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앞 바다신종플루가 걸리자마자 향했던 그곳
이희동
어차피 갈 곳이 모텔 밖에 없다면, 굳이 내가 서울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난 차를 몰고 무작정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늘이 내게 주신 휴가였다. 비록 신종플루에 걸렸지만, 정황상 신종플루 때문에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고 덕분에 난 결혼 이후 한 번도 떠나지 못한 혼자만의 여행길을 나설 수 있었다. 그것도 아내의 산후조리로 가장 힘든 시기에. 상황이 이러하니 아내가 한 마디 거든다. 이렇게 운이 좋은 사내가 어디 있느냐며,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분명하다나.
어쨌든 난 그렇게 동해로 여행을 떠났고 1주일 동안 산후조리에서 해방되었다. 아내와 아이에게는 무척이나 미안했지만, 그래도 기꺼운 마음이 우선이었다. 미필적 고의라고 해야 할까.
사실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아내 앞에서는 비록 티를 낼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출산은 남편에게도 스트레스였다. 당장 아이 때문에 나의 삶에 제약이 많아진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지독한 가부장사회에서 식구가 하나 늘었다는 건 분명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