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집값...'전세'가 정말 최선일까

차관경제의 부작용이 낳은 부동산 전세제도

등록 2010.09.20 08:46수정 2010.09.2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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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30일 제주시의 한 견본주택에서 청약예정자가 임대아파트 모형도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1월 30일 제주시의 한 견본주택에서 청약예정자가 임대아파트 모형도를 살펴보고 있다.선대식

이제 다시 이사철이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지속적으로 내려간다고 하는데, 아파트 전세를 비롯한 전세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여 서민들의 주름을 늘게 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듯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그 상승세가 급격히 꺾여 올해 3월부터는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현재 6개월째 아파트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전세가격은 올해 들어 상승세가 줄어들고 있으나 꾸준히 전주대비 0.1%씩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 여름이 지나고 본격적인 이사철에 접어들면서 상승세가 가팔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아파트 매매가격이 내려가는데도 전세가 오르는 이유는 새롭게 집을 사려고 하던 사람들이 최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집값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가장 크다. 이와 더불어 지금까지 서울 지역에 이른바 '뉴타운'이라 불리는 신규아파트 입주가 계속되다가 최근 입주가 줄어들어 전반적으로 전세로 나온 집이 별로 없어서 가격이 오른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왜 한국에는 부동산 매매와 전세라는, 두 가지 거래방식이 존재하는 가 하는 점이다. 물론 부동산 매매와 더불어 임대차 계약은 전세계에 보편적인 거래방식일 수 있지만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월세 형식의 임대차 계약이 정착되어 있다. 목돈을 주고 2년간 아파트를 빌려 사는 전세형식은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 유일의 임대차 계약 '전세'

 사진은 서울 자양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모습.
사진은 서울 자양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모습.유성호

아파트 전세제도는 형편이 부유하지 못한 중산층들이 결혼해서 신혼집을 꾸리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한 달 월급으로 한 달 생활이 빠듯한 집을 갖지 못한 상당수 서민들이 월세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선호하는 거주방법이기도 하다. 벌어오는 돈을 1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겨우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전세제도는 가난한 서민들이 주거를 정할 수 있는 서민의 편의를 위한 제도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한국의 전세제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부동산 전세는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월세 제도에 비해 집주인에게 돌아가는 직접적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보편적 기준으로는 전세금 1000만원이 월세 10만원으로 통용된다. 즉 전세가격이 1억원인 아파트는 월세가격으로 100만원에 거래된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전세계약을 체결해서 집을 빌려주고 전세금을 받을 때, 그 전세대금을 은행에 맡겨놓고 월세와 같은 수준의 이자를 받아내려면 이율이 얼마가 되어야 할까? 1억원을 은행에 맡겨 매달 100만원을 받으려면 1년에 1200만원을 받아야 한다. 단순이자계산으로 1년에 12%의 이율이 보장되어야 월세수준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은행예금이자는 기껏해야 4~5% 수준이다.

게다가 월세제도는 소액의 월세보증금을 제외한다면 계약만료시에 전세대금을 돌려주어야 할 부담도 없게 된다. 그러니 최근에는 무려 12%의 이율에 맞먹는 월세거래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동산 전세제도가 왜 한국에서만 존재하는지 살펴보자.

부동산 투기가 낳은 '전세'

전세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를 해석할 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집을 대하는 개념이 외국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외국인은 집을 그저 거쳐가는 공간으로 인식하지만 우리국민들은 삶의 터전으로 중시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1억원이 넘는 목돈을 집주인에게 턱하니 맡긴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한국 부동산 거래에서 전세와 월세를 결정하는 측은 돈을 주는 세입자가 아니라 돈을 받는 집주인이다. 세입자의 성향으로 전세를 설명하는 것은 부동산 임대차 거래 성격에 맞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전세계약은 상호 대등한 계약이라기보다는 갑과 을의 계약으로써 집주인이 계약조건을 결정하면 세입자는 그 조건을 따라야 하는 성격이 강하다. 결국 전세제도가 온존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에도 세입자의 성향이 아니라 집주인의 성향을 분석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집주인에게 직접적 이자수익을 가져다주지도 못할 것 같은 전세제도가 유독 한국에서만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집주인들이 금전적 이익에 밝지 못해 월세가 아닌 전세에 발이 묶여 있다고 본다면 큰 오산이다.

일례로 형편이 넉넉하면서도 종로 쪽방촌을 공동명의로 구매하면서까지 부동산 시세차익을 노리다가 장관임명에 낙마한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를 보면 부동산 투기세력들은 돈 냄새맡는데는 탐지견도 멀찌감치 따돌릴 만큼 하나같이 귀재들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한국에서는 전세제도가 지금껏 월세보다 집주인들에게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은행의 예금이자가 연 12%가 될 수 없는 조건에서 한국 집주인 가운데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시켜놓고 이자를 받아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에게는 은행예금수익을 뛰어넘고도 남을 투자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부동산 투기로 대변되는 각종 투기 시장이다. 이 가운데 한국의 부동산 투기는 월세 부럽지 않은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유력투자종목이라고 볼 수 있다.

집주인 부 늘려주는 전세, 서민들은 기회 상실

사실 지난 50년간, 한국사회의 부동산 가격은, 특히나 서울을 중심으로 기록적으로 상승하였다. 손낙구씨의 <부동산 계급사회>에 의하면 서울의 땅값은 1963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1176배가 올랐는데 이는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가 43배, 도시근로자 실질소득은 15배 증가한 것에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급격한 증가세라고 할 수 있다. 43년 동안 1176배가 오르려면 적어도 그 상승율이 매년 12.3%가 넘도록 꾸준히 유지되어야 가능한 비율이다. 물가가 연평균 12%가 올랐다면 민란이 일어났을 것인데, 부동산은 사실 그렇게 올랐다.

게다가 한국 부동산 시장은 매년 12.3%의 꾸준한 상승세를 보인 것도 아니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전형적인 투기구조로써, 자본유동성이 풍부하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상승하는 계단식 상승을 반복해왔다.

부동산 가격이 1차로 폭등하던 1965년에서 1969년 사이, 도시지역의 땅값은 1년에 평균 50%가 올랐으며 80년대 후반 부동산 폭등기의 3년 동안에는 전국의 땅값이 연평균 26.7%가 수직상승하였다고 한다. 부동산 거품이 이야기되는 2001년 이후에는 아파트 가격이 연평균 22.8%씩 수직상승하였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부동산 투기광풍이 몰아치는 상황이 되면 집주인들에게 최소 20%이상의 투자수익을 꾸준히 올려주었다. 그러니 집주인들은 푼돈으로 매달 월세를 받는 대신 목돈으로 전세대금을 받아놓고 투기광풍이 불 때마다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어 막대한 수익을 챙긴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전세제도가 한국에만 온존하는 이유는 결국 한국 부동산 시장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투자수익율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전세 소유주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전세제도는 서민의 편이 전혀 아니란 점을 알 수 있다. 1억원짜리 전세계약을 체결하면 집주인은 1억원이라는 목돈을 종자돈으로 삼아 추가적인 부동산 투기에 나설 수 있는 반면, 세입자는 힘들게 모은 1억원을 고스란히 집주인에게 빌려주어 투기수익을 얻을 기회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투자수익이 20%라고 가정할 때 집주인은 전세를 통해 얼마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제약이 미약하던 20년 전, 한 중소기업사장이 회사를 처분하고 자기재산 100억원을 모조리 부동산 투기에 쏟아넣는다고 치자. 당시 한 채에 1억원하는 아파트를 100채를 살 수 있다.

집주인은 100채에 대해 전세계약을 체결하게 될 텐데 이때 받는 전세금을 매매가격의 30%라 하면 총합 30억원의 전세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30억원으로 다시 아파트 30채를 추가 구입할 수 있고 여기서 받는 전세금이 또 다시 9억원이 된다. 이걸로 아파트 9채를 사면 다시 3채의 아파트를 추가 구입할 수 있어 최종 142채의 아파트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142억원 어치의 부동산의 투자수익이 연간 20%이므로 이 중소기업사장은 매년 28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사실상 투자수익이 28%까지 치솟는 것이다.

전세계약이 종료되는 2년 후, 1억원을 전세로 맡긴 세입자는 2년이 지나면 전세대금 1억원을 돌려받게 되지만 집주인은 2년 사이 100억원을 198억원으로 재산을 두 배로 뻥튀기할 수 있게 된다.

이러니 제아무리 1년에 수십 만채의 아파트를 새로 짓는다고 하여도 전세세입자가 어떻게 집을 살 수 있겠는가.

최근 부동산 시장에 전세거래가 줄어들고 점차로 월세 거래가 늘고 있는 것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투기수익이 발생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월세가 아무리 늘었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 부동산 시장은 전세거래가 우위에 있다.

9월 7일 국민은행이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전체 주택 전, 월세 계약에서 8월 월세 비율은 전체 전월세 비중의 42.3%로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전세물량이 없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전세제도는 전체 부동산 임대차 계약의 57.7%를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상승한 까닭

그렇다면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한국의 부동산 시장만이 급격하게 상승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든 제품의 가격이 급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 있어야 하며 둘째로는 그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많아야 한다.

지난 50년간 한국 부동산 시장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춰왔다.

첫째, 한국은 자국경제 기반에 기초해 경제를 발전시킨 구조가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외국이 빌려준 차관에 의존해 경제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열악한 국가경제규모에 비해 늘 시장자본이 풍부해서 투기성향이 높은 상황이었다.

해외차관이 들어오지 않던 50년대에는 부동산 증가세가 보이지 않다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이 무상원조 방식을 차관으로 전환하면서 막대한 차관이 쏟아져 들어오자 1965년부터 1969년, 1975년부터 197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양상이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렇다면 가격상승의 두 번째 요인인 급격한 주택수요는 어디서 왔는가? 이 역시 60~70년대의 개발열풍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임금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저곡가정책이 원인이다. 쌀값이 폭락하자 더 이상 농업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국민들이 도시로 이주해 온 이농현상이 급증하였는데 이렇게 서울로 유입되는 국민들이 주택수요의 원천이었다.

서울의 인구는 1963년, 325만명에 불과하던 것이 1970년에 500만명을 뛰어넘었으며 1988년에는 1000만명을 뛰어넘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인구는 약 2200만 수준으로 한국 전체인구의 45%를 차지할 정도이다. 전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바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가 전체인구의 절반이 한 도시권역에 모여 바글거리는 국가도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 같은 인구과밀을 낳은 근본원인으로 미국차관에 기초한 70년대 노동집약산업을 지적할 수 있다. 당시 차관을 제공해주던 미국은 한국이 미국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노동집약적 산업을 맡아주기를 원했으며 그 부문 차관제공에 적극적이었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쟁력은 단연 저임금 노동자이다. 최근에도 입증되듯, 노동자 처우는 광범위한 실업대군이 형성될수록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대외의존 경제개발 방식이 낳은 '전세'

60년대, 최초의 수도권 상경은 이른바 '무작정 상경'이라 일컫는, 일단 상경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형식이었다. 서울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에 이른바 '무허가 판자촌'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빈 공터에다가 정부허가도 없이 판자로 대충 비만 가릴 수 있게 지어놓고 수도와 화장실은 마을공동으로 해결하는 데에서 유래된 무허가 판자촌은 이후 '달동네'로 불리며 당시 서민층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지금의 서울 남산일대와 미아리 고개 너머, 서대문 방향의 아현동, 한강 이남의 흑석동 등은 모두 과거 무허가판자촌 밀집지역이었다.

이들 판자촌 주거민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단연 무허가 신세를 벗고 자그마한 단칸방이라도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주택매매의 진입장벽은 너무 높았고 그 결과 집주인과 세입자가 타협을 보게 된 것이 일정한 목돈을 주고 집을 빌리는 전세형태의 거래가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이다. 집주인들은 당시 폭발적으로 오르던 부동산 투기에 심취해 집을 전세놓고 그 전세금을 모아 새로운 집을 또 사는 방식으로 폭리를 취하였다. 이른바 '부동산 불패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전세제도를 집없는 불쌍한 이들과 집을 나누는 제도라고 칭송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미국차관의 틈바구니에서 기생하여 뿌리내린, 서민들이 피땀흘려 모은 돈의 기회비용과 투기수익을 등쳐먹는 것과 같은 사실상의 착취제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미국차관에 기초한 대외의존형태의 경제개발 방식이 빚은 심각한 부작용이다. 전근대적인 전세제도가 유독 한국사회에만 남아있는 것도 한국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모순되어 있는가를 생생히 보여주는 실례이다.

덧붙이는 글 | 곽동기 기자는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곽동기 기자는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부동산 #전세 #아파트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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