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한낮인데도 차들로 붐비고, 마구 울려대는 경적들 틈을 비집고 이리저리 돌아들어간 차가 어느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게스트하우스 앞에 내려놓는다. 마침 주변에서는 땅을 파는 공사가 벌어져 어수선한데다가 허름한 여관급도 되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의 모습에 한숨이 먼저 나온다. 로비랍시고 메뚜기 이마만하게 만들어 놓은 입구에는 서양 여행자가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되살리며 우선 배정된 방에 짐을 푼다. 미리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다른 여행자와 함께 방을 쓰게 되어 있었다. 도미토리인 셈이었다. 16달라를 얹어 주고 지하의 방 하나를 따로 얻었다. 가파른 층계를 타고 내려가는 지하 방은 음습하고 통풍이 되지 않아 카타콤을 연상시켰다. 계단 하나로 드나드는 지하실은 불이라도 난다면 고스란히 횡액을 당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구조였다. 골방 끝에는 그나마 샤워실과 화장실, 세탁실이 붙어 있었다.
짐을 풀고 나서 여행사 사장과 여행 일정과 비용을 상담했다. 열 명이 오기로 했는데 아홉 명이 오게 되어 여행 경비가 일인당 하루에 5달라씩 인상되었다. 대체로 훕스굴 여행의 경우, 러시아제 승합차 프루공을 이용하여 한 차에 다섯 명까지 낯선 이들과 뒤섞여 여행을 다닐 각오를 한다면 비용은 뚝 떨어진다. 한 차에 세 명씩, 모두 세 대의 차를 독점하고 다른 여행자들을 섞지 않는 조건에 차마다 한국어가 가능한 안내인을 한 명씩 배치하다 보니 여행비용이 곱으로 튀어 올라간 것이다.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은? 누구도 말리거나, 도와주지 않는 선택의 자유 아니겠는가? 생판 모르는 이들과 섞여 간 보며 이 맞추며 가던가, 아니면 속까지 훤히 아는 이들끼리 등 기대고 가다가 "니가 이럴 줄 몰랐어"라며 전혀 낯선 이가 되어 돌아오던가.
일단 아는 이들끼리 노리끼리한 겔의 전등 아래 모여 단란하게 보드카를 비우는 재미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시로 머리가 차 천정에 부딪치며, 김치 국물에 계란말이 도시락 섞듯 마구 흔들어대는 프루공 대신에 얌전한 델리카 두 대에, 물에 빠진 차 건져내는 구난용으로다가 힘 좋지만 그만큼 기름 많이 먹는 사륜구동 일제 지프형 차 한 대를 끼어 넣으니, 비용이 올라가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래도 전에 비하자면 저렴한 편이다.
몽골 여행의 총아로 각광을 받는 프루공은 러시아인의 기질을 닮아 지극히 단순하여 고장이 나도 고치기 쉽다고 한다. 물이든 산이든 가리지 않고 잘 달리는 프루공이야 말로 몽골 오지 여행에 적격이라지만, 결정적으로 승차감이 좋지 않은 데다가 역방향의 좌석 배치가 문제였다. 차 안에서 구경하는 게 절반인 몽골 여행에 거꾸로 앉아 여행자의 먼지 덮인 얼굴만 들여다보자면 멀미가 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차에 대해서 잔소리 같은 주문을 덧댄다. 지난 해, 얌전한 고비 길에도 자그마치 다섯 번이나 펑크가 나고, 달리던 차의 앞바퀴가 빠져 달아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몽골 여행에서 가벼운 자동차 고장은 '즐거운 비명'이다. 모처럼 호젓이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되다 보니, 나중에는 자동차가 고장 나기를 기다리게 되고, 너무 이르게 바퀴를 갈아 끼운 자동차를 피해 앞서 달아나지 않았던가.
낡지 않은 새 차를 요구하는 내게 게스트 하우스 사장은 "새 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 많은 운전사"라는 점을 설득했다. 항가이 산맥을 넘는 길은 매우 험하며, 무엇보다 그 쪽 길을 잘 아는 운전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경험 많은 운전사에 낡지 않은 새 차'를 요구할 만큼 나는 뻔뻔스럽지 못했다.
처음에 열 명으로 예상하고 받았던 여행 견적이 아홉으로 줄면서 다시 책정하게 되었다. 계산기를 이리저리 두들기던 사장이 제시한 금액은 내가 우려했던 것만큼은 높지 않았다. 비용을 깎는 대신에 슬며시 알타이를 경유하는 여정을 요구했다. 사장은 알타이 산맥을 넘지는 못하지만 알타이 솜까지 경유하는 여정에 동의했다. 그것은 실로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비록 넘지는 못하더라도 그 가까이에서 그 웅장한 산맥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여행이겠는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세 명의 안내인이 소개되었는데, 그 중 '수정'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버기라는 여대생은 여행사를 대표해서 칩 가이드로 참여하게 된다. 연세대에서 한국어도 배웠다는데, 한국어보다는 영어에 능숙하였다. 남자 가이드 '타이왕'은 '평화'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는데, 이번 9월에 대학 입학을 앞둔 스물 두 살의 열혈 청년이었다. 매사에 씩씩하고 서글서글한 그는 한국에 이모가 살아 자주 오간다고 했다.
감자 자루를 싣는 캐러번
여행 중의 식사는 안내인들이 끼니마다 즉석요리를 해서 제공해 준다고 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사장은 안내인들이 그런 일에 능숙하다고 했다. 밤늦도록 내일 출발할 여행단에 필요한 음식 재료와 식기류, 비품들을 챙기느라 부산했다. 이런 형태의 여행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타클라마칸을 종단했던 스벤 헤딘(Sven Hedin)이나 브루노 바우만(Bruno Baumann) 같은 사람들이 캐러번을 짜서 여행한 방식을 연상시켜 흥미로웠다. 여행 짐 속에는 몇 자루의 감자부터 생수, 과일과 빵까지 골고루 준비되어 있었다. 숙박은 겔에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겔이 없는 지역에서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밖에 없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겔이 없는 지역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한두 번 별빛 아래 천막을 치고 잠을 자는 것도 흥미로워 쉽게 승낙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후덥지근한 울란바타르의 날씨만 믿고 고도 높은 북부 지역의 추위 맛을 보기 전의 일이다.
게스트하우스 부근의 한국음식점을 찾아가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등으로 식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허름한 슈퍼마켓에 들러 간식거리와 술을 샀다. 칭기스 보드카를 프리미엄급으로 12병, 오리지날급으로 5병. 도합 17병을 가지고 출발한다. 중간에 살 곳도 만만치 않은 데다 이따금 술을 팔지 않는 날이 있고, 가격도 비싸서 미리 챙기기로 한 것이다. 술 안 마시는 분들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하겠다. 이번 기회에 술을 배우게 하든지, 아니면 술 대신 안주를 많이 먹게 하든지...
저녁 늦게 안내원이 바뀐다는 통지를 받았다. 한국 연예인과 비슷한 이름을 지닌 여자 안내인이 갑작스러운 모친의 병으로 못 오고 '보드르마'라고 하는 삼십 대 여자 안내인이 인사를 했다. 간호사 과정을 이수하고 한국에 체류하며 일을 한 적도 있다는 보드르마는 자신의 어려운 이름보다 한국 친구들이 지어 주었다는 '민주'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밝고 붙임성이 있으며 한국어도 현지 안내인들의 수준에 비하자면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그녀는 두툼한 한몽 사전을 가지고 다녔는데, 사전은 손때가 묻어 나달나달 해질 정도로 그동안 기울인 공역의 흔적을 내보이고 있었다. 오히려 안내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했던 종래의 여행에 비한다면 이번 안내인들의 한국어 수준은 양호한 편이었다.
남자 숙소인 지하실에 모여 보드카 한 병으로 몽골의 첫 밤을 음미하며, 초면의 사람들끼리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지하실의 남자 숙소는 음습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서늘해서 좋았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자면, 일층의 여자 방은 더워서 밤새 잠을 설쳤다고 했다. 후덥지근한 울란바타르를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고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남양주뉴스, 리얼리스트100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7월 23일부터 8월 6일까지의 몽골북중부 여행기를 13편 예정으로 나누어 싣겠습니다.
2010.09.21 12:44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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