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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 오랜 연인인 혜련씨와 지훈씨 그리고 저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수다를 즐겼습니다.
대학에서 만났지만 혜련씨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지훈씨는 군복무 기간 때문에 내년에 사회로의 진출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야무진 혜련씨는 특히 다른 사람들의 직업을 안내해주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어서 우리는 주로 '행복'에 관한 얘기가 그 수다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직업이라는 것이 본인의 희망과 주변사람들의 기대 그리고 사회의 여건이 모두 합일이 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각각의 조건에 괴리가 있기 마련이지요.
이런 현실에서 혜련씨는 '본인이 진정 바라는 직업'과 '사회적 대우가 좋은 직업'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떤 선택을 하도록 도움 주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당장의, 그리고 너무나 중대한 무제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혜련씨의 상담을 위한 참고와 지훈씨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위해 제가 알고 있는 분들에 대한 몇 가지 사례를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판단의 준거는 '더 행복해 지는 것'이 절대적 요소가 되어야함을 함께 결론으로 내린 것 같습니다.
다음날에는 매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더 스텝 작가동의 그림 그리는 Alice를 찾아가서 행복이 담긴 그림 한 점을 사가지고 와서 함께 엘리스의 그림 속에 있는 행복한 요소들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모티프원을 떠나고도 적극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사는 젊은이라는 인상으로 제게 남았습니다.
어제 각종 전시초대장과 청구서들이 배달된 우편물 사이에서 유일하게 인쇄되지 않은 편지봉투 하나가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육필의 편지을 대면하고 Lesotho의 산봉우리 캠프장과 마사이마라의 아카시아 캠프장의 남포등 아래에서 지인들에게 제가 엽서를 쓰던 모습이 중첩되었습니다.
가슴이 설렜습니다.
이안수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8월에 모티프 원에서 하루를 보냈던 손지훈입니다. 직업 상담사를 하고 있는 혜련과 함께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하시나요?^^
저희는 이제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혜련이는 회사생활에, 저는 졸업전 마지막 학기를 바쁘게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편지가 무사히 잘 도착하게 된다면 아마도 선생님은 서재에서 그 멋스런 안경을 쓰시고 이 편지를 읽고 있으시겠죠? 안경을 생각하니 글씨를 좀 더 큼직하게 써야 보기에도 편하실 듯 하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과 앨리스님의 작품은 작은 제 방 책장에 기대어져 있습니다. 바빠서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 중 책장에 잠시 눈길을 멈추면 따스한 노을 그림과 선생님의 환한 미소가 잠깐의 여유와 행복한 미소를 선물해 줍니다.
사진을 볼 때면 그날의 기억과 대화와 기분들이 생각나 괜스레 웃음 짓게 됩니다. 선생님과의 행복에 대한 대화 이후에 행복이란 것에 대해 이따금씩 생각하게 됩니다. 하루하루가, 읽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가득 있어요." 라고 선생님께서 함께 찍은 사진에 남겨 주셨는데요. 며칠 전 찾아본 '마음'에 관한 다큐멘터리 말미에서도 그런 말로 이야기를 마감했는데 "우리의 행복의 파랑새는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라구요. 그런데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서도 방금 그런 구절에 잠시 책을 덮은 채 생각에 잠깁니다.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정말 온 세상이 행복합니다. 몇 시간 전 서울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많아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힘들지 않고 거뜬히 올라가는 건강한 몸이라 고맙고,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두 시간 정도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좋은 책과 커피를 마시고 잠시 사색을 하 수 있고 이렇게 편지를 쓰며 모티프원과, 선생님과, 해모와 헤이리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정말이지 행복은 가까이에 가득 있었던가 봅니다.
얼마 전 태풍 곤파스가 지나갔습니다. 제가 있는 대구에는 큰 피해가 없었는데 모티프원에는 큰 영향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여나 저희가 묵었던 그날처럼 해모와 산책 중에 큰 비를 맞지는 않으셨을지…….
저와 혜련이 둘다 마음 한켠을 모티프원에 두고 왔나봐요. 벌써 그립기도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봄, 가을, 겨울의 헤이리는 어떨지 상상도 해보구요.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불쑥 찾아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
다녀오기 이전의 모티프원보다 다녀와서 경험한 이후의 모티프원은 참 신기합니다. 기대속의 모티프원은 그저 멋진 공간일 뿐이었는데 다녀온 이후의 모티프원은 훨씬 유기적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모티프원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며 대화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살아 숨 쉬는 공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모티프원에는 그 가운데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 해보기도 하구요.
뭔가 정리된 편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그대로 적어 내려간 편지라서 참 두서가 없는 내용입니다. ^^; 편지를 쓰기 시작할 때의 요지는 "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었는데 산으로 간 것 같은 느낌도 들구요. 하여간 8월의 특별한 하루 그날의 특별한 기억과 이야기, 선생님과 해모, 에어스트림까지 모두 마음속에 잘 담아 둔 채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언제든 생각이 나고 드릴 말씀이 있으면 또 편지를 쓰던지, 찾아뵙던지, 전화를 드리던지, 메일을 드리던지 다양한 방법으로 연락을 드릴까 합니다. ^.^ 그럼 또 연락드릴 때 까지 선생님과 해모, 그리고 모티프원까지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2010. 9. 10.
비 내리는 마포 별다방에서
손 지훈