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떡볶이 포장마차. 주인장 이처례(59)씨가 손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정민
"전쟁이 끝나고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 우리 가족은 여기 부개동에서 남편과 시아주버니랑 농사지으며 살았어요. 이후 이 근처에는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어요. 돌가루를 빻아서 접시를 만드는 공장, 철길 너머엔 양말공장, 그리고 지금 아파트가 서있는 곳엔 타일공장과 가구공장 등이 즐비했어요. 그나마 이곳에 공장지대가 있어 주민들의 생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돼 주었죠." 부개동 동수로 128번지길. 동네 풍경을 담으러 한 바퀴 돌다가 예전에 한번 들렀던 떡볶이 포장마차를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마을에 온지 38년이 됐다는 주인장 이처례(59)씨는 시집와서 아들 둘을 키우며 고생했던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한번은 양말공장에 불이 크게 나서 근처가 쑥대밭이 된 적도 있었고, 타일공장에 다니던 노동자가 기계를 잘못 만지는 바람에 목숨까지 잃고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결국 문을 닫기도 했어요. 빌라 촌 맞은 편 철길로는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화물열차가 종일 오가며 경적소리와 검은 연기로 마을을 뒤덮곤 했고요. 지금이야 시대가 좋아져 생활이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논과 밭이 전부였고, 소·돼지 키우며 근근이 연명하던 시절이었답니다(한숨)."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덮쳤다. 학교를 마치고 떡볶이와 슬러시(=오렌지색 음료)를 나눠먹던 아이들도, 유치원을 마치고 할머니에게 떼를 쓰며 울던 아이도, 잠깐 마실을 나와 이웃주민들과 막걸리를 나누던 아주머니들도 비를 피해 집으로 향했다. '이제 취재가 시작인데,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잠시, 아니 오래도록 내린 소낙비를 피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반가운 햇살이 보이자마자 다시 골목길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