콤한 로맨스를 대리만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 오하니의 손발이 오글거리는 상상에 시청자들은 그만 그녀에게 자신을 대입시키기 포기하고 말았다.
더구나 <장난스런 키스>는 동시간대에 강력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달달하고 애절하기까지 한 청춘남녀의 사랑을 그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홍자매가 신민아와 이승기 조합으로 10% 초반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구축해놓은 상황. 시청자를 빼앗아 와도 모자를 판에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으니 이 승부, 끝까지 보지 않아도 결과를 아는 데는 크게 지장 없을 듯하다.
제작진이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