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프원의 창문 유리위를 걷고 있는 달팽이
이안수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 정원까지 밀려온 안개가 자작나무 가지너머의 세상을 모두 가렸습니다. 세상은 더욱 단순해지고 고요함만이 가득했습니다.
창문에 달팽이 한 마리가 유리를 타고 오르고 있었습니다. 마치 식물의 새순이 돋는 속도처럼 느리게…….
저는 그 달팽이의 굼뜬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느린 것이 좋은 이유를 열손가락으로 꼽아보았습니다.
달팽이가 제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열손가락이 모자랄 이유들이 생겨났습니다.
지금 내 곁에 없는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하늘을 올려다볼 짬을 허락한다.절박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질박하게 마음이 끌린다.긴 편지를 쓸 수 있게 한다.오감을 깨어 있게 한다.서가로 시선을 이끈다.생각을 잘 소화되게 한다.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한다.내 목소리의 크기보다 타인의 소리와 섞인 하모니를 소중하게 여기게 한다.중심이 아닌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허락한다. 출구가 하나이던 것이 주변이 온통 출구임을 알게 한다.내일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게 한다.증오의 기억을 시나브로 잊게 한다.절망이었던 것을 희망이 되게 한다.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일이 더 큰 기쁨임을 알게 한다.그리고 마침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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