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밀려 고향 못 가는 사람 널렸다"

고질적인 체불 임금에 명절을 뺏긴 건설노동자들... "친서민 정책은 어디 갔나"

등록 2010.09.22 13:49수정 2010.09.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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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건설현장에서는 임금 체불과 임금 유보로 건설노동자의 신음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사진은 인천의 한 공사현장.
전국 건설현장에서는 임금 체불과 임금 유보로 건설노동자의 신음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사진은 인천의 한 공사현장.선대식

"기자 양반, 힘 좀 써주쇼. 명절 전에는 해결돼야 할 것 아니요."

20일 오전 목수 신현수(가명·61)씨가 허탈하게 웃으며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 신씨는 지난 7~8월 경기 여주시 능서면의 한 연립주택 공사현장에서 일했지만, 아직 임금 284만 원을 받지 못했다. 그가 데리고 있던 목수 10명의 임금까지 포함한 전체 체불임금은 2200만 원에 달한다.

그는 지난 8월 고용노동부에 시공사를 고발해서 밀린 임금을 이날(20일) 받기로 했지만, 시공사 대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8월 이후 다른 공사 현장에서 열흘 일했지만, 건설업계의 악질적인 '스메끼리(임금 유보, 건설현장에서 발주처-원청-하청기업 간에 이뤄지는 1개월 단위의 공사 확인과 서류 검토 기간 탓에 공사대금 중 임금이 지연 지급되는 임금 유보는 결국 장기간의 임금 체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관행 때문에 아직 임금을 받지 못했다. 추석을 앞둔 그의 주머니가 텅 비어 있는 이유다.

신씨는 "임금을 주지 않은 사람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선물 살 돈도, 차비도 없다"며 "추석 때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주변에 임금이 밀려 고향 못 내려가는 사람이 널렸다"며 "정부는 여기에 말 한마디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람한테 임금 체불이라니, 그것도 추석인데..."

추석을 앞둔 전국 건설현장에서는 이러한 임금 체불로 인한 건설노동자의 신음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임차진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도건설지부 사무국장은 "예년에는 일주일에 한 건 정도 임금 체불 상담 문의가 들어오는데, 이번 추석을 앞두고 매일같이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목수 김현태(가명·46)씨도 임금 체불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 3월부터 4개월간 경기 이천시 사음동의 한 유치원 건립공사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시공사는 돈을 주지 않았다. 밀린 임금은 200여만 원. 40여 명의 건설노동자가 받지 못한 임금만 8500만 원이다.


김씨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인데, 임금이 몇 개월 밀리면 생활에 지장이 크다"며 "추석 명절 때 고향으로 가지고 갈 선물 하나 사기가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불법 인력사무소가 임금을 가로채는 것도 큰 문제다. 한 철근 노동자는 "로타리로 불리는 철근업종 인력시장에서 소개업자들이 시공사로부터 일당을 챙겨 철근노동자에게 월급 형식으로 준다"며 "그런데 소개비는 꼬박꼬박 챙기면서, 시공사에서 돈을 안 줬다며 노동자에게 돈을 내주지 않는 소개업자들이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임금 유보도 큰 문제다. 건설노조가 지난 7월 20일 전국에 유보 임금 신고센터를 개설해 파악한 전국 104개 건설사업장의 유보임금 실태에 따르면, 평균 임금 유보 기간은 32일에 달했다.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어디 갔나?"

임금 체불·유보 탓에 200만 명에 달하는 건설노동자가 큰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건설현장의 임금 유보와 임금 체불을 뿌리 뽑겠다"며 10월말까지 전국 260여 개 건설현장에 근로감독관을 집중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건설노동자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앞서 만난 신현수씨는 "고용노동부에 임금 체불로 시공사를 고발했지만, 감독관은 '소송으로 가면 오래 걸리니 합의를 하라'거나 '연락이 안 돼 방법이 없다'는 말만 한다"며 "고용노동부가 힘을 써준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매년 건설업계의 임금 체불과 임금 유보를 발본색원하겠다고 했지만, 체불 임금은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2007년 2만2366명의 임금 949억 원이 체불됐지만 2009년에는 3만4959명의 임금 1555억 원이 체불됐다. 올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임차진 사무국장은 "올해 경제가 어렵다보니, 시공사들이 저가에 공사를 수주해서 임금 체불이 많아지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하는데, 진짜 서민인 건설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임금체불 #임금유보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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